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이슈 】

[앙코르 내 인생] 고교 영어교사에서 보디빌더 된 서영갑(75)씨--FROM 조선

자운영 추억 2011. 11. 19. 10:57

10여년 전 보디빌딩 입문, "뒷모습만 보면 30~40대랍니다"

정년퇴직 두달만에 전국대회 중년부 우승… 노인학교·복지관서 강의
뱃살 두둑한 중년 제자들에 우람한 근육 공개하니 눈이 휘둥그레…

"우리가 알던 호랭이 쌤, 서영갑 쌤 맞아예? 아이고 마, 쌤이 이렇게 젊으시면 우리는 어캅니꺼."

지난해 경북고등학교 제자들이 마련해준 졸업 30주년 '은사의 밤' 행사 때였다. 그날따라 하필이면 경북 문경에서 전국보디빌딩대회가 열렸다. 하는 수 없이 문경에서 행사가 끝나고 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대구로 향했다. 제자들은 한눈에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왜소한 체구의 영어 선생님이 우락부락한 근육맨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니 말이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사회 보던 제자가 나를 소개했다.

전국보디빌딩대회에 참여해 육체미를 선보이고 있는 서영갑씨.
"여러분, 전국보디빌딩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하시고 TV에도 출연하신 서영갑 쌤입니다! 쌤, 함 벗어 보이소!" 사회자의 독려에 훌러덩 옷을 벗고 폼을 잡았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그동안 피땀 흘려 만든 근육이 제자들 앞에 공개됐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던 녀석들은 어느덧 뱃살 두둑한 중년이 돼 있었다. "이 노마들아, 빨리 운동하래이. 운동 안 하믄 나보다 더 늙어 뵌다." 제자들의 뱃살을 툭툭 치며 농담을 건넸다.

그래, 나는 보디빌더다. 그것도 전직 영어교사 출신이다. 인생 전반부 40여년을 교단에서 보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 교직 생활을 시작해 대구 달성고·경북고·경북여고·대구과학고 등을 거쳐 1999년 대구 덕화여중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내 삶의 1막과 2막이 너무 동떨어져 있어 의아하실 테다. 하지만 사실 보디빌더의 씨앗은 교사 시절 뿌렸다고 할 수 있다. 고3 담임을 맡아 진학지도를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 반 급훈(級訓)은 '건강제일'이었다. "영어는 입으로 하지만 입은 몸의 일부데이. 몸이 튼튼해야 영어도 잘 하는기라. 운동 열심히 해야 된데이." 나만의 논리로 아이들에게 체력관리를 주문했다. 야자(야간자율학습) 시간, 틈나는 대로 운동장을 몇 바퀴씩 뛰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40대가 되자 슬슬 내 체력도 바닥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깡 말랐는데 매일 자정까지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 남아 있다 보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3㎏짜리 아령 두 개를 사서 아침저녁으로 재미삼아 운동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나 자신을 위한 운동이었다기보다는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런데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아령을 까딱까딱하면서 시작했던 운동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근육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했다.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약골(弱骨)이었던 내가 병원 문턱 근처도 안 가는 강골(强骨)로 변모하고 있었다. 어느새 책장엔 영어책만큼이나 많은 운동 관련 도서가 꽂히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20여 해, 정년을 5년 정도 앞둔 1990년대 중반 어느 날 대구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전국보디빌딩대회 공고 포스터를 봤다. 구경만 할 심사로 찾은 행사장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잘 가꾸어 탄력 있게 빛나는 근육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황홀경에 빠졌다. 그 근육들이 얼마나 오랜 수련과 고통 끝에 나온 것인가를 알기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마음먹었다. 퇴직하면 꼭 저 무대의 일원이 되겠노라고.

1970년대 경주 신라중학교 영어 교사 시절 경주로 소풍 가서 제자들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서영갑씨. / 서영갑씨 제공
내 계획을 털어놨을 때 아내는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뭐라고예? 삼각 빤쓰 입고 뭐하겠다고예. 영감이 노망들었나." 하지만 아내의 만류도 내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퇴직 전 4~5년 동안 더 부지런히 운동을 했다. 그리고 1999년 10월, 정년퇴직한 지 두 달 만에 꿈에 그리던 전국보디빌더대회에 처음 출전해 중년부(50대 이상) 우승을 차지했다. 예상치 못했던 수확에 용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대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12년간 40여 차례 대회에 출전해 꾸준히 입상했다. 방송에도 출연해 동네에선 스타가 됐다.

나는 요즘 강단에 있을 때보다 훨씬 바쁜 일상을 보낸다. 혼자 알고 있기엔 너무나 아까운 운동의 매력을 주위에 전파하느라 여념이 없다. 내 나름대로 운동교본을 만들어 노인학교와 복지관 등에서 강의하며 '건강 전도사'로 활동한다.

몸의 행복은 마음의 행복을 가져왔다. 젊음은 덤으로 따라왔다. 동네에서 내 별명은 '총각'이다. 뒷모습만 보면 30·40대 같다고 이웃들이 붙여줬다. '일흔다섯 총각'은 오늘도 외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