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뱀장어 추적장치 삽입 조사 결과, 수심600m서 들쇠고래에 먹혀
먼바다 심해 산란지 향하는 뱀장어 한살이 신비 일부 밝혀져
» 최근 급격한 개체수 감소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유럽산 뱀장어. 담수에 서식하다 성숙하면 대서양 한가운데 바다로 이동해 산란한다. 사진=앤더스 아스프
뱀장어는 신비스런 물고기였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뱀장어를 잡았지만 아무도 새끼나 알을 본 사람이 없었다. 강이나 호수의 다 자란 뱀장어가 망망대해의 깊은 바다로 긴 여행을 해 알을 낳고 그 새끼가 다시 길을 되짚어 어미가 자라던 민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91년에야 알려진 아시아 뱀장어의 산란장은 필리핀 서쪽, 마리아나 해구 북쪽의 해저 산맥이다. 20세기 초에 밝혀진 유럽 뱀장어의 산란장은 대서양 서쪽 버뮤다 근처인 사르가소 해이다.
뱀장어가 알을 낳는 곳은 알았지만 거기까지 어떻게 가는지는 요즘에야 차츰 밝혀지고 있다. 뱀장어의 몸속에 추적장치를 삽입하는 방법이 개발되고부터의 일이다.
최근 유럽산 뱀장어는 개체수의 90%가 사라져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덴마크 연구자들은 유럽연합 차원에서 뱀장어 감소 원인을 찾기 위해 벌이는 조사사업의 일환으로 길이 1m에 이르는 성숙한 뱀장어 150마리에 이런 추적장치를 달아 프랑스와 아일랜드에서 풀어놓았다. 이 장치는 30초마다 수심을, 5분마다 온도를 측정해 저장하는데, 나중에 자료를 분석하면 뱀장어의 이동 경로를 자세히 알 수가 있다.
» 뱀장어를 풀어놓은 지점(별표)과 포식자에게 잡아먹힌 지점(점). 그림=<심해 연구 I>
풀어놓은 뱀장어 가운데 35마리로부터 추적장치를 회수했다. 강에서 자란 뱀장어한테 바다 여행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회수된 장치의 25%인 8개의 데이터는 그 장치를 간직했던 뱀장어가 포식자에게 먹혔음을 나타냈다.
뱀장어는 낮 동안은 수심 700~800m가량의 깊은 곳을 헤엄치다 밤에는 이보다 200m쯤 얕은 500~600m 수심을 헤엄쳐 이동하는 규칙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그런 양상이 어느 순간 중단되면 무언가에 잡아먹혔음을 알 수 있다. 연구진은 5마리는 대륙붕에서 큰 물고기에 먹혔고, 나머지 3마리는 수심 600m 심해에서 해양 포유류에 먹혔다고 추정했다.
» 뱀장어에 삽입했던 추적장치의 데이터. 낮엔 깊은 바다, 밤엔 얕은 수심으로 헤엄치는 규칙적인 유영을 하다 어느 순간 잡아먹힌 뒤 온도가 포유류 체온인 36도로 치솟는다. 그림=<심해 연구 I>
이 조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해양 포유류가 고래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추적장치에 저장된 데이터의 변화가 독특했다. 바닷물의 온도인 10도를 가리키던 온도 데이터가 36도로 치솟았다. 포유동물의 뱃속에 들어갔다는 증거이다. 온도는 이 동물이 먹이와 함께 물을 섭취할 때 약간 떨어지다가 다시 상승하는 양상을 보였다.
수심 자료는 더 눈길을 끈다. 바다 표면에서 5~7분 머문 다음 11~12분 동안은 수심 250~860m로 잠수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특히 수심 600~700m 지점에서 초속 1~2m의 빠른 속력으로 수직 하강하는 특이한 ‘스프린트 다이빙’을 했다.
연구진은 이 수역에 서식하는 물개는 이렇게 깊이 잠수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뱀장어를 삼킨 동물이 고래일 것으로 추정했다. 고래의 뱃속에서 뱀장어가 발견됐다는 보고는 지난 120년 동안 단 한 건에 불과할 정도로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로 고래는 깊은 바다에서 산란장으로 이동하는 뱀장어의 유력한 포식자임이 드러났다. 고래 가운데서도 연구진은 오징어를 주로 사냥하는 들쇠고래의 잠수특성이 이번 데이터와 거의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학술저널 <심해 연구 I> 최근호에 실렸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gnus Wahlberg et. al., Evidence of marine mammal predation of the European eel (Anguilla anguilla L.) on its marine migration, Deep-Sea Research I Volume 86, April 2014, Pages 32?38, http://dx.doi.org/10.1016/j.dsr.2014.01.00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자연·신비·환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치기 소년’ 뺨치는 바람까마귀, 거짓 경고음 51가지 구사 (0) | 2014.05.02 |
---|---|
[스크랩] 세계 최대의 소금호수 볼리비아의 우유니소금호수(Salar de Uyuni) (0) | 2014.03.12 |
칠레 아타카마 사막, 고래떼 무덤의 비밀 (0) | 2014.03.01 |
공항 새 퇴치 허가로, 딴 데서 보호새 밀렵 (0) | 2014.03.01 |
목숨 건 광란의 섹스, 주머니 쥐의 ‘정자 전쟁’ (0) | 2014.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