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당한 쇠기러기 바라만 보는 독수리의 '여린' 본성
철원 양지리서 날개 부러진 쇠기러기 3~4시간 동안 지켜보기만
아무리 굶주려도 청소동물 본능에 충실, 생긴 것과 달리 겁 많아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1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의 들판은 황량했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독수리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어느 논에서 이상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부상을 당했는지 날개를 늘어뜨린 쇠기러기 한 마리가 논에 앉아 불안한 눈망울을 굴리고 있고, 그 건너편엔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논바닥에 앉아 있었다.
곧이어 독수리의 날카로운 부리가 기러기의 가슴을 찢어놓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독수리와 쇠기러기의 어색한 대치는 계속됐다. 다른 탐조일정 때문에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3~4시간 지났을까. 다시 돌아왔을 때 놀랍게도 독수리는 그 자리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쇠기러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부상당한 동물을 치료해 주는 직업 본능이 이 긴 대치를 풀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늘 드는 고민이기도 하지만, 그대로 놓아두는 게 오히려 자연의 순리에 맞는 게 아닐까.
그랬으면 독수리는 허기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기 줄에 부딪혀 날개가 부러진 쇠기러기는 삶을 마쳐야 했을 것이다. 또 부상 기러기 주변을 떠나지 않던 8~9 마리의 가족인 듯한 쇠기러기들도 비참한 최후를 목격해야 했을 것이다.
이 광경을 보고 나니 독수리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험하게 생긴 것과 달리 독수리는 참으로 겁이 많은 새다. 사람만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부상당한, 하지만 아직 똑바로 서 있는 기러기 하나 해치지 못하는 '여린' 새인 것이다.
독수리는 죽은 것만 먹는 청소동물로서의 본능에 충실한 동물임도 새삼 알 수 있었다. 호랑이가 배고프다고 풀을 뜯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독수리는 어떤 새인가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수리 중 가장 큰 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머리 위 검은 깃털이 줄고 아주 짧은 솜털 같은 깃털로 대치된다.작은 무리를 이루다가 먹이가 있는 곳에는 다수가 몰려든다. 몸집이 둔하고 움직임이 느린 편이며, 까마귀나 까치 등에게 쫓기기도 한다. 날갯짓을 하지 않고 상승기류를 타고 오랫 동안 비행하면서 먹이를 찾는다.
몸길이 100∼112㎝, 날개길이 250∼295㎝ 몸무게 6.8~14㎏이다. 수컷의 겨울 깃은 뒷목과 정수리 피부가 드러나 있고 이마·머리꼭대기·눈앞·뺨·턱밑·멱·앞 목에 짧은 갈색 털이 빽빽하게 나 있다. 뒷목과 닿는 부분에는 목테 모양 솜털이 있으며, 머리에는 회색 솜털이 있다.
몸통 깃은 어두운 갈색이고 부리는 검은 갈색, 다리는 회색, 홍채는 흰색이다. 부리와 발톱이 날카롭다. 여름 깃은 온몸이 엷은 갈색을 띤다. 알은 나무둥지나 바위 위 둥지에 하나를 낳는다. 11월초 철원, 연천, 파주, 한강 하구, 비무장지대에 도래하며 최근엔 고성, 산청 등지에서도 월동을 한다.
지난해 12월 50여 마리가 집단으로 굶주림으로 죽었고 구제역 발생으로 인위적인 먹이주기를 중단하여 힘겨운 겨울나기를 했다.
2010년~2011년 겨울철 구제역과 조류독감에 의해 살 처분된 가축이 수백만 마리에 이른다. 인재로 인한 구제역, 조류독감이 자연과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이 야생조류로 인한 바이러스 전파보다 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조류바이러스 감염은 2004년 까치를 시작으로 수리부엉이, 가창오리, 큰고니, 새매, 원앙, 황소롱이, 쇠기러기,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등 9종이 보고된 바 있다.(2001년 춘계조류학회) 가축 사육방법을 개선하지 않고 야생조류를 바이러스 전파 매개체로 생각하면 곤란할 것이다.
▲밭에 버려진 계분에서 썩은 닭의 주검을 찾는 독수리.
죽은 동물과 썩은 동물을 주식으로 하는 독수리가 지난해 파주시 어유지리, 파주시 백학면, 철원군 대마리 매몰지의 침출수 위에서 썩은 냄새를 맡고 매일 같이 선회하였고, 인근 나무 위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목격되어 바이러스를 옮긴다는 인상을 주었다.
▲백학면 가축 매몰지의 침출수 냄새를 맡고 인근 야산 나무에 앉아 있는 독수리.
아직 독수리가 조류독감을 감염시킨 사례는 없다. 가축 사육 환경을 개선하고, 적당한 먹이주기를 하는 것이 조류와 인간이 공생하는 길이다.
▲가축 매몰지 인근에 나타난 독수리.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