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눈물 나는 나무 위 '호화 주택' 쟁탈전
김성호 교수의 발로 쓴 조류 도감 ⑧ 딱따구리 숲의 둥지 '전쟁'
완벽한 딱따구리 둥지 노리는 원앙, 호반새, 파랑새, 동고비, 청설모
알 낳고 도망가고, 진흙으로 수선하고…집 빼앗길라 24시간 감시
딱따구리는 나무에 구멍을 뚫어 몸 하나 간신히 드나들 크기의 들머리를 연 다음 아래쪽으로 파내려가 둥지를 짓습니다. 잠자리 전용 둥지의 내부는 좁지만 번식 둥지는 꽤 넓은 편이며, 번식이 끝난 둥지는 잠을 자는 둥지로 용도를 변경합니다.
어떤 둥지이든 딱따구리의 둥지는 이끼나 풀로 엮은 다른 새들의 둥지와 달리 몇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폭우가 쏟아져도 걱정이 없습니다.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쳐도 딴 세상 이야기입니다. 추운 날에는 훈훈하고 더운 날에는 선선합니다.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딱따구리의 둥지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요새입니다. 고개만 내밀고 방어하면 되니 말입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둥지의 조건을 두루 갖춘 셈입니다. 그러니 나무를 파서 둥지를 지을 능력이 없는 숲의 뭇 생명이 딱따구리의 '호화주택'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이유는 충분합니다.
▲숲속의 '호화 주택' 딱따구리의 둥지에 입주한 다양한 친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딱따구리의 둥지를 부러움의 대상을 지나 아예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딱따구리의 숲에서는 지키려는 쪽과 빼앗으려는 쪽 사이의 다툼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특히 번식의 계절에는 다툼을 넘어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전쟁의 승자는 언제나 정해져 있는데, 바로 지키는 자입니다.
▲까막딱따구리가 멋진 번식 둥지를 지었습니다.
▲청설모가 까막딱따구리 둥지를 넘보다 혼쭐이 나고 있습니다.
▲둥지가 잠시 빈 틈을 타 청설모가 둥지 바닥 깔개를 마련해 왔습니다.
▲하지만 청설모가 마련한 바닥 재료를 이번에는 동고비가 다 꺼내고 있습니다.
▲동고비에게 까막딱따구리의 둥지가 다 좋은 데 너무 깊고 입구도 넓습니다. 나뭇조각을 물고 와 바닥을 높인 뒤 다시 진흙으로 입구를 좁히고 있습니다.
▲드디어 주인이 왔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서지는 못하겠나 봅니다.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정말 허무합니다. 동고비가 4시간에 걸쳐 쌓은 나뭇조각을 15초 만에 깔끔히 청소해 버립니다.
▲청설모가 다시 둥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청설모나 동고비의 마이 홈도 덧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동고비가 끈질지게 위협해 보지만 청설모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청설모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까막딱따구리는 자기 집인데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까막딱따구리, 청설모, 동고비 모두 둥지를 비운 사이 원앙이 살며시 스며들어와 알을 낳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아직 신방도 차리지 못한 침실에 남의 알이 버젓이 놓여있는 꼴이니 당치 않습니다. 바로 빼냅니다.
▲일찌감치 까막딱따구리의 둥지를 차지한 큰소쩍새는 맹금류답게 “애들 쓴다.”는 표정으로 이 모든 모습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까막딱따구리도 이제 둥지에 산란을 했습니다. 이제 암수가 교대로 24시간 잠시도 비우지 않고 둥지를 지키며 알을 품는 2주의 일정이 시작됩니다.
▲24시간 둥지를 지키니 이제는 누구도 둥지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까막딱따구리로는 반갑지 않은 여름철새가 숲에 들어왔습니다. 파랑새는 곧바로 공격을 개시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알을 품는 시기가 지나 먹이를 구하기 위해 둥지를 잠시 비운 순간 원앙이 진입하고, 그 뒤를 파랑새가 쫒으며 들어가지 못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주인 없는 집에서 그야말로 객들이 난리입니다.
▲원앙과 파랑새의 등쌀에 아직 털도 나지 않은 까막딱따구리 어린 새 하나가 생명을 놓아 버렸습니다. 아주 어린 새의 주검은 물고 나와 숲으로 돌려보냅니다.
▲사납기 그지없는 호반새 부부도 입성을 했습니다. 설상가상입니다.
▲호반새는 숨도 돌리지 않고 바로 공격을 퍼붓습니다.
▲교병필패(驕兵必敗)라는 말이 있습니다. 둥지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까막딱따구리마저 공격하더니 결국 호반새가 잡히고 말았습니다.
▲원앙도 참으로 집요합니다. 하지만 알은 나오려 하는데 알을 낳을 공간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원앙, 파랑새, 호반새의 난입으로 또 다시 둥지에서 변고가 일어납니다. 정말 다 컸는데 말입니다.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어린 새 하나를 잘 키웠습니다. 둥지를 바로 나선 어린 암컷이 늠름하게 나무에 매달려있습니다.
▲그런데… 그도 잠시입니다. 이토록 어린 새마저 호반새의 공격으로 눈을 다칩니다.
우리의 눈에 온전히 띄지 않을 뿐, 숲에서는 이러한 둥지 다툼이 자주 일어납니다. 뺐고 빼앗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먹고 먹히는 것마저 모두 자연의 섭리 안에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숲에 좋은 나무가 부족하여 이러한 다툼이 전쟁이 되고, 그 전쟁이 훨씬 더 처절해지고 있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오랜 노력에 힘입어 우리의 숲이 예전보다 울창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속내까지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글·사진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