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고속도로 공사장서 고래 40마리 화석 온전한 상태로 발견
독성 적조로 떼죽음 추정, 폭풍 실려 해안가 옮겨져 청소동물 훼손 피해
» 아메리카 종단 고속도로 칠레 북부 지역의 도로공사장에서 발견된 고래의 대규모 화석지. 사진=스미소니언 연구소
지난 2010년 알래스카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고속도로가 칠레 북서쪽 해안을 지나는 곳에서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작업을 하던 블도저의 삽날에 거대한 뼈가 줄줄이 걸려 나왔다. 최근 이뤄진 화석 발견 중 가장 놀라운 성과의 하나로 꼽히는 화석지가 발견된 것이었다.
이곳에는 지금은 멸종한 다양한 고래와 해양 동물의 화석이 모래밭에 묻혀 있었다. 약 40마리의 수염고래, 바다코끼리 얼굴을 한 돌고래, 지금은 멸종한 향고래 등 크고 작은 고래를 비롯해 바다 나무늘보, 물개, 새치 등의 화석이 퇴적층에 들어 있었다. 도대체 아타카마 사막의 대규모 고래무덤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 대규모 고래 화석산지 위치. 그림=피엔슨 외, <왕립학회보 B>
니컬러스 피엔슨 미국 스미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고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왕립학회보 B> 26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이 화석지에서 대형 해양동물이 떼죽음한 이유를 분석했다.
화석지는 해안에서 약간 내륙 쪽으로 들어와 있지만 퇴적층이 형성된 650만~900만 년 전에는 바닷가, 좀 더 구체적으론 조간대 상부였을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화석은 8m 두께의 퇴적층 속에 4개의 층으로 나뉘어 분포했는데, 이는 해양동물의 비슷한 떼죽음 사태가 1만~1만 6000년 사이에 4차례 벌어졌음을 보여준다고 논문은 밝혔다.
고래가 떼죽음하는 사태는 요즘도 벌어지지만 화석의 양상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대개 바다에서 좌초하는 고래는 같은 종류끼리 무리를 짓는데, 이 화석지에선 매우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고래가 다른 해양동물과 섞여 있었다.
고래 화석은 대부분 배를 위로 향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연구진은 “고래가 바다에서 죽어 부패하면서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뒤집어진다. 요즘 바다에서 죽은 고래도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밝혔다.
» 거의 완벽한 상태로 발굴된 고래 화석. 사진=스미소니언 연구소
특이하게도 발견된 화석은 거의 완전하게 보전된 것이어서, 고래가 죽은 뒤 상어나 다른 청소동물에게 먹히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일부 게가 뜯어먹은 흔적은 남았다.
연구진은 퇴적층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 바다에서 죽은 고래 주검은 오래 지체되지 않은 상태에서 폭풍의 파도에 떠밀려 몇 시간에서 며칠 사이에 해안가로 옮겨졌다.
얕은 조간대는 상어가 접근하기 힘들다. 또 당시에도 아타카마 사막이 이곳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육지의 청소동물도 접근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떼죽음한 고래가 온전히 퇴적물에 묻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 포개어진 3마리의 고래 화석을 발굴하고 있는 연구진. 마치 모래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스미소니언 연구소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 고래의 떼죽음을 불렀을까. 대규모 지진해일을 먼저 떠올릴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주검의 훼손이 심한데 화석지에선 그런 흔적이 없다. 퇴적층에 쓰나미의 자취도 없었다.
수염고래가 무리지어 좌초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또 여러 종의 고래가 떼죽음한 것은 특정한 종에만 감염하는 바이러스가 이들 고래의 사인이 아니었음을 가리킨다.
연구진이 이 논문에서 사인으로 제시한 가설은 독성 적조이다. 유독 조류가 바다의 부영양화로 급격하게 넓은 해역에서 번지면서 이들이 먹이사슬을 거쳐 농축된 물고기를 먹은 고래가 떼죽음했거나, 고래가 호흡을 하면서 파도로 튀어나온 유독 적조를 흡수해 중독됐을 가능성을 연구진은 제시했다.
