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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지 달아준 새, 외국서 발견 연락 오면 로또 당첨 기분″

자운영 추억 2014. 5. 2. 21:27

김정수 2014. 0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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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새들 최대 관문 흑산도 방문기
몰려드는 여름철새로 봄부터 부산, 철새 길목 지켜서 가락지 채우느라 덩달아 분주
한국서 가락지 달아주는 철새들 수 중국·일본 부착 개체수 3%도 안돼, "조사 확대 필요"

 

메인사진 배냉기미 습지.jpg » 전남 신안 흑산도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 연구원들이 지난 22일 오후 흑산도 배냉기미 습지에서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 등에서 겨울을 보내고 한반도와 일본 등의 번식지로 이동하던 중 잠시 쉬려고 내려 앉은 여름철새들을 관찰하고 있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흑산도의 하늘이 부산해졌다.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에서 겨울을 난 철새들이 봄이 되자 북상을 시작해서다. 한국에서 여름을 보내 여름철새로 불리는 이들은 흑산도를 지나 한반도나 일본에 상륙해 번식한 뒤, 가을에 다시 흑산도를 거쳐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날아간다.
 

목포에서 서쪽으로 87㎞가량 떨어져 있는 흑산도는 20㎞ 더 서쪽의 홍도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많은 여름철새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홍도는 중국 남부에서 날아오른 철새들이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오다가 만나는 첫 섬이다. 게다가 흑산도는 제법 울창한 숲과 초지는 물론 습지까지 갖추고 있어 장거리 비행에 지친 철새들이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다.
 

흑산도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 권영수 센터장은 “흑산도는 홍도와 함께 여름철새들이 봄·가을에 월동지와 번식지를 오갈 때 중간 기착해 휴식하며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휴게소’의 구실을 하는 곳으로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다”며 “우리나라 최초의 철새 전문 현장 연구소인 철새연구센터가 흑산도에 자리잡게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흑산도 지도 그래픽.jpg » 여름철새 휴게소 흑산도의 지정학적 위치. 그림=철새연구센터

 

옛부터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 알려진 제비는 전국 곳곳에 눈발이 날리던 지난달 13일 이미 흑산도에 도착했다. 제비와 함께 노랑할미새·알락할미새·후투티·검은딱새·대륙검은지빠귀 등이 매년 봄 흑산도로 날아오는 여름철새의 선발대다.

 

철새연구센터가 멧새과의 소형 철새들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같은 종 가운데서는 암컷보다는 수컷이, 수컷 가운데서는 몸집이 큰 개체가 먼저 도착한다. 예비 아빠인 수컷들이 남보다 좀더 좋은 번식 장소를 차지하기 위해 서둘렀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철새들이 붐비면서 시작된 ‘흑산 휴게소’의 봄철 성수기는 5월 초순까지 이어진다. 이후 뒤늦게 도착한 꾀꼬리·두견이·검은등뻐꾸기·벙어리뻐꾸기 등이 번식지를 찾아 떠나고 나면, 가을에 월동지로 돌아가는 철새들이 다시 찾을 때까지 한산해진다.

 

조류 밴딩작업 1-그물에서 벗겨 주머니 담기.jpg »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의 한 연구원이 지난 23일 오전 흑산도 배냉기미 습지의 포획 그물에 걸린 흰배지빠귀를 벗겨내고 있다.

 

철새들이 몰려들면서 철새연구센터 연구원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철새 연구의 기초가 되는 이동 경로 연구를 위한 가락지 부착 작업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지난달 1일부터 철새들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센터 앞 진리 습지와, 센터에서 400여m가량 북쪽에 있는 배냉기미 습지에서 철새를 붙잡아 가락지를 채워 날려보내고 있다.

 

새의 다리에 채우는 작은 가락지에는 서울 광화문우체국 사서함 번호와 고유번호가 찍혀 있다. 다른 곳에서 이 새를 발견한 연구자가 가락지에 찍힌 주소로 발견 사실을 알려오게 해 이동 경로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조류 밴딩작업 2-가락지 부착.jpg » 채집한 새의 다리에 집게로 가락지를 부착하고 있다.

 

23일 오전 7시, 연구센터의 조숙영·박창욱 연구원과 함께 배냉기미 습지의 철새 포획 그물을 확인하러 나섰다. 갈대가 무성한 습지 주변에 둘러친 190여m 길이의 그물에는 참새와 비둘기의 중간 크기인 흰배지빠귀와 참새 크기의 절반 밖에 안돼 보이는 숲새가 한 마리씩 걸려 푸드덕거렸다. 흰배지빠귀는 이미 다리에 가락지를 차고 있었다. 찍혀 있는 고유번호를 조회하니 지난해 5월 센터에서 날려보낸 녀석이다.
 

