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야생화

2800그루 중 으뜸 600살 소나무, 3차례 결혼 적통 논란

자운영 추억 2012. 12. 9. 17:05

홍경낙 2012. 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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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낙 박사의 이야기가 있는 나무 ③ 충북 보은 속리산 '정이품송'

세조가 고위직 벼슬 내려...1962년 천연기념물

늘그막에 후사 이으려 잇단 혼인, 자손 1500개


 

정이품송 전경2S.jpg » 정이품송 전경. 2011년 5월 17일.

 

우리 집 막내는 나를 당황시키는 질문을 자주 한다. “우리나라 전체에 나무가 몇 그루 있어요?” ‘나무 박사’인 내가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라서 순간 당황했다. “아주 많단다. 밥이나 빨리 먹자.”
차라리 ‘타르보사우루스 한 마리와 호랑이 스무 마리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라는 질문을 해라. 하여튼 기발한 상상만큼이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기는 하다.
  
그래서 찾아봤다. 제5차 국가산림자원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에 2800억 그루의 크고 작은 나무가 살고 있고, 어른 가슴높이에서 나무 굵기가 6㎝ 이상인 소위 ‘돈 될 만한’ 나무는 80억 그루라고 한다.
그리고 산림보호법이 지정한 보호수는 1만 3374건이고, 문화재보호법의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식물 259건 중 늙고 큰 나무(노거수)는 168건에 불과하다.
 
아이가 또 물을지 모른다. “그 중 1등이 뭐예요?” 아이의 기준은 모르겠지만, 제일 유명한 나무를 꼽으라면 보은 속리산의 ‘정이품송’이 되지 않을까?
 
문화재청의 설명을 들으면, 천연기념물 제103호 ‘보은 속리 정이품송(報恩 俗離 正二品松)’은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크고 오래된 나무이어서 생물학 및 생물 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고, 임금을 섬기는 그 시대상을 잘 전해주는 전설이 있는 등 문화적인 가치 또한 크므로 1962년 12월 3일자로 천연기념물에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무참히 살해된 조카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꿈속 저주로 인해 심한 피부병이 생겼던 세조는 불덕(佛德)으로 업을 씻고자 1464년 2월부터 3월까지 속리산 법주사의 복천암에 머물렀다.
 
세조의 행차가 말티고개를 넘어 복천암으로 향하는 길에 소나무 밑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세조가 가지에 “연(輦)이 걸린다”고 소리치자 소나무가 가지를 들어올려 가마가 지나가게 했다. 세조가 돌아갈 때에도 이 소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게 되었는데, 이에 세조가 소나무에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복천암에 머무를 때 병이 치료되자 세조가 크게 기뻐하며 복천암 부근에 있는 돌기둥을 스님들이 옮겨가는 곳까지 법주사의 땅으로 삼도록 명하였다. 이에 스님들이 돌기둥을 끌어당겨 법주사가 있는 사내리를 지나 말티고개 방면으로 나아갔는데, 정이품송이 있는 상판리 부근에 와서 탈진하였다. 이로써 돌기둥이 있는 곳까지 모두 법주사의 땅이 되었고, 법주사는 너른 땅에 정이품 벼슬아치(?)까지 거느리는 사찰이 되었다.
 
1464년 당시에 가마에 거치적거릴 정도로 가지가 굵은 소나무라면 둘레가 어른 한 아름(1m)은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굵기로 자란 우리나라 중부 내륙의 소나무 평균 나이가 60년임을 고려한다면 각종 자료에 정이품송 나이를 600살로 보는 것은 상당히 정확한 추정으로 생각된다.

 

정이품송 가지 피해S.jpg » 정이품송의 가지 피해. 2011년 5월 17일.

 

우리나라 노거수에 대한 연구(장은재, 2005)에서 소나무 임계수명을 500년으로 추정하고 있어서 정이품송의 잔여수명 연장에 관심이 가게 된다. 정이품송의 보호를 위하여 1960년대부터 썩은 가지를 제거하고 약한 곳을 시멘트로 보강하는 외과 수술을 했고, 1982년에는 솔잎혹파리 피해 방지를 위하여 높이 18m가 넘는 방충망까지 덮어씌우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한편에서는 1974년 주변 도로 포장공사 때 발생한 부주의한 복토로 인한 심각한 피해도 있었다.

