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열수분출구에 유령 문어, 예티 게…신종 생물 바글
깜깜한 남극해 2600m 해저, 320도 열수 근처에 서식
영국 무인 잠수정, 남극해 열수 분출구 첫 조사 결과
▲과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게들로 빽빽한 남극 열수 분출구 근처 해변의 모습. 사진=NERC, ChEsSo.
1977년에야 처음으로 그 존재가 밝혀진 심해 열수 분출구는 상상을 초월한 새로운 생물의 보고이다. 햇빛 한 줄기 닿지 않는 수천m 깊이의 차가운 바다에서 생물을 먹여 살리는 것은 황화수소 등 열수 분출구의 화학물질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생산하는 박테리아이다.
지금까지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의 열수 분출구를 대상으로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그러나 조사가 힘들어 베일에 가려있던 남극해 열수 분출구의 생물상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알렉스 로저스 옥스퍼드 대 교수 등 영국 연구진은 2010년 무인 잠수정 이시스 호를 동원해 남아메리카와 남극대륙 사이의 대양저 산맥을 탐사했다. 이곳은 한국의 남극 세종기지가 있는 인근 해역이다.
▲조사 해역
조사 결과 남극해 열수구에서는 다른 곳에서와는 매우 다른 새로운 생물상이 펼쳐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내용을 담은 논문은 지난 3일치 온라인 국제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에 실렸다.
잠수정이 보내오는 2600m 심해저의 독특한 생물상은 연구자들을 놀라게 했다. 대륙이 확장하는 대양저 산맥은 새로운 지층이 생성되는 곳으로, 땅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흘러나와 물을 데우며 광물질이 풍부한 시커먼 열수가 굴뚝처럼 곳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해저의 수온은 0도, 하지만 열수는 323도에 이르는 고온으로 분출구 근처에 생물들이 모여있었다.
▲게와 부착동물로 뒤덮인 열수 분출구 굴뚝. 막대가 1m이다. 사진=NERC, ChEsSo
가장 눈에 띈 것은 엄청난 밀도의 신종 게 무리였다. 몸에 난 섬모에 박테리아를 길러 그것을 먹으로 사는 예티 게의 새로운 종이었다.(▶관련 기사 제 몸에 텃밭 일궈 식량 자급하는 심해 ‘예티 게’의 비밀)
이곳의 예티 게는 다리와 집게 대신 가슴에 털이 난 것이 특징인데, 해저 1㎡당 최고 600마리까지 바닥을 빽빽하게 뒤덮고 있었다.
▲남극 열수 분출구에서 발견된 신종 예티 게의 모습. 막대는 10㎝이다. 사진=NERC, ChEsSo
이밖에 학계에 보도되지 않은 종류의 거북손, 삿갓조개, 말미장, 고둥, 불가사리 등이 발견됐다. 유령처럼 창백한 새로운 종류의 심해 문어도 잠수정의 조명을 보고 출현했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바다의 열수 분출구에서 흔히 발견되던 관벌레, 조개, 게, 새우 등이 이곳에선 전혀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남극 열수 분출구의 신종 말미잘. 사진=NERC, ChEsSo
▲유령처럼 창백한 신종 심해 문어. 사진=NERC, ChEsSo
▲신종 거북손과 불가사리. 사진=NERC, ChEsSo
이제까지 학계에선 남극의 열수 분출구 생물이 강한 해류를 타고 외딴 다른 바다의 열수 분출구로 확산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 책임자인 로저스 교수는 “남극해의 거친 조건, 특히 극심한 계절적 변동이 동물 확산을 막는 일종의 장벽 구실을 한 것 같다”며 “이 연구로 이제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심해저 생물의 세계적 확산에 관한 가정은 바꿀 수밖에 없다”고 <비비시> 인터넷판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열수 분출구는 생명이 탄생한 극한 환경을 지니고 있어 생명의 기원과 한계, 진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연구장소로 주목받고 있으며, 우리나라 연구진들도 최근 열수 분출구의 발견과 조사에 나서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기사가 인용한 논문의 원문 정보
Rogers AD, Tyler PA, Connelly DP, Copley JT, James R, et al. (2012)
The Discovery of New Deep-Sea Hydrothermal Vent Communities in the Southern<br />Ocean and Implications for Biogeography.
PLoS Biol 10(1): e1001234. doi:10.1371/journal.pbio.100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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