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 食 】

삼성, 청와대 등 건배주로 채택된 막걸리들의 특징은?

자운영 추억 2014. 1. 23. 21:11

 

입력 : 2014.01.23 08:00

2014년, 막걸리와 전통주 업계에는 신선한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73세 생일에 진행된 삼성그룹 신년만찬회에서, 처음으로 기존의 와인이 아닌 전통주가 만찬주로 선정된 것이다. 선정된 전통주는 80년째 3대를 이어가는 충남 당진 신평 양조장의 ‘백련 맑은 술’. 그리고 옛 문헌에만 남아있는 향이 좋아 삼키기 아깝다는 뜻의 석탄주(惜呑酒)를 복원한 방식의 ‘청주 자희향(自喜香)’이다. 이처럼 건배주로 쓰인 대표적인 지역 막걸리는 뭐가 있을까?

삼성그룹 신년만찬회 디저트 와인, ‘청주 자희향’
자희향은 나비 축제로 유명한 전남 함평군의 ‘자희자양’이라는 도가에서 빚어지는 술이다. 자희향(自喜香)의 뜻은 ‘스스로 기뻐하는 향’이란 의미로 그 이름만큼이나 과실향이 풍부하다. 이번에 디저트와인으로 쓰인 것은 ‘청주 자희향’인데, ‘탁주 자희향’ 역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프리미엄 막걸리이다. 전통 누룩에 전라도 찹쌀을 사용하여 옹기에 100일 이상을 숙성시키는 것으로, 일반 청주 및 약주와는 달리 살균처리를 하지 않은 생(生)으로 유통하며, 동시에 합성 감미료 등을 전혀 넣지 않은 무첨가 전통주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자희향 청주(국화주), 자희향, 자희향 나비
왼쪽부터 자희향 청주(국화주), 자희향, 자희향 나비. (출처 신요가 http://sinyoga.co.kr/)

탁주 자희향은 저도수 8도의 ‘자희향 나비’와 조금 더 도수가 높은 12도의 ‘자희향’으로 나뉘는데, 이 탁주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가라앉은 아랫술과 윗술을 나눠서 마시는 방법이다. 특히 윗술의 맛은 포도 껍질 뒷면의 부드럽고 새콤달콤한 매력이 느껴진다고도 하며, 탄산이 있다면 스위트 와인의 대명사인 모스카토 분위기도 있다. 탁주인 아랫술을 마시면 부드럽고 이제 막 갓 짜낸 신선한 과실향과 적절히 발효된 찹쌀의 매끄러움이 입안을 풍부하게 감싸주는 느낌으로, 일반 막걸리와는 확연한 맛을 자랑한다. 다만 전체적으로 달콤함이 입안을 감싸주는 만큼, 음식과 같이 즐기는 식중주 보다는 식전주 또는 식후주로써 좋다는 평이다.

청와대 막걸리 뒤에 숨겨진 오랜 숙성의 귀한 약주(藥酒) ‘백련 맑은 술’
‘백련 맑은 술’은 3대째 80년을 이어오는 막걸리 명가 중 하나인 충남 당진 신평 양조장에서 빚어지는 약주(藥酒)이다. 서해 갯벌과 연결되는 충남 당진의 간척지에서 재배되는 해나루쌀에 사찰방식으로 건조한 백련 잎을 동시에 발효시킨 술로 알려져 있다. 이제 막 발효된 탁주 상태의 술에 가수(加水)를 통해 도수를 낮춰 가볍게 걸러내면 2009년 청와대 전시 막걸리로 선정된 ‘백련 막걸리’가 탄생하게 되고, 물에 희석하지 않고 원액에 가까운 도수로 수개월간의 장기숙성과정을 거친 것이 ‘백련 맑은 술’이다. 이 ‘백련 맑은 술’ 역시 약주로는 드물게 생(生)으로 유통을 하는데, 개인적인 견해로는 생 특유의 상쾌함에 백련 잎 자체가 주는 부드러운 촉감이 마치 생차(生茶)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다. 생으로 유통을 하지만, 완전발효를 통해 생막걸리 등과 달리 탄산은 거의 없다.

2013년 신평 양조장은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 신평 양조장만이 가지고 있는 100년 가까운 고택 및 항아리의 모습은 대한민국 근대문화 유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서해안 여행, 당진 여행시 들러 볼만한 코스다.


	(위)신평 양조장 뒷 뜰 모습/(아래)백련 막걸리와 백련 맑은 술
(위)신평 양조장 뒷 뜰 모습 /(아래)백련 막걸리와 백련 맑은 술(출처 신평 양조장 홈페이지http://koreansul.co.kr/)
국내 최초의 막걸리 건배주 ‘자색고구마’
국내 최초로 건배주로 쓰인 막걸리는 프리미엄 막걸리 제조업체인 배혜정도가에서 만든 ‘자색 고구마’이다. 2009년 일본 하토야마 총리가 방한했을 때 오찬 시 사용되었으며, 당시 고구마 품종은 건미라는 국내 품종과 일본의 `야마카와 무라사키(山川紫)'라는 품종을 교배해 국내에서 재배한 것으로, 양국의 `화합, 교류'를 상징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저장성을 좋게 하기 위해 저온살균처리를 해 장기보존이 용이하다. 경기미 100%에 여주산 자색고구마, 알코올 도수는 8도로 일반 막걸리 6도에 비해 약간 높은 편이다.


	자색고구마
자색고구마(출처 배혜정도가 홈페이지 http://www.baedoga.co.kr/)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공식 건배주 ‘언양의 복순도가’
막걸리를 좀 아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샴페인 막걸리로 알려진 프리미엄 막걸리이다. 뚜껑을 여는 순간 투명 병 속의 탄산이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발효의 원리를 조금만 안다면 뚜껑을 여는 재미마저 주는 막걸리이다. 역시 100% 국내산 햅쌀로 빚어지며, 전통방식 그대로 옛 항아리를 고집하는 곳이다. 곡물이 발효된 과실향과 힘찬 탄산의 알갱이가 입안에서도 느껴지는 청량감은 다른 막걸리에서 느끼기 어려운 차별점이다. 참고로 소량생산인 관계로 재고가 없을 때가 많으니 미리미리 연락을 통해 주문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알코올 도수는 5도로 건배주 중 가장 낮다.


	언양의 복순도가
언양의 복순도가(출처 복순도가 홈페이지 http://www.boksoon.com/)
모든 건배주의 공통 특징은 정성이 들어간 ‘국내산 햅쌀’로 빚었다는 것
기존의 막걸리는 가격 경쟁이 워낙 심하고, 막걸리 자체가 저가라는 인식이 있어 아직도 여러 업체들은 수입쌀이나 정부미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건배주들의 공통된 특징을 보면 모두 국내산 햅쌀만을 고집하고 있다. 가격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가 되더라도 우리 문화를 우리 햅쌀로 지켜나간다는 만드는 이의 용기와 철학이 담겨있는 술이다.

막걸리 시장은 병당 50원만 올라도 전문 대리점에서 구매를 꺼린다. 그래서 소비자가 좋은 막걸리를 찾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좋은 재료로 만든 막걸리를 소비자가 직접 찾아주는 시장과 문화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말이다. 이러한 시장과 문화 형성을 위해서는 지속해서 대기업 및 정부에서 좋은 전통주와 막걸리를 발굴, 건배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 국가의 전통주 문화는 가장 부가가치 높은 문화이자 상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글,사진 제공 /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mw@jurojuro.com>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