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 없는 들녘, 뱁새도 외롭다
논두렁의 한 식구였던 황새와 뱁새…농부의 관찰이 속담 낳았을 것
토종 황새는 멸종하고 겨울철새로 드물게 찾을 뿐
▲황새. 겨울철새로 날아온 것이 드물게 관찰될 뿐 텃새는 사라졌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귀에 익은 속담이 있습니다. 제 분수를 지키지 않고 힘에 겨운 일을 억지로 하면 도리어 해만 입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속담 속의 주인공인 뱁새와 황새를 알아차리는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뱁새는 참새보다도 작은 새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황새는 몸길이 약 110㎝, 부리 길이 30㎝, 다리 길이 60㎝, 날개폭은 무려 2m가 조금 넘는 우리나라의 텃새 중 가장 큰 새였습니다. 40년 전만 해도 뱁새와 황새는 우리의 논에서 공존했습니다.
뱁새는 덤불 사이를 조금씩 조심스럽게 이동했을 것이고, 황새는 그 큰 다리로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뱁새와 황새의 속담은 논둑에 앉은 농부가 우리나라의 텃새로 일 년 내내 만날 수 있었던 두 극단의 새를 번갈아 보며 지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제 황새는 어떤 농부의 눈에도 띄지 않는 존재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직접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뱁새의 생김새에 대한 느낌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뱁새 눈’이라는 표현이 일조를 했을 것입니다. 뱁새눈은 작고 가늘게 째진 눈을 말합니다. 그러니 뱁새의 눈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뱁새의 실제 눈은 동그랗고 예쁘기만 합니다.
뱁새뿐만이 아닙니다. 새 중에 동그랗지 않은 눈을 가진 친구는 없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뱁새눈이라는 말은 새가 워낙 작으니 눈도 그러할 것이라고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지어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뱁새
뱁새의 학술적 이름은 붉은머리오목눈이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머리가 붉고 눈이 오목하여 붙여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머리는 갈색에 가깝고, 눈도 그리 오목하다 할 수는 없으니 이 이름조차 “아, 그렇구나.”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뱁새는 주로 갈대숲과 덤불에서 살아가는 새입니다. 번식기를 제외하면 수 십 마리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데 허공을 높이 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갈대와 덤불 사이로 숨어들어 이동할 때가 많습니다. 공간을 옮길 때에도 바닥에 붙듯이 이동을 합니다.
앙증맞고 엉덩이까지 실룩거리며 제대로 교태를 떠는 뱁새 수 십 마리가 눈앞에 있더라도 사진으로 담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고 비행술이 떨어지는 새로서 맹금류를 비롯한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다른 길은 없어 보이니 어쩔 수 없다 여깁니다.
뱁새는 뻐꾸기 종류가 자신의 알을 맡기는 탁란(托卵)의 주요 대상 새이기도 합니다. 뱁새가 둥지를 잠시 비운 사이 뻐꾸기가 알을 낳으면 뱁새는 자신의 알과 함께 뻐꾸기의 알도 품습니다. 뻐꾸기의 알은 뱁새의 알보다 먼저 부화를 하며, 어린 뻐꾸기는 둥지에 있는 뱁새의 알을 모두 밖으로 밀어내고 혼자 먹이를 받아먹으며 큽니다. 어린 뻐꾸기는 무럭무럭 자라 결국 뱁새 자신의 몸집보다 서너 배는 더 커지는데도 아무런 의심도 없이 쉬지 않고 먹이를 나르는 것을 보면 머리가 조금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뱁새와 더불어 우리 논의 한 식구였던 황새는 끝내 멸종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땅에서 천연기념물 119호 황새가 완전히 사라진 순간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이 남아있습니다.
"1971년 4월 4일 충청북도 한 마을의 창공을 순백색 몸에 검은 날개깃을 지닌 새 한 쌍이 유유히 날고 있었다. 그 순간, 정적을 깨는 밀렵꾼의 총성과 함께 한 마리가 땅에 떨어졌다. 홀로 남은 과부 황새는 해마다 무정란을 낳아 품으며 둥지를 지켜 주민들의 안타까움을 사던 중 1983년 농약에 중독돼 쓰러진 뒤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져 외로운 나날을 보내다 1994년 9월 23일 끝내 숨을 거뒀다.”