“흰배지빠귀는 흑산도에도 서식하는 텃새여서 가락지가 채워진 채 재포획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박창욱 연구원의 설명이다. 실제 이날 흑산도 습지 두 곳에서 붙잡은 8종 21마리 중에는 가락지가 부착된 새가 4마리나 포함돼 있었다.

 

이들 모두 흰배지빠귀와 같은 텃새였다. 하지만 철새가 가락지를 찬 채로 포획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철새연구센터에서는 지난 8년 동안 2006년 12월 오스트레일리아와 2010년 8월 일본에서 각각 가락지를 부착해 날려보낸 붉은어깨도요와 사할린되솔새 등 13마리만 발견했을 뿐이다.
 

조류 밴딩작업 3-측정(부리 길이).JPG » 가락지를 붙인 흰배지빠귀의 부리 길이를 측정하고 있다.

 

철새연구센터에서 가락지를 달아준 철새가 외국에서 발견된 사례는 연구원들이 ‘로또 당첨’에 비유할 정도다. 홍도에서 2008년 9월17일 날려보낸 바다직박구리와 2010년 4월11일 날려보낸 검은지빠귀가 각각 한 달쯤 지나 타이완과 일본에서 발견됐다는 연락이 온 것이 전부다.

 

검은지빠귀한테 가락지를 단 조숙영 연구원은 “내가 가락지를 달아준 새가 외국에서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웃었다.
 

가락지 부착은 철새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종을 확인한 뒤 다리 굵기에 맞는 가락지를 채우고 날개와 부리길이, 체중 등을 측정해 곧바로 날려보낸다. 오전 7시 배냉기미 습지에서 붙잡힌 숲새는 중국 남부나 타이완·인도네시아·미얀마 등에서 겨울을 보내는 여름철새다. 고유번호 ‘17232’가 찍힌 0.04g짜리 알루미늄 가락지를 채워주고 체중을 달아보니 500원짜리 동전보다 약간 더 무거운 8.9g에 불과했다.
 

조류 밴딩작업 4-날려보내기.jpg » 가락지를 끼우고 측정을 끝낸 새는 신속하게 놓아준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립공원연구원의 ‘2012년 조류 조사·연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철새연구센터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흑산도와 홍도에서 관찰한 새는 337종에 이른다. 한국을 찾은 철새 440여종의 80%에 가까운 수치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진리 습지 주변과 농경지, 해안가, 배냉기미 습지를 모니터링하는 빙기창 연구원과 동행에서는 이런 수치에서 비롯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여름철새 뿐 아니라 한국에 잠깐 들렀다 북쪽으로 올라가는 깝작도요·청다리도요 등의 나그네새와 직박구리·동박새 등의 텃새에, 빙 연구원이 울음소리를 듣고 종을 확인해 준 것까지 다 합쳐도 20여종밖에 만나지 못했다.

 

빙 연구원은 “전날 너무 좋은 날씨에 편안하게 흑산도를 찾아온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날씨가 좋았을 때는 섬에 기착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는 철새들이 많다는 것이다. 빙 연구원은 “흑산도에 철새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일부터 궂은 날씨에 맞춰 들어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락지.JPG » 철새연구센터가 사용하는 금속 가락지를 편 모습. 가장 작은 가락지의 규격은 가로 7.8mm·세로 5.8mm·두께 0.4mm·무게 0.04g이고 서울 광화문우체국 사서함 번호와 고유번호가 찍혀 있다. 사진=철새연구센터

 

흑산도에서 새들을 붙잡아 가락지를 부착하는 작업은 매년 봄철 이동시기(3월1일~5월31일)와 가을철 이동시기(8월15일~11월30일)에 매일 아침 6시부터 정오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반복된다. 철새연구센터는 이번 봄에만 지난 23일까지 47종 542마리에 가락지를 달아 날려보냈다.

 

철새연구센터가 2005년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 가락지를 부착한 새는 216종 4만 1257마리에 이른다. 해마다 5000마리가 넘는 새들한테 가락지를 달아온 셈이다. 이 수치는 가락지 부착 연구를 하는 주변국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은 것이다.
 

권 센터장은 “일본은 60여곳, 중국은 70여곳에서 해마다 각각 20만마리가 넘는 새들을 포획해 가락지를 달아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가락지 부착 조사를 하고 있는 곳은 흑산도가 유일하다”며 “조류 생태와 질병 전파경로 연구, 멸종위기종 관리 등의 기초가 되는 철새 이동 경로 연구를 하려면 가락지 부착 조사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흑산도/ 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