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이슈 】

좋아하던 꽃키우며 연매출 2억, 전직교장선생님

자운영 추억 2011. 7. 2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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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씨 부부는 보통 아침 7시에 농장에 나와 저녁 8시에 집에 들어간다. 언뜻 혹사 같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부부가 나란히 앉아 오순도순 차도 마시고, 그늘진 곳에 앉아 수필도 쓰고, 운동하러 시내도 가고, 장애인단체 봉사도 간다.

그리고 꽃이 있어서 늘 즐겁다. 부인 송보영씨가 두 손 가득 보듬고 있는 게 바로 연꽃이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뙤약볕이 내리꽂던 지난 20일 충북 청원군 내수읍 은곡리 김성구씨(73) 농장에는 여름 꽃인 연꽃과 수련이 절정이었다.

 

노랑 분홍 하양의 연꽃, 진분홍 연분홍의 수련이 400여 평 땅에 만개했다. 50여평 짜리 하우스 3개동 안에는 가시 없는 푸릴과 매창 등

 

다육식물이 천국을 이루고 있었다.

10여년 전 중학교 교장으로 은퇴하고 나서 그냥 꽃이 좋아 시작한 일이었다. 150만원 들여 하우스 하나로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던 게 연 매출 2억원의 농장이 돼버렸다. 일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인과 둘이서 다한다. 그래서 일까. 김씨의 얼굴도,

 

연꽃을 쓰다듬는 부인 송보영씨(66) 얼굴도 어느새 연꽃과 수련을 닮아있었다.

김씨는 원래부터 꽃을 워낙 좋아했다. 청주 형석중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도 학교 안의 꽃은 죄다 김씨가 보살폈다.

 

1999년 퇴임할 때도 가장 섭섭했던 건 교정의 꽃과 나무를 떠나는 것이었다. "바깥양반이나 저나 신혼 때부터 꽃 키워 이웃 나눠주는 게 취미였어요.

 

대국이나 소국 같은 건 전시회 출품되는 것만큼이나 이쁘게 키웠죠." 옆에 있던 부인 송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서 돈 벌겠다고 시작한 일도 아니다. 김씨는 지인이 연꽃이나 한번 키워보라고 해서 취미 삼아 시작했다. "'좋아하는 꽃이나

 

보며 늙어가자'하는 생각에 고향 청원에 하우스 하나 장만하고 땅도 조금 얻어 시작했습니다. 종자는 아는 사람한테서 받고요."

 

그러자 송씨도 "(남편이)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일, 돈 벌겠다고 생각하면 못한다. 꽃을 좋아하고 땀 흘릴 준비도 돼 있어야 한다"고 보탰다.

그래도 농장 이름은 하나 있어야겠다 싶어 '연꽃과 허브사랑'이라고 문패를 걸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연꽃을 재배하는 농가는 거의 없었다.

 

김씨는 봄이면 연꽃의 잎 중간 생장점에서 새로 나는 싹을 뿌리째 뜯어 다른 화분에 옮겨 심었다. 종의 특성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새로운 개체를 얻을 수 있었다.

 

잡초를 제거하고 약도 쳐가며 여름까지 기다리면 6월 중순부터 꽃이 활짝 펴서 8월까지 간다. 이 때가 가장 좋을 때다.

김씨는 한 두 해가 지나도록 꽃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을 뿐, 돈을 벌 거라고는 생각은 못했다. 그러다 전국적으로 생태공원 조성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공사 한번 있으면 1000만원어치씩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5년 전부터는 다육식물도 재배하고 있다. 꽃 재배가 수익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서 시작한 것이다. 농장 이름도 '연꽃과 다육이

 

아름다운 집'으로 바꾸었다. 김씨는 "장마가 지나 아파리 색깔이 좀 빠져 이렇지 다육은 봄 가을 겨울에는 색이 정말 예쁘다. 찬바람 불어도

 

색상이 곱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다육은 여름 빼고는 언제든 판매가 가능하다.

특히 다육은 열대나 사막에서 자라는 희귀성 때문에 가격도 비싸다. 아주 싼 건 3~4만원이지만 비싼 건 화분 한 개에 50만원에 달한다.

 

그래서 다육을 재배하는 온실은 경비업체와 시스템이 연결돼 있다. 그는 "햇볕이 뜨겁고 비가 많은 여름에 다육 판매가 소강상태에 빠지면

 

연꽃이 (매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연꽃이 한철 지나면 다육으로 수익을 낸다"고 말했다. 환상적인 포트폴리오인 셈이다.

김씨 부부는 수익은 계속해서 늘었지만 유통이나 판매망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부인 송씨는 "인터넷 판매를 잠깐 해보기도 했지만 이내 관뒀다.

 

'믿을 수 있냐' '물건이 사진과 다르다'는 등의 말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라며 "불신과 의심부터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래서 연 매출 2억원도 주로 구경 삼아 농장에 와서 사가는 사람들이 올려주는 것이다.

직원 없이 둘이서 다 하는 일이라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김씨 부부는 행복해보였다. 이들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7시쯤

 

함께 걸어서 농장에 나온다. 저녁 8시나 돼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농장에서 일만 하는 건 아니다. 노부부는 차도 마시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눈다. 가끔씩 라지볼(직경 44mm짜리 공을 사용하는 탁구)을 치기 위해 청주 시내에 나가기도 한다. 장애인 단체를 방문해

 

봉사활동도 하고, 틈틈이 수필도 쓴다. 김씨는 "일을 하다 보니 밥 먹은 양도 많아지고 체력도 좋아졌다. 얼마 전에 라지볼 충북 도대회에

 

나가 1등 해서 쌀도 타왔다"고 말했다.

2004년 직장암 판정을 받았던 김씨는 자신이 암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10여년 동안 꽃과 흙과 함께 살아온 덕분이라고 전했다.

 

그는 수술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일을 계속 했다. 항암치료 때는 환자들에게 운동이 권장되지만 김씨는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었다.

 

한여름 30도가 넘는 온실 안에서 다육에 물을 주고 화분을 옮겼다. 겨울이면 열대성 수련을 비닐하우스 안으로 옮기고 장작을 팼다.

 

이 때문인지 그는 지난해 7월 직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송씨는 "땅을 밟으며 흙으로부터 치유의 능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의 목표는 80세까지 농장을 운영하는 것. 앞으로 7년이다. 그런데 지금 같아서는 85세까지는 거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초기로 잡초를 베어나갈 때 생풀이 내는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자연이 내뿜는 향기, 이게 돈도 벌고 젊게 사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