【 인물·이슈 】

한농대 출신 신세대 엘리트 농사꾼…졸업생 연소득 6500만원, 대기업 직원 부럽지 않다

자운영 추억 2012. 1. 24. 20:02

한농대 출신 신세대 엘리트 농사꾼…졸업생 연소득 6500만원, 대기업 직원 부럽지 않다
기사입력 2012.01.24 13:50:23 | 최종수정 2012.01.24 18:13:13 싸이월드 공감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한국농수산대학(한농대) 출신 신세대 엘리트 농사꾼들이 농업 세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한농대는 “2010년까지 졸업생 2291명 가운데 자가영농을 하는 1260명의 지난해 연평균 소득이 6516만원”이라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23%는 연 1억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한농대를 졸업한 ‘신세대 엘리트 농사꾼’ 평균 소득이 일반 농가 평균 소득(3212만원)의 두 배가 넘고 도시 근로자 평균 소득(4809만원)의 1.4배에 이른다는 얘기다. 국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평균 연봉인 6195만원보다도 높다.

1997년 화성시 봉담읍에서 개교한 한농대는 농업과 수산업을 전문으로 하는 국립단과대학이다. 일반 대학처럼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수능을 치르고 지원하며 학비는 전액 면제된다. 전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기숙사비도 면제받는다. 3학년제로 1학년은 기초과정, 2학년은 현장실습과정, 3학년은 창업준비과정을 거친다. 졸업 후 6년간 의무적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학비를 반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서충원 산머루농원 실장(과수학과 1기)
산머루농원 체험 프로그램 성황


감악산 산머루농원 인근에 있는 근사한 캠핑장과 체험장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 시설을 만들어놓은 이는 서충원 씨다. 파주에서 염소를 기르던 서 씨 아버지는 1979년 산에서 야생으로 자라던 산머루를 길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렵게 일군 머루 농원을 아들 서충원 씨가 이어받아 캠프장, 체험장, 와인공장과 와인저장고까지 갖춘 사업체로 일궈냈다.

한농대 과수학과 1기생인 서 씨가 졸업하고 농원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 일이 학교에서 배운 대로 매뉴얼화한 것. 서충원 씨는 산머루 재배서부터 산머루 술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매뉴얼로 만들었다. ISO 9001과 ISO 22000 인증도 땄다. 이 같은 기반은 이후 서 씨가 정부 지원을 받아 와인공장과 저장고를 만들고 체험장 사업까지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2009년 정부지원금 4억원을 무상으로 받아 체험장과 캠핑장을 지었다.

“머루와인과 머루전통주가 주요 제품인데 이들 제품은 명절 전후에 많이 팔립니다. 유통업체는 명절 전에 제품을 왕창 주문해 가져가곤 명절 후엔 안 팔린 제품을 모두 반품하곤 했어요. 계속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뿐인가요. 대형 유통채널에 납품하면 좋긴 하지만 제품가가 2만원이면 출고가는 1만원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팔아도 남는 게 없는 거예요. 소비자가 아예 산머루농원을 찾아오게 해 그들이 직접 구매할 수 있게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체험장을 떠올렸습니다.”

와인공장과 저장고를 돈 후 직접 와인을 병에 담아 자신의 사진이 들어 있는 개인 라벨까지 붙이는 체험이 기본. 이 외에 산머루 잼 만들기, 산머루 천연비누 만들기, 산머루 푸딩과 산머루 초콜릿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지난해 4분기에만 무려 1만명이 체험장을 찾았다. 체험 콘텐츠만 만들어놓은 때문이 아니다. 직접 인바운드 여행사를 대상으로 체험장을 소개하고 영업을 다닌 끝에 몇 개 여행사와 제휴해 여행상품의 한 코너로 들어가는 결실도 얻어냈다. 덕분에 주중에는 텅 빈 체험장을 외국인이 채워준다.

50동이 들어가는 캠핑장은 매 주말 한 동도 빈 곳이 없을 정도로 성황이다. 가족 단위 캠핑족은 캠핑을 하면서 중간 중간 체험장을 찾아 다양한 체험을 한다. 덕분에 감악산 산머루농원 매출의 20%를 체험 관련 매출이 차지하는 수준이 됐다. 지난해 이런 과정을 거쳐 올린 전체 매출은 15억원이 넘어간다.

“저는 산머루농원 직원으로 매달 300만원 월급을 받습니다. 월급 외에 연매출액의 15% 이상이 순수익으로 남으니 제 나이에 비해 적지 않은 돈을 버는 거지요.”

[김소연 기자 sky6592@mk.co.kr]



유화성 부용농산 대표(채소학과 5기)
오픈마켓 공략 5년 만에 매출 20억원


경북 안동 토박이 유화성 부용농산 대표(29)는 마(산약) 농사를 시작한 지 5년 만에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농장만 운영하는 게 아니라 식품가공회사까지 차렸다.

