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함양에는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된 상림이 있다. 함양에 만든 상림은 흙으로 쌓은 둑에 나무를 심어 만든 숲이다. 홍수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벌인 우리나라 최초의 사방공사이다.
사방공사로 만든 상림常林의 역사는 1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세기 말, 통일신라말엽의 대문호였던 최치원 선생이 만든 것이다. 이 숲에는 파랑새 등 온갖 새들이 날아와 번식을 하고 마을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간다.
강가의 모래나 산지의 흙은 바람에 씻겨 내려간다. 장마철 홍수나 파도의 침식에 무너져 내린다. 이것을 방지하는 사업을 사방공사砂防工事라고 한다.
1960년대에도 범국가적인 사방공사가 있었다. 이때의 사방공사는 주로 헐벗은 산비탈에 나무를 심는 방법이었다. 무자비한 땔감 벌목으로 벌거숭이가 된 민둥산에 많은 나무를 심었다.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으로 황폐한 산을 푸르게 하는 산림녹화 정책이었다. 이 시대를 산 세대는 산에 나무를 수없이 심어 보았다.
이때에 많이 심은 나무는 아카시와 물오리나무와 일본잎갈나무 등이었다. 모두 빨리 자라고 번식이 빠른 수입종이었다.
잎갈나무는 소나무, 잣나무, 젓나무처럼 침엽수이다. 그런데도 잎갈나무는 가을에 잎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진다. 그런 까닭으로 잎갈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마다 헌 잎을 떨구고 새 잎을 가는 나무라는 의미의 이름을 얻었다.
잎갈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교목이다. 다 자라면 키가 40m 정도에 이른다. 우리나라 북부지방에 자생하는 잎갈나무는 북한이 고향이다. 남한에서는 우리나라 토종 잎갈나무를 볼 수 없다. 우리가 잎갈나무라고 아는 것은 낙엽송의 이름을 가진 일본 잎갈나무이다.
일본 잎갈나무, 즉 낙엽송에 대한 어릴 적 추억이 있다. 마을 뒷동산에 일본 잎갈나무가 꽤 많았다. 곧고 크게 자라는 낙엽송을 찾아갔다.
마을의 개구쟁이들이 낙엽송을 찾아가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물 오른 일본 잎갈나무 가지를 잘라 피리를 만드는 것이다. 버드나무로 가지로 만든 버들피리처럼 일본 잎갈나무로 만든 잎갈피리이다.
그 둘은 굵은 낙엽송을 베어 마차의 나무바퀴로 쓰는 것이다. 낙엽송을 줄기를 5cm 정도의 두께로 잘라 놀잇감 마차의 바퀴로 썼다.
개구쟁이들이 나무를 베어 넘기자 일본 잎갈나무는 커다란 소리를 내고 넘어졌다. 산 주인이나 마을 어른이 알면 호된 벌을 받을 수도 있기에 숨을 죽였다. 그러자니 일본 잎갈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그렇게 만든 장남감 마차는 언덕빼기에서 잘 굴러갔다. 개구쟁이들을 태우고 신나게 달렸다. 그때의 개구쟁이 두 사람은 지금 두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산다. 하나는 목공예 가구집을 운영하고 또 하나 친구는 오토바이 수리점으로 먹고 산다.
일본 잎갈나무는 1904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일본 잎갈나무는 이미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 널리 자란다. 한때 우리나라 조림수종으로 선정되어 여러 곳에 많이 심어졌다. 국립공원 소백산에도 도립공원 마이산에도 심어졌고 함백산 만항재에도 군락으로 심어졌다.
일본잎갈나무는 곧게 자라므로 여러모로 쓰였다. 나무 전봇대로 많이 쓰였고 건축공사장의 가설재(아시바)로 많이 쓰였다.
우리나라 토종 잎갈나무는 북한이 고향이다. 백두산 산간에 울창한 원시림을 형성하는 나무다. 금강산에 자라는 잎갈나무와 백두산에 자생하는 울창한 잎갈나무숲을 마음대로 오가는 날은 언제일까? 하늘로 치솟아 오른 숲에서 어릴 때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다. 물 오른 잎갈나무 가지를 잘라 잎갈피리를 만들어 입술이 터지도록 신나게 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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