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2. 20
바닥에 애벌레 깔고 위에 일개미 3~4겹, 중앙엔 여왕개미 위치
이타주의 아니라 물에 몇 시간 잠겨도 끄떡 없어, 애벌레는 부표 구실
» 홍수로 물이 차오르자 유럽 곰개미가 무리를 이뤄 뗏목을 만들고 있다. 사진=D. 갈베츠, <플로스 원>
사회적 동물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역경에 집단적이고 유기적으로 대처한다는 점이다. 개체 혼자는 이기기 힘든 생태적 도전에도 살아남는다. 재래종 꿀벌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대항하지 못하는 커다란 장수말벌에 맞서기 위해 장수말벌 주위를 수많은 일벌이 둘러싸 ‘익혀’ 죽이는 전략을 쓰는 것은 그런 예이다.(■ 관련 기사: 꿀벌, 무법자 장수말벌 공처럼 말아 ‘열폭탄’)
개미도 그런 전략을 잘 발휘한다. 남아메리카 잎걷이개미는 군대개미가 침입했을 때 몸집이 큰 일개미와 작은 일개미가 정교한 방어선을 구축해 막는다.
싸움이 아니라 재해에 맞설 때도 집단의 힘을 발휘한다. 특히 범람원에 사는 개미는 늘 홍수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빗물에 씻겨 떠내려가면 무리가 흩어지고 물고기 밥이 될 수도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에 사는 불개미의 한 종은 홍수가 나면 여왕개미를 안전한 안쪽에 넣은 채 일개미들이 여러 겹으로 둘러싼 뗏목을 만들어 떠내려간다. 뭍에 닿으면 신속하게 새로운 집단을 건설한다. (■ 관련 기사: 불개미, 여왕 모시고 공처럼 뭉쳐 ‘뗏목’)
그런데 큰턱과 발목마디발톱을 서로 이어 뗏목을 만들 때 문제가 하나 있다. 누가 물속에 처박히는 뗏목 밑부분에 자리 잡을까가 딜레마로 떠오른다. 과연 이들이 이타주의로 이 문제를 푸는지 실험한 이들이 있다.
제시카 퍼셀 스위스 로잔대 생태학자 등 스위스 연구진은 온라인 공개 학술지인 <플로스 원> 19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개미가 몸 뗏목을 만들 때 꼭 이타주의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 스위스 알프스 산맥에 있는 유럽 곰개미 서식지. 범람원이어서 늘 홍수의 위험에 직면한다. 사진=J. 블라, <플로스 원>
연구진은 유럽의 알프스와 피레네산맥 범람원에 흔하게 서식하는 유럽 곰개미(포르미카 세리시)를 대상으로 실험실에서 수위를 올려가며 개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고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물이 차오르면 일개미들은 여왕개미와 장차 개미가 될 애벌레를 한 곳에 모은 다음 일개미가 그 주변에 몰려든다. 물이 차츰 차오르면 일개미는 서로 뭉치는데 여왕개미를 무더기의 중심부에 자리 잡도록 조금씩 옮긴다. 마침내 수위가 올라 개미 무더기가 뗏목이 돼 떠내려가도 여왕개미는 물이 닿지 않는 안전한 곳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왕개미와 함께 중앙에 위치해야 할 것 같은 애벌레는 뗏목의 바닥에 깔아놓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개미들은 홍수가 나 떠내려갈 지경이 되면 애벌레를 큰턱으로 물어 부지런히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일개미가 3~4층 서로 몸을 연결해 뗏목을 형성하는 것이다.
■ 애벌레를 바닥에 깔고 뗏목을 만드는 개미의 모습 동영상
연구진은 실험 결과 애벌레는 3시간 동안 물에 잠겨도 거의 피해가 없어 뗏목의 재료가 되지 않은 유충에 견줘 부화율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게다가 애벌레는 일개미보다 부력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애벌레를 바닥에 깐다 해도 뗏목을 이루는 일개미의 일부는 물속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구진의 실험 결과 개미를 8시간 동안 물속에 완전히 잠가 놓아도 79%가 살아났고 한 시간쯤 뒤에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에 빠진 개미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회복에도 시간이 걸리는 손해를 보긴 하지만 그리 큰 비용은 아니다. 애벌레를 뗏목 바닥에 깐 개미들이 그렇지 않은 개미들보다 회복 시간이 짧아 홍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urcell J, Avril A, Jaffuel G, Bates S, Chapuisat M (2014) Ant Brood Function as Life Preservers during Floods. PLoS onE 9(2): e89211. doi:10.1371/journal.pone.008921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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