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야생화

250살 곰솔이 당한 황당한 ‘보호’

자운영 추억 2013. 1. 16. 21:33

 

홍경낙 2013. 0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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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낙 박사의 이야기가 있는 나무 ④ 전주 삼천동 곰솔

내륙 곰솔 노거수로 천연기념물 지정, 태풍과 독물 이어 콘크리트 세례

가지 하나 살아남아 근근히 푸른 빛…무분별한 복토가 거목 죽여

 

gom2-1.jpg » 콘크리트 조형물처럼 서 있는 전주 삼천동의 천연기념물 곰솔.

 

게임이론은 ‘기회와 선택’이라는 고민스러운 문제를 다루는 수학 분야이다. 이럴까, 저럴까? 할까, 말까? 수많은 기회 중에서 무언가는 선택되어지는데 이걸 수학적으로 풀어낸다.

 

게임에는 상대가 있고, 이기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상대를 누르기도 하고 서로 돕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생물 진화의 많은 질문들이 게임이론에서 주어진 문제들과 유사하다.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상대가 나타날 텐데, 이번 상대는 경쟁자일까, 동업자일까?

 

선택의 기로에서 수학이 권하는 궁극적인 승리의 전략은 무엇일까? 맞대응(tit-for-tat) 전략이다. 일단 믿고, 배신하면 보복하지만, 뉘우치면 다시 믿어주는…. 어찌 보면 바보스럽고 단순하지만 수학이론상 최선이란다. 적어도 ‘인간’에게 적용하기 전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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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를 관통하는 백제대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숨이 턱 막히는 기괴함을 보게 된다. 아파트와 상가를 배경으로 움푹 들어간 잔디밭이 있고, 언뜻 보면 잔디밭 한가운데 굵은 통나무와 그 옆에 펑퍼짐하게 퍼진 소나무가 한 그루가 있다.

 

좀더 가까이 들여다 보니 통나무는 원줄기고 옆으로 뻗은 하나 남은 가지에 푸른 솔잎이 돋아난 ‘살아있는’ 곰솔(Pinus thubergii)이다. 우리나라 2,800억 그루의 나무중 단 168그루만 지정되어 있다는 그 천연기념물 노거수 중 하나인 천연기념물 제355호 ‘전주 삼천동 곰솔’ 이다.

 

문화재청 기록에 의하면 약 250살 된 이 나무는 인동 장씨의 묘역을 표시하기 위해서 심어져서 문화적 의미뿐 아니라 해안가에서 주로 자라는 곰솔이 내륙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아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었다(1988년 4월 30일 지정).

 

2000년도 초까지 높이 14m, 가슴높이 둘레 3.92m의 장대한 모습이었으며, 조금 떨어져서 올려다보면 한 마리의 학이 땅을 차고 날아가려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학송(鶴松)’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광스럽고 웅장해야할 천연기념물이 어떻게 이렇게 통나무가 됬을까?

 

gom4-1.jpg » 장대했던 삼천동 곰솔의 원래 모습은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삼천동 곰솔 주변은 전주시의 불어나는 인구로 1990년대 초 택지로 개발되고, 나무에서 불과 20m 안에 커다란 8차선 도로가 지나게 되었다. 산이 파헤쳐지고 물길이 바뀌니 온전히 살 수 있겠나?

 

급기야 1999년 여름 태풍 ‘올가’가 들이치자 뿌리까지 들썩이고 본격적으로 시름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 7월 어느 날엔가 나무 밑둥에 여덟개나 되는 구멍이 뚫리고 독극물이 주입된 것이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나무 주변이 천연보호구역(5,055.1㎡)으로 지정되었기에 아마도 ‘이 참에 죽이면 (천연기념물이 해제되고) 이 땅이 돈이 된다’라고 천하잡놈 변강쇠처럼 생각하고 누군가가 행동한 것이리라.

 

그래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목숨은 부지했으나, 2010년에 온갖 가지 16곳을 쳐내고 이제는 통나무처럼 서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주 죽은 나무는 아니다.

 

gom3-1.jpg » 가지 하나가 살아남았지만 꾿꾿하게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는 삼천동 곰솔.

 

나무도 생명이라 언제까지나 살 수는 없다. 미국의 숲속에서 자라는 테다소나무(Pinus taeda)는 평균 수명 100년에 최대 300년까지 살고, 우리나라 아파트 뒤편에 잘 보이는 스트로브잣나무(Pinus strobus)는 200년 평균에 450살까지 산다.

 

또 호숫가에도 종종 심겨있는 낙우송(Taxodium distichum)은 평균 600년에 1,800년까지, 그리고 자이언트세쿼이어(Sequoia gigantea)는 2,000년을 기본으로 3,000살까지 산다.

