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9.12 22:35
미국, 일본을 파트너 만들려 독도 침묵하고 日王에 면죄부
과거 부정 집단 망각증 불러 지금이라도 제대로 발언 않고
韓日에 이중 신호 보내면 한·미·일 모두 어려워질 것
- 정우상 논설위원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과 미국 등 연합국 48개국이 맺은 이 조약은 일본의 전후(戰後) 배상과 영토 문제를 정리한 것이다. 일본은 이 조약에서 자기들이 한국에 반환할 섬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며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논리대로라면 조약에 언급되지 않은 한반도 주변 섬 3000여개도 일본 땅이라는 식인데 이건 말 그대로 억지다. 그러나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빼앗은 모든 지역을 반환하라'고 했던 1943년의 카이로선언, 카이로선언의 모든 조항을 이행한다는 1945년의 포츠담선언,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명시한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관 지령(SCAPIN) 677호와 비교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에 관한 규정이 흐릿해진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1947년 3월 1차 초안부터 1949년 11월 5차 초안까지 독도를 한국 땅으로 명기했다. 그러나 1949년 11월 19일 주일(駐日) 미 대사관의 정치 고문 윌리엄 시볼트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건의서를 미국 정부에 보내면서 12월 6차 초안에서는 독도가 일본 땅으로 둔갑했다. 일본은 1945년 패전 직후부터 독도를 포함해 침략으로 강탈했던 땅을 끝까지 움켜쥐려고 로비를 했다. 그러나 영국·호주 등 다른 연합국들이 6차 초안에 반발하자 미국은 이를 폐기했고 7차 초안부터 조약 체결 때까지 독도에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본 편을 들지는 않았지만, 일본이 멋대로 해석할 '불씨'를 남긴 것이다. 노다 일본 총리가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성립 과정에서 일본에 다케시마(독도)를 포기하라고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 요청을 거부했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독도를 일본 땅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우리는 일본에 성난 눈빛을 보내지만, 일본은 미국 입을 쳐다본다. 이번에도 일본 고위 외교관이 미 국무부에 달려갔고 일본 기자들은 미 국무부 대변인에게 집요하게 독도에 대해 질문했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한일 양국에 '냉정과 침착'을 주문했다. 미국 외교에 영향을 미치는 '3차 아미티지 보고서'는 중국을 견제하려면 "한일 양국이 역사적 견해 차이를 부활시키려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고 했다. 그 모습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때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하지 않고 남북한 모두에 '냉정과 절제'를 요구했던 중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미국이 독도와 함께 남긴 또 다른 불씨는 천황제를 존속시키고 히로히토 일왕을 전범(戰犯) 재판에 세우지 않은 것이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성노예 문제를 부정하는 '집단 망각증'에 빠진 바탕에는 처벌되지 않은 전범 일왕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전후 일본을 냉전 시대 동아시아의 전략적 파트너로 삼기 위해 패전국으로 단호히 다루지 않았다.
미국은 일본도 독일처럼 양심적인 국가로 변모하길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 전쟁범죄 처리에서 미국이 일본의 형편을 봐줬던 1951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이 계속 비정상적인 질문을 하면 이제라도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 미국이 1951년 그때처럼 일본에 이중 신호를 보내면 한일 관계는 부서지고 동북아에서 미국 위상도 함께 흔들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