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 일때 밀렵 성행, 허용 구간 벗어나 곳 총질에 주민 불안
안일한 당국 뒷짐 진 사이, 영문 모르는 야생동물은 눈을 감는다
» 재두루미, 큰기러기 등 보호조류가 시화호와 한강하구를 오가는 길목인 김포공항 일대 농경지에서 야생동물을 관리한다는 민간단체 일부 회원들의 밀렵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김포평야를 날아가는 큰기러기 무리.
지난 6일 오후 6시께 김포공항 주변인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농경지에서 엽총 소리가 들렸다. 수렵이 허가된 곳이 아닌데다 멸종위기종인 재두루미와 큰기러기가 도래하는 곳이다.
농로에 세워둔 스포츠실용차(SUV) 2대와 사람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차 두 대로 살금살금 접근한 뒤 급습했다. 외길인 퇴로를 막은 차엔 동료가 카메라를 들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다른 한 대로 이들에게 다가섰다.
» 지난 12일 저녁 밀렵꾼으로 의심되는 4명이 포착됐다. 오른쪽에 사냥개가 보인다.
“뭘 하고 있는 겁니까?” 한 사람이 당황한 듯 눈길을 피하면서 딴청을 피웠다. 미처 감추지 못한 엽총이 자동차에 기대어 있었다.
상대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차 트렁크를 열어 밀렵한 야생동물을 확인해 자술서를 받아 경찰에 고발하는 것으로 상황은 끝이겠지만, 그건 텔레비전에서나 보는 모습이다. 단속권이 없는 민간단체의 밀렵 감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상대는 총기를 지니고 있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다 차 안을 조사할 권한도 없다.
» 밀렵꾼으로 의심되는 이들이 당황한 듯 딴청을 피우고 있다. 미처 숨기지 못한 엽총이 차에 기대어 있다.
뜻밖에 상대가 ‘유해 조수 퇴치 허가증’을 내밀었다. “항공 안전을 위해 공항공사의 요청을 받아 새를 쫓고 있다. 밀렵감시도 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정황상 밀렵꾼이 분명해 보였지만 물증을 잡기 위해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김포공항 주변의 서울 강서구 오곡동, 인천 계양구,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등에서 밀렵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밤마다 들려오는 총소리에 불안해 못살겠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잇따라 들어오고 있고 들판에서는 밀렵으로 죽은 새들과 탄피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 밀렵꾼의 정체를 밝혀줄 중요한 단서가 이번에 발견된 것이다.
» 대장동 들판에서 밀렵된 쇠기러기의 모습.
» 대장동 들판에는 밀렵꾼들이 엽총을 쏠 때 떨어진 탄피와 잃어버린 탄알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12일에도 저녁마다 엽총을 쏴대고 기러기가 매일 수십마리씩 죽어 나간다는 제보를 받고 잠복에 나섰지만 소득은 없었다. 2월6일 다시 밀렵 제보가 들어와 나갔더니 앞에서 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보통 밀렵꾼들은 서너명이 한 조를 이뤄 두 명이 쏘고 한 명은 잡은 새를 거둔다. 한강 하구와 시화호 사이를 이동하면서 이곳을 지나는 큰기러기가 이들의 주요한 표적이다.
이들이 밀렵꾼이란 정황은 여럿 있다. 우선 공항의 조류 퇴치는 밤에 하지 않는다. 공항 요원과 달리 유니폼을 입지 않았고 사냥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다. 어쨌든 공항공사의 허가증까지 갖고 있으니 결정적 증거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2월14일 밀렵꾼으로 의심받던 최아무개씨가 제 발로 이를 신고한 주민에게 찾아와, 자신들은 밀렵꾼이 아니라 야생동물을 관리하는 민간협회 회원들로서 합법적으로 유해조수를 퇴치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최씨는 허가증을 내보이며 보호조류인 재두루미와 큰기러기는 쏘지 않고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를 주로 쏜다고 주장했다.
» 16일 밀렵의 증거물인 탄피를 수거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러나 당사자는 나중에 "탄피와 비닐 등 청소를 하러 갔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2월16일엔 이들이 사냥개 3마리를 데리고 와 밀렵의 증거물인 탄피를 수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항 안에서 새를 쫓을 때는 공포탄을 쏘지만 밀렵꾼은 산탄총을 사용하는데, 들판에는 그 흔적이 널려있다.
2월17일 대장동에서 총에 맞은 큰기러기 주검을 발견했다. 밀렵 때문인지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인지 가리기 위해 의뢰한 충남대 수의대의 부검 결과는 총상에 의한 죽음이었다. 총알은 배를 관통하여 오른쪽 넓적다리뼈를 부쉈다.
