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 食 】

누가 빈대떡을 돈 없을 때 먹는 음식이라 했는가

자운영 추억 2014. 1. 23. 21:22

 

입력 : 2014.01.23 08:00

한식이야기. 빈대떡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흘러간 유행가인 ‘빈대떡신사’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노래를 부른 故 한복남 선생은 수많은 음식 중 왜 돈 없을 때 먹는 음식으로 빈대떡을 꼽았을까.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 소리를 뒤로하고 찌그러진 양철그릇에 탁주 한 사발 들이키며 빈대떡 한 점 집어 먹는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일까. 다소 처량한 모습이기는 하나 누구나 한번쯤 겪어 봤을법한 일이다. 그로 말미암아 빈대떡에게 서민의 음식이란 의미가 부여됐으리라.


	녹두빈대떡
녹두빈대떡

빈대떡의 유래에 얽힌 이야기의 대부분은 가난한 이들과 관련된 것이 많다. 조선시대에 흉년이 들면 당시의 세도가에서 이를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들에게 “어느 집의 적선이오”라며 던져준 음식이라는 이야기나 지금은 서대문 어디쯤인 정동(貞洞)에 유독 빈대가 많다고 하여 빈대골이라 불렀는데 이곳에 이 음식을 파는 장수가 많아 빈대떡이 됐다는 설화가 그것이다. 국어학자 방종현은 빈대떡을 ‘빈자(貧者)떡’, 즉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빈대떡이 태생부터 서민적인 음식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상식문답>의 기록을 보면 빈대떡은 빈자떡이 변형된 말이고 빈자떡은 중국의 ‘빙자(餠飣)에서 온 듯하다고 추측하고 있다. 빙자란 흔히 제사를 지낼 음식을 제기에 올리는 과정에서 안정적으로 음식을 높이 쌓을 수 있도록 아래쪽에 괴는 음식을 일컫는다. 즉, 빈대떡이 주인공은 아니나 제사상에 올릴 목적으로 만든 음식이라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빈대’의 의미가 우리가 흔히 아는 뜻이 아닌 손님을 대접한다는 ‘빈대(賓待)’의 의미를 가졌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조선시대 궁중에서 명나라 사신을 대접할 때 내놓은 음식을 기록한 <영접도감의궤>를 보면 병자(餠煮)라는 것이 있는데, 이 음식이 빈대떡과 매우 유사하다. 녹두를 갈아 참기름에 지져낸 음식으로 녹두병이라 부르기도 했다. 민간에 널리 퍼지기 이전에는 손님 접대용으로 내놓던 음식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조선시대 조리서인 <규곤시의방>에서는 빈대떡을 만드는 법에 대해 ‘거피한 녹두를 가루 내어 되직하게 반죽하고 번철의 기름이 뜨거워지면 조금씩 떠놓고 그 위에 거피하여 꿀로 반죽한 팥소를 놓고 그 위에 다시 녹두반죽으로 덮어 지진다’고 설명하고 있고, <규합총서>에서는 ‘같은 방법으로 만든 빈대떡에 위에 잣을 박고 대추를 사면에 박아 꽃전모양으로 만든다’고 전하고 있다. ‘떡’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지금의 빈대떡이 예전에는 정말 ‘떡’처럼 만들어졌던 것이다.

현재의 빈대떡은 팥소가 아닌 고기와 다양한 채소 등을 섞어 전처럼 부쳐낸 음식이다. 단출한 서민의 음식에서 점점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한 별미로 진화하고 있다. 생굴이나 홍합, 오징어, 낙지 등의 신선한 해산물이 들어가는 것은 예삿일이고, 치즈 같은 서양음식과도 조화를 이뤄 재탄생 하고 있다. 면적이나 두께도 갈수록 비대해지며 주머니 가벼운 ‘빈대떡신사’가 부쳐먹기에는 버거운 고급음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선닷컴 라이프미디어팀 정재균 PD jeongsan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