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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야구, 야구밖에 모르는 '야구바보'… "동네 게임도 작전 짤 사람"

자운영 추억 2013. 7. 19. 11:52

  • 김수혜 기자
  • 입력 : 2013.07.19 03:05

    [롱런의 비결] 프로야구 원년부터 31년간 활약한 現役감독 김성근

    이기고 싶을 때 찾는 감독 - 영전보다 강등·경질 더 잦아
    직함 16번 갈리면서 버텼다, 변기에서도 연구… 치질까지

    선수들 "그 밑에서 뛰고 싶다" - 약팀도 강팀으로 조련시켜
    無名을 스타로 키워내… 노장 선수 줄줄이 재기시켜

    좋아하는 일 평생 잘하는 '롱런(Long Run)'. 모든 사람의 꿈이다. ①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②개인의 실력·노력으로 ③20년 이상 뛴 A급 현역을 골랐다. 롱런 주인공을 수십 년 지켜본 지기(知己)들에게 "그 사람이 남과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롱런하는 사람들이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뭘까.

    1996년 김성근(71)이 쌍방울레이더스 감독 할 때, 롯데자이언츠 감독을 지낸 박영길이 운동장에 들렀다. 둘은 한때 OB베어스와 삼성라이온즈 감독으로 붙었던 사이다. 김성근이 불쑥 물었다. "4번 타자가 공 칠 때 자꾸 머리가 돌아가요. 어떻게 고쳐야죠?"

    박영길이 "야구하면서 그런 일은 평생 처음이었다"고 했다. "감독이 다른 감독에게 모르는 거 묻기 쉽지 않아요. 그 양반은 묻더라고. '김성근 오래가겠다' 했어요."

    고수(高手)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박영길(72)은 타격 지도의 일인자로 꼽힌다. 그는 김성근의 롱런 비결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적장에게도 물어보는 열정, 제자를 키우려고 무슨 일이든 하는 자세. 고수는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자신 있거든."

    
	김성근 감독 일러스트와 한국 프로야구 원년 지도자 명단 표
    일러스트=유재일 기자

    프로 야구 원년(82년) 지도자 중 아직 더그아웃에서 버티고 있는 이는 김성근밖에 없다. 여기까지 그는 연거푸 좌절했다. 프로 지도자가 된 뒤31년간 직함이 16번 갈렸다. 코치 하다 감독이 되거나 2군 감독 하다 1군이 된 거보다 그 반대가 많았다. 자기식대로 야구하기 위해서라면 소속 구단과 모기업도 들이받았다.

    그는 그때마다 다시 섰다. 평생 라이벌 김응룡(72)이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성근을 꺾고 "'야구의 신(野神)'과 싸운 기분"이라고 했다.

    대안 없이 살아라

    김성근은 환갑 넘어 일본 지바롯데마린스 코치로 갔다(2005~2006년). 돌아온 뒤 65세에 첫 우승을 하고, 66세에 1000승 감독이 됐다. 한화 이글스 감독을 지낸 김인식(66)이 "일본에서 돌아온 김성근과 겨뤄보고 '야구가 커졌구나' 하고 느꼈다"고 했다.

    하일성(64) KBS N 해설위원이 "그 양반은 한마디로 '대안'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일본에선 일본 사람 대접 못 받고, 한국에선 한국 사람 대접 못 받았어요. 대다수 사람은 '이거 안 되면 저거 한다'는 대안이 있어요. 김성근은 오로지 야구, 야구, 야구, 야구예요."

    김성근이 99년 시즌 막판 쌍방울 더그아웃을 비웠다. 선수들에게 "잠깐 다녀온다"고 했다. 알고 보니 신장암 수술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책에 "암 걸리고 맨 먼저 든 생각이 '야구 못 하면 어떡하나'였다"고 썼다.

    외아들 김정준(42·SBS ESPN 해설위원)에게 김성근은 큰 산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그만큼 아버지가 어렵고 컸다. "아마 꿈도 야구 꿈만 꾸실 거예요. 당신 입으로 아프다는 거 한 번도 못 들었어요. 약상자 보고 '아, 약 드시는구나' 해요. 가슴 아플 만큼 약상자가 꽉 차 있어요."

    피 토하도록 훈련해라

    LG 내야수 최동수(42). 2001년 LG 2군에서 김성근과 처음 만났다. 벼랑 끝이었다. 프로 생활 7년인데 이뤄놓은 게 없었다. "훈련이 상상 이상이었어요. 하루에 스윙을 5000번 하니까 저녁 때 손이 안 펴졌어요. 영감님이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줬어요."

    김성근은 바둑도 골프도 안 한다. 낚시터·영화관·룸살롱도 안 간다. 그가 3남매 키울 때 르망·프라이드·봉고가 불티나게 팔렸다. 김성근은 면허 자체를 안 땄다.

