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신비·환경

황토방의 원조는 딱따구리 둥지

자운영 추억 2011. 12. 17. 12:07

김성호 교수의 발로 쓴 조류 도감 ⑤ 딱따구리 둥지의 비밀

 

나뭇속 둥지 습기 막기 위해 물어온 황토로 벽칠

꼼꼼한 목수처럼 풍향, 전망, 일조, 재질 등 따져 위치 선정 

 

딱따구리는 나무를 파내 둥지를 짓는 아주 특별한 재주를 갖춘 친구들입니다. 딱따구리는 무엇을 고려해서 둥지를 지을까요?

 

먼저 까막딱따구리가 둥지를 짓기 위해 나무를 파내는 모습을 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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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큰오색딱따구리가 나무를 파내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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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딱따구리도 둥지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나무를 쪼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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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방향 피하고 '처마' 밑 선호

 

어떤 나무를 보면 딱따구리의 둥지가 같은 방향으로 주르르 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14개의 둥지가 같은 방향으로 향해 있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다른 방향은 안 되고 꼭 그 방향이어야 하는 당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해 발품을 팔아 살펴보니 딱따구리가 입구의 방향을 정할 때 몇 가지 고려하는 사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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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 '아파트'. 둥지 입구가 모조리 한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쪽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선, 둥지의 입구는 철저하게 비가 들이치는 방향을 피하도록 정합니다. 딱따구리의 둥지는 나무줄기에 구멍을 파서 만드는 것이므로 웬만해서는 비가 들이치지 않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비가 한 번 들이치면 해결이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바닥에는 작은 나무 부스러기가 톱밥처럼 깔려 있기 때문에 눅눅하고 습한 기운이 지속되어 어린 새들을 키우기 위한 쾌적한 환경이 될 수 없습니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번식이 이루어지는 봄철, 비가 오는 날의 주풍향은 정해져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의 주풍향이 남풍인 지역에는 남쪽으로 입구가 향한 둥지는 없으며, 서풍인 지역 역시 서쪽으로 입구가 열린 둥지는 없습니다. 자신이 서식하는 지역에서 비가 오는 날의 주풍향은 귀신처럼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주풍향은 주풍향일 뿐입니다. 비가 오는 날 더러 다른 방향으로 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대비인 듯 딱따구리의 둥지는 대부분 비를 막기 위한 보조 장치를 갖추고 있습니다. 둥지의 위치를 나뭇가지 바로 아래쪽으로 정해 두는 것입니다.

 

나뭇가지는 우산 또는 처마 구실을 톡톡히 해줍니다. 그리고 나무의 휜 부분 안쪽으로 둥지의 위치를 정할 때도 많습니다. 이 역시 비가 둥지로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보조 장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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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들머리 위쪽의 가지는 비가 올 때 우산 또는 처마 구실을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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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굽은 안쪽에 들머리를 만들어 가능한 한 비를 피합니다.

 

또한 딱따구리는 둥지 입구를 전방이 트인 곳으로 정합니다. 그런데, 전방이 트이면 둥지가 쉽게 노출되는 단점을 떠안게 됩니다. 그러나 둥지 안에 들어가 있으면 밖에서는 있는지 없는지 분간할 수 없으므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는 모양입니다.

 

이처럼 딱따구리는 전방이 트인 곳에 둥지를 트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에는 둥지가 거의 없으며,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가 넉넉한 숲에 둥지가 많습니다.

 

그리고 숲에서도 가능한 가장자리 나무를 택하며, 입구는 숲을 등집니다. 이는 가능한 둥지로 빛이 잘 들어오게 하려는 배려와도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딱따구리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둥지 들머리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습기 막기 위해 벽에는 황토 발라

 

딱따구리는 나무줄기에 입구를 내고 아래쪽으로 파 내려가 빈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둥지를 짓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나무줄기는 뿌리가 토양으로부터 빨아들인 물이 지나는 통로라는 점입니다. 물론 줄기를 파내는 순간 물길은 끊어지며, 물은 파내지 않은 쪽을 따라 이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손상된 부위인 둥지의 안쪽 벽이 눅눅해지는 것까지 피할 길은 없습니다. 누구라도 원치 않을 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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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딱따구리 부리에 진흙이 묻어 있습니다. 진흙을 먹고 와서 토해 내 벽에 바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둥지를 지을 때 딱따구리의 부리에 진흙이 묻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둥지가 습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둥지 안쪽 벽에 바르기 위해 가져오는 것이 진흙입니다. 진흙을 가져와서는 수도 없이 다지고 또 다져 물길을 완전히 차단합니다.

 

결국, 딱따구리의 둥지는 나무줄기 속에 만든 황토방인 셈입니다. 어쩌면 황토방의 시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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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에 있는 새가 날갯짓을 하자 흙먼지가 풀풀 날립니다. 둥지 내부에 진흙이 발라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재질 연한 포플러 좋아하고 송진 있는 소나무 꺼려

 

딱따구리가 둥지를 짓지 못할 나무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리가 단단한 딱따구리라 하더라도 일부러 딱딱한 나무를 택할 이유는 없을 것이며, 실제로 재질이 무른 나무에 둥지를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장 속도가 빠른 속성수가 재질이 무른 편인데, 은사시나무, 미루나무와 같이 흔히 포플러라고 부르는 사시나무속의 나무와 오동나무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동나무는 청딱따구리 둥지가 가장 많은 나무입니다.

 

나무의 종류와 관계없이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나무는 딱따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고사목은 살아 있는 나무보다 원하는 모양으로 나무를 파내기도 수월하며, 습도 조절 면에서도 유리합니다.

 

둥지 나무를 선택할 때 수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무의 전체적인 모양, 곧 수형입니다. 아무리 굵기가 적당하고 무르다 하더라도 곁가지가 많은 나무에는 둥지를 짓지 않습니다. 게다가 둥지 입구는 언제나 전방이 탁 트인 곳으로 방향을 잡는 것을 보면 딱따구리는 둥지에 드나들 때 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게 분명합니다.

 

근래 가로수로 각광을 받고 있는 메타세콰이어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메타세콰이어는 속성수로서 줄기도 시원스레 솟으며 재질이 무른 나무이지만 곁가지가 상당히 촘촘히 뻗어 있는 편입니다. 이런 나무에는 딱따구리가 둥지를 틀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지치기를 해서 곁가지를 정리해 주면 딱따구리가 둥지를 틉니다.

 

굵기도 적당하고 곁가지 없이 줄기가 쭉 뻗은 수형을 갖추었으며 재질이 무른 편인데도 딱따구리가 피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나무 수 대비 딱따구리 둥지의 빈도가 가장 낮은 나무입니다. 아마도 송진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소나무도 고사목이 되면 애용합니다.

 

5~8m가 '로열 층'

 

딱따구리 둥지의 높이는 종에 따라 다르며, 같은 종이라도 편차가 크지만 5~8m 높이에 가장 많은 둥지가 분포합니다. 둥지를 낮게 정하면 둥지를 짓기에 알맞은 나무 두께를 확보한다는 면에서는 유리하겠지만 뱀이나 쥐를 비롯한 천적의 위협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둥지를 높게 정하면 천적을 피하기는 용이하겠으나 적당한 나무 두께를 확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5~8m의 높이는 이 두 가지 문제를 절충한 높이로 여겨집니다.

 

이처럼 딱따구리는 다양한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둥지를 짓습니다. 절대로 아무렇게나 둥지를 짓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의 사전에 ‘아무렇게나’ 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