 
1989년에 줄기까지 덮었던 50㎝가량의 이 흙을 제거했지만 이미 나무 밑동이 회복불능으로 썩어 옴폭 파여 버렸고, 1998년부터 강풍 피해로 굵은 가지가 왕창 부러져 나가는 등 그 우람했던 모습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후사(後嗣)를 도모해야 할 때이다.

 

정이품송 화분 채취s.jpg » 정이품송의 유전자원 보존을 위한 화분 채취 및 장기 저장 보존. 사진=국립산림과학원, 2011년 5월 20일.   

문화적 가치는 물론이고 4152억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09년)까지 지닌 정이품송은 워낙 유명세를 타다보니, 그 후계목 선정도 초미의 관심이 되었다.

 

충북산림환경연구소에서는 1980년 정이품송에서 씨앗을 채취하여 5그루의 묘목을 생산하고 1996년부터 정이품송 주변에 후계목으로 키우다가 정이품송의 생장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어서 2007년도에 1그루만을 남기고 4그루는 다른 기관에 기증하였다.
 
그러나 이 후계목은 정이품송이 어미 나무인 모계 혈통을 따른 개체로 화분을 공급해준 아비 나무의 확인이 어렵고 혈통가계도 작성도 불가능하다는, 이미 의인화된 ‘정이품’ 벼슬아치의 남성 호주제 논란에 휩싸였다.
 
2001년 5월 8일 국립산림과학원은 정이품송의 화분을 채취하여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준경릉(濬慶陵)의 소나무에 인공교배시키는 ‘소나무 전통혼례식’을 올렸다.
 
준경릉은 태조 이성계의 5대조 할아버지 묘소이고, 어미 나무로 선정된 소나무는 1959년에서 1984년까지 전국에서 선발한 524본의 수형목(秀型木, 생장과 수형 등이 월등한 나무) 중에서도 우수한 것으로 판명된 95년생 ‘수형목 제139호’였다. 조선왕조에 봉사한다는 명분과 빼어난 자태의 소나무라는 실리도 고려하였다.

 

장자목_독립기념관.JPG » 장자목 육성.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부 수원캠퍼스, 2009년 3월.  

이런 인공교배 과정을 통해 얻어진 묘목 129개체에 대하여 엽록체 디엔에이(DNA) 분석을 하여 96개체를 정이품송의 후계목으로 확인하였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임목육종기법과 유전다양성 평가기술을 결합하여 혈통을 확증한 이들 후계목 중 58그루를 ‘장자목(長子木)’이라 명명했지만, 이번에는 적통(嫡統) 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정이품송이 있는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에서 직선거리 4㎞를 가면 보은군 외속리면 사내리에 천연기념물 제352호 ‘보은 서원리 소나무’, 일명 ‘정부인 송(貞夫人松)’이 있다.
 
추정 수령도 600년으로 얼추 정이품송과 같고, 정이품송이 한 줄기로 곧게 섰지만 정부인 송은 아래 줄기에서 두 갈래로 나뉘고 구불구불한 가지가 사방으로 펑퍼짐하게 퍼져 있다. 두 나무를 한 사진에 나란히 세운다면 잘 어울린 노년의 한 쌍이 틀림없어 보일 것이고, 그래서 오래전부터 보은지역에서는 두 나무를 내외지간으로 여기고 있었다.
 
충북산림환경연구소는 2002년 5월 8일 정이품송 화분을 이용해서 정부인 송에 인공교배시키는 행사를 갖고, 이들 종자를 2004년에 뿌려서 1400여 개체의 자목(子木)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또한 디엔에이 검사를 통해 정확한 가계가 확증된다면 이 후계목이야말로 ‘적자목(嫡子木)’이라 불러 손색없지 않을까 싶다.
 
정이품송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경복궁 소실 때 느꼈던 상실감을 우리 세대에서, 우리 아이들이 그리고 그 자식까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직 정이품송을 실물 대면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 17-3번지로 어서 가보시라. 비록 몸은 쇠약해져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지만, 청청한 기상과 위엄이 느껴지는 노거수를 뵙게 될 것이다.

 

글·사진 홍경낙/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과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