(■ 관련기사=자바코뿔소 멸종이 떠올린 토종 황새 멸종의 기억)
우리나라의 텃새로 살아가던 황새의 마지막은 밀렵꾼과 동물원이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 많던 황새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한 이유는 경지 정리로 인해 둠벙과 자연형 수로가 사라진 것도 한 몫을 했지만 농약의 대량살포로 논에서 미꾸라지, 개구리, 그리고 논우렁이 같은 황새의 먹이가 사라지거나 줄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천수만, 순천만, 주남저수지, 우포 늪 등에 극소수 개체의 황새가 겨울철새로 찾아와줄 뿐입니다. 황새는 전 세계에 약 2,000 개체 정도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제적 멸종위기종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6년에 황새복원센터가 '황새가 살 수 없는 환경은 인간도 살 수 없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황새 복원사업을 시작한 것은 정말 고맙고 다행스런 일입니다. 더군다나 2002년에는 세계에서 4번째로 황새의 인공 번식에 성공하였고, 이듬해에는 황새 어미가 새끼를 직접 기르는 자연 번식에도 성공하여 국내에서 황새 복원의 가능성을 연 것을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 현재 황새는 98 개체로 늘어났습니다. 이처럼 황새복원센터는 황새의 복원에 성공을 했음에도 새로운 고민에 빠져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방사를 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사리 황새의 복원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마땅히 방사할 곳이 없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우리 논의 현실입니다.
2011년 11월 6일은 개인적으로 아주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내가 사는 전북 남원의 한 들녘에서 황새 3 마리를 만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남원에 있을 때에는 오전과 오후 그렇게 하루에 두 차례씩 둘러보는 곳이 있습니다. 섬진강 상류 수계인 요천에 인접한 농지로 반경 3㎞ 안에는 민가도 없고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입니다.
조류상을 모니터링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 수 년 동안 개별적으로 둘러보고 있던 터였습니다. 오전에는 분명 보이지 않았는데, 오후에 나의 눈을 의심할 새 3 마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며 가슴에만 간직하고 있었던 황새였습니다.
▲전라북도 남원의 한 들녘에 모습을 보인 황새 세 마리
혹시 놀라서 날아갈지 몰라 첫 날은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완전히 어두워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만 만났고, 떠나며 위장텐트만 남겨두었습니다. 하룻밤이 참으로 길었습니다.
다음 날입니다.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은 새벽을 틈타 장비를 챙겨 위장텐트로 스며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날이 밝았을 때 다행히 황새 3 마리는 고스란히 제 모습을 드러내주었습니다. 황새들은 그 큰 다리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주로 물이 고여 있는 논을 돌아다니며 뭔가 계속해서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너무 멀어서 제대로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미꾸라지를 잡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황새를 놀라게 할 일이 없었는데도 10시가 갓 지나 3 마리 중 2 마리는 남쪽 산을 넘어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왜 하나도 둘을 따라 이동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남은 황새는 아무런 동요 없이 먹이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날 저녁 무렵, 혼자 남은 황새도 결국 날개를 펼치고 남쪽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허전한 발길을 돌리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요천을 둘러보다 강 가운데에서 잠자리를 잡은 황새 하나를 다시 만난 것은 황새의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다음 날, 남은 하나의 황새마저 다시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남쪽을 향해 멀리 떠나는 황새 두 마리
▲홀로 남은 황새
▲하천 가운데에 잠자리를 잡은 황새
남원에서 남쪽으로 황새가 이동할 가능성이 높은 곳은 순천만이나 보성만 줄기거나 섬진강 하류인 하동 쪽입니다. 일주일에 걸쳐 세 곳을 나름 샅샅이 뒤졌지만 황새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황새가 이틀에 걸쳐 거닐었던 빈 논을 혼자 한동안 거닐었습니다. 뱁새 혼자 외롭습니다. 지금의 뱁새는 황새를 만날 일이 없어 가랑이가 찢어질 리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뱁새마저 황새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황새가 살지 못하는 땅에서는 뱁새도, 그 무엇도 결국 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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