 

그런데 평균적으로 오래 사는 것과 특정한 한 나무가 오래 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세계에서 제일 나이 많은 나무는 척박한 캘리포니아 산지에 자라는 4,844살의 브리스틀콘 소나무(Pinus longaeva)로 일명 ‘무드셀라(Methuselah)’라고 불린다.

 

GreatBasinBristleconePine.jpg »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라는 장수 나무 브리스틀콘 소나무인 일명 ‘무드셀라', 세계 최고령인 4844살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살아있는 나무’라는 정의가 어떻게 내려지느냐에 따라서는 스웨덴의 독일가문비(Picea abies)인 ‘늙은 티코(Old Tjikko)’가 9,550살로 기록을 바꾼다. 그런데 이 나무는 지상부는 670년마다 말라죽고 지하부(뿌리)만 남아서 다시 줄기를 키우는 식으로 독특하게 자란다. 아, 이런 식이라면 무성번식하는 북미사시나무(Populus tremuloides)는 대략 백만살쯤 될 것이다. 이렇게 저마다 갖은 천수가 있는데 인간이 껴들어 망치려 든다.

 

우리나라 소나무(Pinus densiflora)의 임계수명을 500년으로 보고 있는데(장은재, 2005), 소나무의 친척인 곰솔은 그 보다는 짧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한창 250살에 횡액을 당한 삼천동 곰솔의 사연은 허탈하다.

 

학송으로 그 자태를 빛내고 있을 때 사람들이 즐겼을 심미적 안정감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개인의 이기심으로 저버렸다. 자연스런 맞대응 전략이 발동한다. 이제 흉물스럽게 잘려져나간 곰솔 가지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경관가치도 경제가치도 배신자에겐 주지 않는다.

 

문화재청은 삼천동 곰솔이 살아있는 한 천연기념물에서 해제하지 않겠다고 한다. 또한 잘못을 바로잡으려, 살려내려 노력하고 있다. 세계 최장수 수종인 브리스틀콘 소나무는 나무 밑둥의 10%만 살아있어도 천년은 너끈히 버티는데, 같은 소나무(Pinus 속)으로 나무둥치의 1/3이나 살아있는 곰솔도 만만치 않게 생을 이어가지 않겠나!

 

비록 줄기 하나지만 올해도 여전히 푸른 솔잎을 풍성히 단 모습을 보면 삼천동 곰솔이 족히 한 갑자는 더 버틸 것 같다. 다시 한번 곰솔이 우리를 믿어주는가 보다. 삼천동 곰솔의 수난사는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에도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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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보호수의 삶이 위태롭게 되는 것은 작심하고 덤벼드는 천하잡놈이 아니라 ‘무지(無知)’가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2003년에 조사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노거수에 대한 현황(이경준, 2006)을 다시 정리해 보면 전체 143개체 중 상태가 양호(50%)하거나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는 경우(27%)를 제외한 33개체가 병들거나 죽어나가고 있다.

 

서울대 이경준 교수가 불량(17%)하거나 매우 불량(5%), 이미 죽은 것(1%)으로 판단한 나무들중 낙뢰 피해목이나 경쟁수종에게 도태된 5건을 제외한 28그루는 모두 인간에게 피해를 입고 있다.

 

그 행위도 다양해서 나무의 벌집을 채취하겠다고 청송 왕버들(천연기념물 제193호)을 자르는 직접적 위해도 있지만, 제일 큰 위협은 ‘무식한게 힘만 센’ 경우다. 나무는 잎사귀뿐 아니라 뿌리에서도 숨을 쉰다. 그런데 뿌리가 땅속 깊이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노거수를 보살피라고 예산만 떨어지면 우선 두툼하게 흙을 덮어주는 복토(覆土) 행위를 했다.

 

03192873_P_0.jpg » 복토 때문에 죽은 강릉 삼산리 450살 소나무. 사진=조홍섭 기자

 

복토는 멀쩡한 줄기까지 썩게 만든다. 거기에 한술 더해서, 잘자라라고 거름도 주고 영양주사까지 놔줬다. 목 조르면서 밥 먹이면 잘 살겠나? 이런 무지한 복토로 정이품송, 명주 삼산리 소나무, 부여 은행나무가 시름거리고, 서천 신송리 곰솔과 보은 백송이 명을 달리한 것이다. 무관심도 문제지만 무식함도 자랑할 것은 아니다.

 

게임이론의 맞대응 전략은 인간의 ‘실수’를 계산하지 않았기에 약점이 생겼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행위에 대하여 상대방이 배신감을 느끼게 되면 무자비한 보복과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게임은 게임일 뿐. 사는 게 게임처럼 되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가끔 실수할 수도 있지만 바로 잡을 수도 있으니까.

 

홍경낙/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과 박사

 

이 글은 국립산림과학원이 발행하는 <과학이그린> 2012. 11+12호에 실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