유 대표가 마 농사를 시작한 것은 말 그대로 부업 삼아서였다. 마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예부터 안동이 토질, 기후 면에서 마를 재배하기에 가장 좋다는 것과 마침 안동이 산약특구로 지정돼 마 생산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는 것 정도였다.

“결과는 대실패였어요. 크기가 특상 제품의 반도 안 되다 보니 가격이 형편없었죠. 효능은 똑같은데 시장에서 ‘하’ 등급을 받으면 가격은 절반도 채 못 받습니다. 고민하다 오픈마켓을 두드렸어요.”

당시 도매시장에 ‘상’ 등급 마를 내다 팔면 20㎏당 16만~18만원은 받을 수 있었다. ‘하’ 등급은 그보다 10만원 이상 싼 6만원에 불과했다. 그때 유 대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게 바로 옥션, 지마켓, 인터파크 등 오픈마켓이다.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하’ 등급 마를 싸게 판다고 하면 소비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아 크기가 작다는 점에 착안해 ‘알뜰마’라 이름 지었다. 상품이 작아 보이지 않게 알뜰마 전용 포장박스를 만들었다. 가격은 5㎏에 2만원. 20㎏으로 환산하면 8만원으로 ‘하’ 등급보다 2만원 더 비싼 가격이다.

“소비자는 마를 비싸다고 인식하고 있거든요. 2만원짜리 알뜰마(5㎏)는 나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렸어요.”

이때부터 부용농산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009년 10억원, 2010년 15억원 등 해가 지날 때마다 5억원씩 매출이 증가했다. 2011년엔 20억원에 육박했다.

유 대표가 직접 재배하는 규모는 9만9000㎡(3만평) 정도. 나머지는 주변 농가와 계약을 체결해 공급을 받기로 했다. 총 50만㎡(15만평)에서 연간 300톤을 생산한다. 그는 마를 갖고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고 전한다. 품질이 좋은 마는 소비자한테 직접 판매하고 그 아래 상품은 가공제품으로 처리한다. 지난해 식품가공회사를 차린 것도 이 때문. 자체 부가가치를 올리기 위해 마분말, 마환, 마즙 상품을 내놓았다. 현재 매출액의 60%는 생마, 나머지는 가공식품에서 나온다.

“제품을 다양화해 앞으로 5년 뒤에는 100억원대 기업형 농장으로 키울 거예요.”

[김헌주 기자 dongan@mk.co.kr]



정준래 더푸른 대표(화훼학과 10기)
‘도시농부’ 만들어드립니다


정준래 더푸른 대표(뒷줄 가운데)·정윤섭(뒷줄 왼쪽) 실장

요즘 도시에서 텃밭이나 옥상 정원을 이용해 채소나 꽃을 기르는 ‘도시농부’가 늘어났다.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 안전한 먹거리도 얻을 수 있는 ‘도시농업’이 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장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 이제 막 발판을 마련했다. 국내 도시농업이란 개념조차 생소할 때, 이 일에 뛰어든 사람이 있다. 한국농수산대학 2006년 학번 동기인 정준래 씨(32)와 정윤섭(42) 씨다.

2009년 한국농수산대학 화훼학과를 졸업한 두 사람은 도시농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창업으로 발전시켜 지난해 1월 ‘더푸른(THE PURUN)’이라는 농업전문회사를 설립했다. 정준래 씨가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제 만 1년 된 신생회사지만 지난해 매출 2억원을 올려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다.

“1만6529㎡(5000평) 규모 농장을 운영하면서 야생화를 직접 생산하고 도시농업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도시민을 대상으로 화훼와 도시농업 교육도 하고 아이들에겐 체험 학습장을 제공하고 있고요.” 정 대표 설명이다.

‘더푸른’에서 하는 일은 다양하다. 농장경영, 옥상녹화사업부터 도시농업교육사업, 도시녹화제품사업, 도시농업디자인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한국농수산대학에 온 친구들의 상당수는 부모님이 농사를 짓거나 땅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나 형(정윤섭)은 영농기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시농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한 지식기반 사업을 하기로 의기투합했어요.” 사실 정준래, 정윤섭 두 사람은 늦깎이 한농대 학생이다. 정준래 대표는 대구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플로리스트로 활동했고 정윤섭 실장은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을 나와 LG전자현대차에서 제품 디자인을 했다. 정 대표는 식물을 직접 키우고 싶은 마음에, 정 실장은 귀농을 위해 한국농수산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화훼학과 동기인 이들은 2학년 도시녹화 현장 실습을 하면서 이 분야에 눈을 떴다.

때마침 2학년 때 한농대 창업보육센터 내에 자리가 생겼고,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재학생 중 최초로 창업보육센터에 들어갔다. 정 대표의 플로리스트 감각과 정 실장의 산업디자인 실무경험이 맞물리면서 사업 경쟁력이 배가됐다.

