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신비·환경

깃털 뽑아 버리고 맨살로 알 품는 딱따구리의 부정

자운영 추억 2011. 12. 17. 12:04

김성호 교수의 발로 쓴 조류 도감 ⑥ 알을 품기 위해 배의 털을 뽑아버리는 딱따구리

혈관 모인 맨 살이 털보다 더 따뜻, 뭉텅 뽑아내

알 품는 2~3주 동안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경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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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오색딱따구리 수컷의 배에 털이 빠져 있습니다. 알을 품기 위해 스스로 뽑은 것입니다.

 

새가 알을 품는 과정에 동행하다 보면 진지함과 간절함도 지나 경건함까지 느끼게 됩니다.

 

새는 포란(抱卵) 일정에 한 번 들어서면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둥지를 지키며 알을 품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알을 품는 기간은 새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2주에서 3주 사이일 때가 가장 많습니다.

 

새는 하루에 하나씩 알을 낳습니다. 그런데 알을 품는 것은 첫 알을 낳고 바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알을 낳기 하루 전이나 마지막 알을 낳은 뒤부터 시작합니다. 이는 낳은 알을 거의 동시에 부화시키기 위한 전략입니다.

 

부화의 시기가 다르면 먼저 부화한 어린 새가 먹이를 독차지하여 늦게 부화한 새는 먹이 공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으며, 성장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집니다. 게다가 둥지를 떠나는 시기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어 어린 새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알을 다 낳고 알 품기에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부화가 동시에 일어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미 새의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알이 여러 개일 경우 품 안에 있던 알은 밖으로, 밖에 있던 알을 품 안으로 가져오는 시기가 적절해야 하며, 알 하나하나도 제 때 부지런히 굴려 모든 면을 고르게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알을 품기 전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일단 알 품기에 들어서면 알에서는 발생과정이 진행됩니다. 그런데 발생이 진행 중인 알의 온도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그 알은 생명체로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새가 알을 품을 때 둥지를 비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언뜻 생각해 보아도 24시간 둥지를 지키는 과정이 쉬운 일정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새들은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암컷 혼자 알을 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사나흘에 한 번, 또는 하루에 한 번 정도만 기본적인 먹이활동을 위해 둥지를 비우며 둥지를 나설 때는 자신의 깃털을 뽑아 알을 잘 덮어놓고 잠시 나갔다 옵니다.

 

딱따구리가 알을 품는 시기에 꼭 보고 싶은 모습이 하나 있었습니다. 배 부분에 생겨있을 무늬였습니다. 그런데 딱따구리 종류는 나무에 매미가 달라붙듯 나무줄기를 똑바로 보며 앉기 때문에 배를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둥지로 옮겨가려 몸을 틀었을 때 딱 한 번 배를 볼 수 있었고, 배에는 털에 빠지며 생긴 무늬가 또렷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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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딱따구리 수컷의 부리에 털이 묻어 있습니다. 자신의 배에서 털을 뽑은 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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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딱따구리 수컷이 배에서 뽑은 털을 뭉텅이로 둥지 밖으로 던지는 모습입니다.

 

새의 몸은 깃털로 덮여 있습니다. 깃털은 비행을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보온의 효과도 지닙니다. 그런데 새들은 알을 품을 때 배 부분의 털을 스스로 뽑아 버립니다.

 

배는 알과 닿아 알을 덥힐 부위인데도 말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털을 뽑아내면 맨살이 드러나며 혈관이 더 집중되어 오히려 온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새가 알을 품는 과정은 알에 털을 대는 것이 아니라 털을 뽑아낸 맨살을 맞대는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알을 품을 때 생기는 이 놀라운 무늬를 포란반(抱卵班)이라고 합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