» 대장동 들판에서 수거한 큰기러기 주검의 엑스선 사진. 배를 관통한 총알이 넓적다리에 하얗게 박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공항공사에 문의했더니 김포공항 일대의 밀렵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분명해졌다. 공항공사는 지난해 11월25~12월31일 동안 야생동물을 관리하는 민간단체에 유해조수 퇴치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올
해에는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다. 게다가 유해조수 퇴치 범위도 김포공항 항공기 이착륙 구역 내 피해 지역과 주변 100m 이내에 국한된다는 설명이었다. 이들이 새를 잡던 곳은 공항에서 1㎞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실제로 공항공사는 19일 이 단체에 ‘김포공항 외곽지역 불법포획 활동 금지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을 보내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은 포획 허가 지역이 아니며, 공사의 구제요청 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불법적 포획활동을 하고 있으니 이를 즉각 중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사는 이 단체와의 구제협정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공사는 포획 작업자에게 교통비와 식비로 하루 1인당 1만원을 지급하고 퇴치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면 연 1회 200만원의 후원금을 지급한다는 협정을 맺은 바 있다. 공항공사는 12명의 엽사를 동원해 공항 안에서 새를 쫓고 있으며 공항 외곽의 새를 퇴치하기 위해 지난해 22명, 올해는 35명의 엽사에게 이 일을 맡기고 있다. 이로써 한강하구 일대를 오가는 철새를 위협하던 밀렵의 실체는 다름 아닌 야생동물의 보호를 내세운 민간단체 일부 회원의 불법행위임이 드러났다.
» 김포공항 주변의 농경지와 습지는 한강하구와 시화호를 잇는 철새 이동의 요충지이다. 대장동 들판을 나는 큰기러기 무리.
» 김포공항 주변을 나는 재두루미 무리. 공항 주변에 희귀한 두루미가 도래하는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공항 주변의 이 지역은 철새들이 휴식을 취하고 먹이를 먹는 곳으로서 한강과 시화호를 오가는 철새들의 이동 길목으로 매우 중요하다. 김포공항 담장 너머에 국제적 보호조인 재두루미가 서식한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새들이 항공기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사실이다. 대한항공의 자료를 보면, 항공기와 조류의 충돌은 2010년 149건, 2011년 151건, 2012년 156건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른 정비 비용, 항공기 지연 등 영업 손실비용만도 해마다 수십억원에 이른다. 그렇지만, 공항 안의 새를 쫓는 것을 넘어 공항 밖에서 마구잡이로 새에게 총질을 하면 놀란 새들이 오히려 공항 안으로 쫓겨 들어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2월12일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날개가 부러진 재두루미를 발견하였다. 재두루미가 총상을 입은 채 발견돼 구조하는 일이 지난 6년 동안 5번 있었다. 큰기러기의 사체는 해마다 30여마리 수거한다.
» 지난해 12월12일 김포의 아파트단지에 떨어진 재두루미는 총알을 맞은 듯 날개의 부상이 심했다.
행정구역이 인접해 책임소재가 모호한 경기도 김포시 신곡리, 인천 계양구 동양동, 서울 강서구 오곡동,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일대에서는 지난 10여년 동안 큰기러기 사체와 엽총 탄피가 자주 발견되는 사각지대였다. 이곳이 합법을 가장한 밀렵지대라는 사실을 이번 밀렵감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엽사들은 잡은 새를 소각한다고 말한다. 시군구가 포획을 허가한 조류에는 종별의 꼬리표를 부착하여 신고하는 것이 정상적일 텐데 포획한 당사자가 소각한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포획허가를 내준 서울시 강서구청과 인천시 계양구청이 포획허가의 사후관리를 통해 잡은 야생동물의 종류, 수, 포획 장소 등을 해당부서에 제대로 신고하는지도 의심스럽다. 모든 정황에 비추어 안일한 행정이 밀렵꾼들에게 사냥터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유해조수로 분류된 새들은 거의 야간에 활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큰기러기는 야간에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밀렵은 조류의 생태를 잘 알고 있는 엽사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었다. 다른 지역 공항 주변에서도 유해조수 퇴치라는 명분 아래 밀렵이 벌어지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 앞선다.
항공 안전을 위해 새를 총으로 쏘아 잡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조류의 정확한 이동 통로, 습성, 종류 등을 고려해 먹이주기 등을 통해 이동 경로를 바꾸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 해마다 겨울이면 밀렵신고가 끊이지 않지만 민간단체로서는 이를 막기가 힘에 부친다. 사진은 2012년 총에 맞아 죽은 큰기러기를 모아 놓은 모습이다.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에 해마다 들어오는 밀렵 신고는 20여 건에 이른다. 엽총탄으로 기러기를 떼죽음시키고 독극물을 풀어 연쇄 죽음을 몰고 오는 일이 계속 벌어진다. 요즘엔 살상의 손맛과 쾌감을 느끼려 법정 보호종에 총질을 하는 밀렵꾼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단속 권한이 없는 민간단체의 힘으로 이런 밀렵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때문에 산이나 들판에서 밀렵꾼을 현장에서 잡았다 하더라도 경찰이 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리며 밀렵꾼과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다.
밀렵꾼은 감시단의 이런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야생동물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는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허점투성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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