물론 퇴적층에서 유독 적조를 일으킨 조류의 화석이 검출됐다면 의문은 쉽사리 풀리지만 그런 증거는 없었다. 대신 연구진은 퇴적층 일부에서 철분으로 둘러싸인 작은 입자를 검출했는데, 이것이 그 조류의 흔적일 것으로 추정했다.
» 화석 발굴과 레이저를 이용한 3차원 지도 만드는 작업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사진=스미소니언 연구소
이 가설대로라면, 칠레 앞바다는 조류가 폭발적으로 증식한 적조가 광범위하게 벌어졌고, 이를 피하지 못한 해양 포유류가 일제히 떼죽음했다.
이들은 마침 불어닥친 폭풍의 높은 파도에 실려 깔때기 모양의 아타카마 사막 근처 내만의 조간대 상부로 밀려온 뒤 퇴적물에 쌓여 화석으로 굳어갔다는 것이다.
사람의 조상이 미처 침팬지 조상과 갈라지기 전인데, 어떻게 대규모 적조가 발생했을까. 이는 칠레 북부 해안이 심해에서 영양분이 풍부한 찬 바닷물이 솟아오르는 용승 해역인데다 안데스 산맥의 침식으로 조류의 필수 영양분인 철분이 다량 공급됐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연구진은 또 고래의 떼죽음 현상 자체가 매우 드물고 또 화석으로 보존될 확률도 매우 낮은데도 이런 화석지가 형성된 배경으로 “요즘도 외딴 남극해에서는 고래가 가끔 엄청난 규모의 집단을 이루기도 한다. 이 화석지는 당시에 고래의 무리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반증한다.”라고 설명했다.
논문은 칠레 서해안처럼 철분이 풍부한 용승 해역에서는 당시와 비슷한 해양 포유류의 떼죽음 사태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 책임자인 니컬러스 피엔슨은 “개인적으로 240m 길이의 도로 절개지에서 마이오세 말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던 해양 포유류의 모든 슈퍼스타들의 화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러 생물종이 한 데 몰려있었다.”라고 <비비시>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 2주일 안에 모든 발굴과 기록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야간에도 레이저 3차원 지도 작성 작업이 계속됐다. 사진=스미소니언 연구소
도로공사 일정 때문에 이 화석지의 발굴은 2주 만에 끝났다. 그러나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사라지는 화석지를 대신하기 위해 화석의 형태와 배치 등을 레이저를 이용해 3차원으로 재현한 지도를 만들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누리집을 통해 이들 화석과 화석지에 관한 3차원 영상과 다양한 고해상도 사진을 공개했다.
화석은 산티아고와 인근 도시 칼데라의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화석지는 포장도로 아래 묻혔다. 연구진은 비슷한 화석지가 부근에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칠레대가 후속 연구를 하고 있다.
■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화석지 3차원 영상 제작 과정 http://youtu.be/qRLZ29mLdSQ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yenson ND et al. 2014 Repeated mass strandings of Miocene marine mammals from Atacama Region of Chile point to sudden death at sea. Proc. R. Soc. B 281: 20133316. http://dx.doi.org/10.1098/rspb.2013.331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자연·신비·환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세계 최대의 소금호수 볼리비아의 우유니소금호수(Salar de Uyuni) (0) | 2014.03.12 |
---|---|
심해 여행 뱀장어 맛있는 고래 밥 (0) | 2014.03.01 |
공항 새 퇴치 허가로, 딴 데서 보호새 밀렵 (0) | 2014.03.01 |
목숨 건 광란의 섹스, 주머니 쥐의 ‘정자 전쟁’ (0) | 2014.03.01 |
유럽 곰개미, 새끼로 만든 뗏목 만들어 홍수 대피 (0) | 2014.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