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08 09:17
궁중 식생활을 ‘메모’한 발기
궁중음식을 연구하는 자료로 궁중연회의 시작과 끝을 적어둔 『진연의궤』, 『가례도감 의궤』, 『영접도감 의궤』는 모두 대규모 잔치의 기록이었으나 그 이외 궁궐에서 벌어졌던 작은 잔치나 제사에 관련된 기록은 ‘발기(發記)’에 남아 있다.
발기는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작성된 것으로, 한지 두루마리에 일정한 형식과 정연한 한글궁체로 쓰여 있고, 또 같은 내용이면서 반지(半紙) 같은 얇고 질이 떨어진 종이에 서투른 글씨로 아무렇게나 적어 놓은 메모지 같은 것이 간혹 존재한다.
발기 중에 궁중 음식과 관련된 것으로는 진어(進御) 및 사찬(賜饌)발기, 제례 혹은 상례와 관련된 진향(進享)발기, 다례(茶禮)발기, 그리고 반사(頒賜) 물목 발기 등 500여 종에 이른다. 발기는 크게 접대식이나 제사식으로 볼 수 있는데 탄일이나 생신, 양로연에 왕족 뿐 아니라 내·외빈, 척신(隻身) 손님에게 베푼 음식내용, 천연두와 같은 특이한 병후 회복을 축하하기 위해 음식을 차리거나 약방에서 왕족의 보양식에 관한 내용까지도 궁중음식의 더 많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접대식 발기는 접대상의 구성을 가리킨 것으로 관례(冠禮), 가례(嘉禮), 장례(葬禮) 시의 접대식, 병 회복을 축하하는 접대식, 각종 경사에 내리는 접대식, 각종 행사시의 접대식에 관한 것이다. 별다례 발기에는 정월대보름, 삼월삼짇날, 초파일, 단오, 유두, 말복, 칠석, 추석, 중양절, 동지 등 궁중에서 각 절기마다 상에 올랐던 궁중음식의 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1900년부터 1906년 사이 탄일 발기에서는 고종 7월 25일, 순종 2월 8일, 영친왕 9월 25일, 귀비 엄씨 11월 5일로 날짜와 대상이 분명히 나타나므로 참여한 손님과 축하를 나누기 위해 신하들에게 내린 상차림의 규모와 음식까지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1902년 9월 ‘아기씨(영친왕) 생신 조반상과 진어상 발기’에는 꿀찰시루편·녹두찰시루편·당귀메시루편·백설고·양색주악·석이단자·율단자·화전을 담은 떡 한 그릇, 약식, 전복초·누름적, 잡찜, 생선전유아·생합전, 양전유아·간전유아, 편육·족편, 저태·저숙편, 각색어채, 잡탕, 면, 만두, 초장, 개자(겨자)를 고종, 순종, 영친왕께 올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입맛을 돋은 궁중 생선, 조기와 웅어
발기에 기록된 생선 음식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월령 진상 식품 중에 조개·참조기·생오징어·구이용굴비·은구어·쏘가리·참게·소라·생굴·낙지·숭어·전복·처어·대구·해삼·문어·송어 등의 어류가 보인다. 날씨가 춥거나 이른 봄, 늦가을이 되어야 살아있는 생선을 먹을 수 있으며, 대부분 소금 간을 짜게 또는 싱겁게 하여 반쯤 말리거나 완전 건조시킨 상태로 궁에 들어오게 된다.
봄이 되는 3, 4월에 잡히는 조기는 서해바다를 접한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에서 비늘을 모두 긁고 손질한 상태로, 구워 먹기 좋게 말린 채 들어온다. 조기는 기운을 나게 하는 생선이며, 머리에 돌 같은 것이 있다 해서 석수어(石首魚)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 고대문헌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보면 낙랑(樂浪)에 조기가 난다 했으니 조기의 역사도 유구하다 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태조 1397년 4월 1일 새로 난 석수어를 종묘에 천신(薦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 세조 때는 사신이 가져가는 진헌물목에 조기 1천 마리[尾]가 들어가 있었다. 또 조기에서 나오는 어교는 활을 만드는데 알맞아 관찰사에게 바치게 하였다. 성종 때는 조기알젓을 황제에게 올리는 물목으로 쳤으며 가난한 성균관학정에게 석수어를 내린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 팔도 명물 토산품과 별미음식을 소개한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황조기[黃石魚]가 나오는데, 조기는 아주 큰 것은 굴비를 만들어 입맛 없는 여름 반찬으로 굽거나 물을 조금 붓고 찜을 하여 어른들 상에 올리며, 맑은 장국에 조기를 토막을 내 넣고 쑥갓을 많이 넣어 담백하게 맑은 탕을 끓여 먹었다. 궁중에서는 조기를 이용해 젓갈로 만들어 많이 썼는데, 궁중젓국지는 조기젓국물로 간을 맞추는 김치이다.
봄철 궁중에 진상되던 생선 중 또 하나는 바로 웅어[葦魚, 위어]로 『도문대작』을 비롯한 여러 고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1820년경 서유구가 기록한 『난호어목지』에 보면 “강호(江湖)와 바다가 통하는 곳에 나며, 매년 4월에 소하(遡河)하는데 한강의 행주(杏洲, 지금의 幸州), 임진강의 동파탄(東坡灘) 상하류, 평양의 대동강에 가장 많고 4월이 지나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웅어는 한강 하류인 행주나루와 고양(高陽)에 사옹원의 한부서인 위어소를 두고 관리하였으며, 천신(薦新)이나 제사상의 중요품목, 궁중조달물품으로 왕가에 진상하니 궁중에서 그 계절에 가장 맛있게 먹었던 생선임을 알 수 있다. 웅어는 기름지고 잔가시가 많아 뼈가 억세기 전에 잘게 회를 쳐 먹거나 다져서 쇠고기와 섞어 둥글게 뭉쳐 웅어 완자탕을 해서 먹었다. 또 상추쌈을 먹을 때 된장조치, 장똑똑이, 웅어감정을 끓여 같이 싸서 먹는다.
궁중에서 즐겨먹던 식품과 음식들은 현재 잊힌 음식으로 되어 버린 경우가 많다. 요즘에는 조기가 귀해서 현재의 궁중음식과 같이 고급음식이 되었고, 과거에는 최고의 궁중에 진상되던 생선인 웅어는 하찮은 물고기가 되었으니 세월은 돌고 돌아가는 것 같다.
글 한복려(중요무형문화재 조선왕조궁중음식 기능 보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