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4. 25
돛새치 부리 휘둘러 정어리 사냥 직접 관찰, 바다동물 최고의 가속도로
부리 돌기 이용해 정어리 균형 잃게 해 잡아먹기도…부리로 사냥 첫 직접 증거
» 부리를 강하게 휘저어 정어리떼를 공격하는 돛새치. 사진=크라우세 외, <왕립학회보 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흑새치(블루말린)나 돛새치, 황새치 등은 대양의 표층을 헤엄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물고기 가운데 하나다. 전 세계에 분포하며 몸길이가 5m에 이르는 이들 포식자의 공통된 특징은 뾰족 튀어나온 부리처럼 생긴 주둥이를 지녔다는 점이다.
» 플로리다에서 대형 돛새치를 낚은 어네스트 헤밍웨이.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긴 주둥이가 대체 무엇에 쓰이는지는 과학계의 오랜 논란거리였다. 두 가지 가설이 유력한데, 이 주둥이를 이용해 먹이를 사냥한다는 설과 최고 속도가 시속 130㎞에 이르는 빠른 유영에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이 그것이다.
앞의 가설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데, 새치의 위장을 열어 보면 먹이인 물고기의 피부에 맞은 듯한 상처가 있는 것들이 많았다. 문제는 상처 없이 멀쩡한 생선도 뱃속에서 발견되는데다 부리가 부러지거나 기형인 새치도 건강하게 잘 사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흑새치의 뾰족한 주둥이. 사진=미해양대기국(NOAA), 위키미디어 코먼스
» 황새치의 뾰족한 주둥이 표본. 사진=GFDL,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런데 최근 직접 관찰을 통해 이 가설을 처음으로 증명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크라우제 독일 훔볼트대 생태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B)> 23일치 온라인판에 실린 논문을 통해 대서양에서 돛새치의 먹이 사냥을 고속 촬영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사실 돛새치의 먹이행동을 직접 관찰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 물고기가 추격하는 정어리 떼도 만만치 않은 속도로 이동하는데다 높은 파도와 정어리 떼를 흩트려 사냥하는 돌고래의 훼방도 다이버들을 애먹였다.
그렇지만 돛새치가 먹이를 바다 표면으로 몰아 집단으로 사냥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연구진은 정어리떼에 이끌려 바닷새가 모여있는 곳을 따라다니며 4시간 동안 먹이 활동을 촬영할 수 있었다.
» 정어리 떼를 추격하는 돛새치. 사진=크라우세 외, <왕립학회보 비>
관찰 결과, 돛새치는 정어리 떼를 뒤에서 슬슬 쫓다가 사냥 순간이 오면 공처럼 뭉쳐 있는 정어리 무리 속으로 기다란 부리를 집어넣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늘고 긴 새치의 부리가 무리 속으로 들어와도 정어리가 놀라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돛새치의 부리가 일종의 스텔스 기능을 하는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부리를 정어리 무리 한가운데 집어넣은 돛새치는 이어 놀라운 속도로 부리를 가로로 휘저었다. 부리는 1초 동안 575도, 6m 거리를 움직였다. 부리의 속도가 워낙 빨라 미처 피할 틈이 없는 정어리 몇 마리가 부상을 입었고 이들의 비늘이 눈처럼 흩날렸다. 돛새치는 차례로 정어리떼에 공격을 가했고 부상을 입은 물고기를 냉큼 잡아먹었다.
돛새치가 부리를 휘두를 때 최고 속도는 초속 6.2m로 정어리는 도저히 피하지 못할 빠르기였다. 공격 때의 가속도는 1초에 초속 131.6m를 높이는 수준으로, 연구진은 “바다에 사는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가속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물속에서 손을 휘저어 보면 무척 힘이 드는데, 나아가 빠른 속도로 손뼉을 치려면 얼마나 큰 가속도가 필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 돛새치가 정어리 떼를 부리로 공격하는 일련 동작
그러나 돛새치가 부리로 때려서 즉사하는 물고기는 전혀 없었다. 부상을 입은 물고기를 나중에 잡아먹는데, 어쨌든 이런 사냥의 성공률은 10%에 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부리 휘두르기는 직접 먹이를 잡기보다 상처를 입혀 잡기 쉽게 만드는 것이 주 기능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돛새치 무리는 정어리 떼를 몇 시간이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부리로 후려친다. 점점 많은 정어리가 상처를 입고 동작이 굼떠진다. 이때 돛새치는 부리를 휘두르는 것보다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한 마리를 표적으로 삼아 툭 치는 공격을 했다. 정어리가 균형을 잃는 순간 잡아먹는 것이다. 이런 사냥 전략의 성공률은 33%에 이르렀는데, 부리에 난 돌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 돛새치 부리의 아래(a) 옆(B) 돌기(c, d) 모습. 사진=크라우세 외, <왕립학회보 비>
흥미롭게도 돛새치는 부리를 이용한 공격 직전에 몸 옆면의 빛깔을 은청색에서 검은색으로 바꾸고 지느러미를 한껏 펴는 행동을 했다. 연구진은 부리를 휘두를 때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지느러미를 펴며, 부리를 휘두를 때 동료와 충돌해 부상을 입는 것을 막기 위한 경고로 몸빛깔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추정했다. 돛새치는 때로 40마리까지 사냥에 나섰지만 공격 행동에는 한 마리씩 나섰다.
대양에는 숨을 곳이 전혀 없어 정어리 등 물고기들은 대규모 무리를 지어 자신을 방어한다. 따라서 이들을 잡아먹는 포식자들은 먹이 집단을 깨뜨리는 다양한 전략을 개발했는데, 돛새치 등 새치 무리는 늑대, 아프리카들개, 범고래 등과 마찬가지로 무리를 공격해 부상을 입힌 다음 끝까지 추적해 잡아먹는 전략을 쓰도록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 갓 잡힌 돛새치가 지느러미를 활짝 펼치고 있다. 사진=WIDTTF, 위키미디어 코먼스
한편, 몸 길이만큼이나 긴 꼬리를 지닌 환도상어도 꼬리를 휘둘러 먹이를 잡는 행동이 최근 밝혀진 바 있다.(■ 꼬리 긴 환도상어, 하이킥으로 정어리 사냥 밝혀져)
■ 돛새치의 부리를 이용한 정어리 떼 사냥 동영상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 Krause et. al., How sailfish use their bills to capture schooling prey, Proc. R. Soc. B. 2014 281 1784 20140444; doi:10.1098/rspb.2014.0444 (published 23 April 2014) 1471-295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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