[김범진 기자 loyalkim@mk.co.kr]



조해석(특용작물학과 5기)·서강화(특용작물학과 3기) 부부
학교급식 개척해 부농대열에


경기도 이천에서 청운표고농원을 운영하는 조해석(34), 서강화(34) 씨 부부는 일 년에 60톤의 표고버섯을 생산하는 농업 경영인이다. 농장을 연 시기는 2004년.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농장 옆에 작은 컨테이너로 방을 만들어 신혼살림을 차렸고 8년 만에 연매출 5억원, 영업이익 1억원 이상의 농장을 일궈냈다.

조 씨와 서 씨 모두 농업인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는 모두 한평생 농민으로 살면서 자식들만큼은 다른 일을 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조 씨는 대전대 건축학과에 진학했고, 서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대엘리베이터에 일반 사무직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자신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결국 서 씨는 1999년 한국농수산대학 3기로 입학했다. 서 씨가 졸업반이던 2001년에는 조 씨가 한농대에 입학했다. 조 씨는 군 복무 시 국방일보에서 한농대 광고를 보고는 이를 스크랩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제대하자마자 한농대에 입학했고, 3년간 이론과 실기를 착실히 배웠다. 조 씨는 1학년 때 학교 2년 선배인 서 씨를 만나 3년간 연애한 후 졸업을 앞두고 결혼식을 올렸다.

조 씨는 결혼 직후부터 서 씨 부모가 농사를 짓던 논을 버섯농장으로 일구기 시작했다. 창업후계농 정책자금 9000만원을 빌려 재배시설을 설치했다. 첫 아이템은 느타리버섯이었으나 난관이 많았다. 힘들게 재배해도 판로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고 수급에 따라 가격 변동이 커서 원가에 못 미치는 가격에 팔기도 했다. 조 씨는 “농산물 유통이 어렵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팔다 보니 시설투자비도 건지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조 씨는 이후 한 번 배양액(배지)을 만들면 여러 번 수확할 수 있는 표고버섯으로 주력 상품을 바꿨다. 판매처도 초등학교 친환경 급식을 주로 노렸다. 그렇게 판매처를 확보하고 생산에 자신감이 생기자 생산시설을 확장해 수확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조 씨는 표고버섯을 키우면서도 끊임없이 재배방법을 혁신했다. 표고버섯 배양액을 만드는 방법을 개선해 버섯을 재배하는 기간을 단축하는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조 씨는 “학교 급식처럼 대량 물량을 확보하고 농법을 지속적으로 혁신해 나가면 충분히 한국 농업도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5년 뒤에는 한국 표고버섯을 세계로 수출할 계획이다.

[윤형중 기자 hjyoon@mk.co.kr]



윤혁승 씨(채소학과 3기)
신세대 겨냥 ‘오색 떡국’ 개발


강원도 횡성에서 유기농 채소농업에 종사하는 윤혁승 씨(34)를 마을 사람들은 ‘유기농 전도사’라고 부른다. 1999년 마을에서 유기농업을 처음 시작해 주변에 전파했기 때문이다. 윤 씨가 유기농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한농대에서 알게 된 동문 덕분이다. 친구 아버지는 국내에서 유기농업을 처음 시작한 ‘유기농 1세대’였다.

“하루는 친구 농장에 가서 일을 도왔는데 종일 일해도 전혀 피곤하지가 않은 거예요. 저희 집은 농약을 치고 나면 며칠간 집에 와서 픽픽 쓰러지곤 했거든요. 농약이 몸에 무척 안 좋은 거라는 걸 그때 알게 됐죠. 저도 유기농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나 평생 일반재배만 해온 부친은 유기농업을 하자는 아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씨는 우선 땅 한 필지(1만㎡, 약 3000평)에 시험 삼아 유기농 감자를 심었다. 다음 해 첫 수확을 했지만 마땅한 판로가 없어 고민하다 옥션에 유기농 감자를 판다고 글을 올렸다. 이게 대박이 났다. 주문이 쏟아져 순식간에 물량이 소진됐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 전체가 줄줄이 유기농 재배에 뛰어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하시는 고랭지 배추 농사를 도왔습니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 나이에 논밭에서 일하는 게 너무 싫어 ‘나는 죽어도 농사는 안 짓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몸에 좋은 유기농을 널리 퍼뜨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윤 씨는 현재 약 10만㎡(약 3만평)의 대지에서 아스파라거스와 민들레, 시금치 등을 심어 연매출 3억원을 올린다. 생활비를 다 쓰고도 한 달에 180만원씩 저축을 할 정도로 수입이 짭짤하다.

한농대를 졸업한 지 올해 10년이 됐지만 요즘도 1년에 2~3번씩 동기들과 만나 정보를 교환한다.

윤 씨는 젊은 영농인답게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한다. 브로콜리와 고추, 단호박 등을 유기농 쌀과 섞은 ‘오색 떡국용 떡’을 만들어 팔아도 봤고 요즘은 아스파라거스와 민들레를 가공해 즙을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식품 허가를 받고 기술센터에서 조언을 얻어 제품화 단계에 들어섰다.

“외국에서는 아스파라거스를 김치처럼 먹어요. 우리나라 입맛도 서구화돼가니까 앞으로 더 붐이 일어날 거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