    
	야구 관계자들이 말하는 '김성근이 어떤 사람이냐면...' 그래픽

    그는 혼자 밥 먹고, 밤새 타선(打線) 짜고, 쉴 새 없이 메모하고, 화장실 갈 때 책 들고 간다. 변기에 앉아서 야구·경영·역사서 섭렵하다 치질 걸렸다. 야구장에 가면 하늘에 부는 바람까지 체크해서 외야수 위치를 조정했다. 그는 하루 1~2시간 걷는다. 야구를 오래 하기 위해서다. 1년에 두 번만 집에 들어간 해도 있다. 부인이 어떻게 견뎠을까? "교회 가셨죠."(아들 김정준)

    하일성이 "그 양반은 한겨울에 간염을 앓으면서 운동장에서 이불로 자기 몸을 묶고 훈련을 본다"고 했다.

    두 번째 기회를 줘라

    밀려서 은퇴하는 걸 '밀퇴'라고 한다. SK 감독 시절 김성근이 밀퇴 위기 고참들을 받아 되살려냈다(2007~2011년). 두산 코치 가득염(44)은 롯데에서 방출된 뒤 2007년 SK에 넘어와 그해 우승 주역이 됐다. 4년 뒤 가득염이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다"며 은퇴했다. 김성근이 "자넨 더 할 수 있다"고 두 번 잡았다. LG트윈스 투수 류택현(42)이 말했다. "이런 과정을 보면 선수들이 달라져요. 목숨을 바치게 돼요."

    SK 감독 시절 김성근의 등번호는 '38번'이었다. 화투 칠 때 '38광땡'이다. 투수 정대현(35)은 롯데로 옮긴 뒤 스승 번호를 자기 등에 달았다. "다른 팀에 와서도 마운드에 서면 '나는 김성근 감독과 야구한다'고 생각했죠. 현역 1·2군 700명 중 최소한 반이 '김성근 밑에서 뛰고 싶다'고 생각할걸요."

    최동수가 LG 2군에서 1군 올라갈 때 김성근이 쪽지를 줬다. "참아줘서 고맙다." 최동수는 SK에서 10년 만에 김성근과 다시 만났다. 서른 때도 변기 잡고 피 토하며 울 만큼 힘들었는데, 나이 마흔에 또 하려니 비명이 절로 나왔다. 아내가 보다 못해 남편에게 쪽지를 썼다. "오빠가 지금 유니폼 벗어도 난 손뼉 칠게요." 이 편지는 지금 김성근이 가지고 있다. 스승에게 편지를 맡긴 뒤 최동수는 새벽 3시까지 방망이를 휘둘렀다.

    지금 김성근은 고양원더스를 이끌고 있다. 프로에 못 들어갔거나 밀퇴당한 선수들이다. 이들이 각 팀 2군과 붙은 경기를 보고 NC다이노스와 한화이글스가 5명을 뽑아갔다. 야구 출판 기획자 박정훈(38)이 "김성근 이전엔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게으른 사람 짜증 나게 해라

    야구인도 생활인이다. 우승 대세에 상관없으면 이기든 지든 빨리 퇴근하고 싶다. 김성근은 대충 해도 될 게임까지 부득부득 작전을 건다. 박영길이 "김성근은 역전패를 안 당한다"고 했다. 그는 이기고 있을 때도 악착같이 앞서간다. 김인식이 "상대가 김성근이면 저쪽이 아무 작전 안 걸어도 '도대체 어떻게 나올까' 계속 궁리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라이벌이 다 같이 발전했다. 야구 칼럼니스트 김은식(40)이 "기자로 치면, 1단짜리 단신까지 전부 특종하겠다며 날마다 밤새우는 상대"라고 했다.

    그래서 김성근은 각 구단에 '이기고 싶을 때 찾는 감독'이 됐다. 김성근은 약팀을 강팀으로 조련했다. 88년 꼴찌 태평양돌핀스. 김성근이 부임해 지옥 훈련을 했다. 맨발로 밤샘 산악 행군을 한 뒤 얼음 계곡물에 밀어넣었다. 태평양은 이듬해 플레이오프까지 쭉 갔다. 94~95년 연속 꼴찌 쌍방울. 선수들을 배팅조·베이스러닝조·수비조로 나누고, 밥 시간도 아까워 '식사조'를 돌렸다. 점심시간이 15분이었다. 쌍방울은 96~97년 연거푸 플레이오프에 나갔다.

    스타도 가차 없이 빼라

    훈련은 다른 팀도 다 했다. 얼음 목욕이 잇따랐다. 왜 김성근만 효과를 봤을까? 김성근은 훈련과 실전을 연결했다. 무명(無名)이라도 밑에서 치고 올라오면 기회를 줬다. 스타나 용병도 게으르면 가차 없이 뺐다. 김은식이 "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했다. 스타들이 '나 없이 잘되나 보자'고 잘난 척했다 부끄러워했다. 빛을 못 보던 선수들이 '나도 한번 일어서보자'고 이를 악물었다.

    2009년 SK 스프링캠프 때 김성근이 식당에서 밥 먹다 옆자리 손님과 얘기를 나눴다. 암 투병 중인 중년 여교사였다. 김성근이 위로했다. "저는 아팠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야구장에 돌아가야겠다' 그 생각밖에 없었어요. 선생님도 '교단에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가을 시즌에 그녀는 교단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