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신비·환경

소처럼 순한 눈, 산양이 절벽에 사는 까닭

자운영 추억 2014. 6. 8. 13:54

박그림 2014.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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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③ 절벽으로 내쫓긴 산양

폭설로 떼죽음하고 등산객에 쫓겨 살아남은 산양 전국에 고작 700~800마리

짝짓기와 출산시기 하필 등산객 몰리는 시기와 겹쳐, 입산 예약제와 출입 통제 필요

 

   이른 봄 투명한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낄 때 태어나
 아장걸음으로 어미를 따라 숲속을 헤매고 다니면서
 계절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지혜를 배웠고,
 다리에 힘이 오르고 바위 길을 쉽게 오르내리면서
 설악산은 어린 산양에게 살아가야 할 집으로서 모자람이 없었다.
 차츰 어른이 되면서 뜨거운 몸으로 짝을 찾아 숲속을 헤매기도 했고
 어미가 되어 가족을 거느리고 이웃들과 몸 비비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았다.
 
 어느 때부터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늘 만나던 이웃이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모두들 불안해했고 먹이가 모자라도 멀리까지 돌아다닐 수조차 없는 날이 늘어갔다.
 제때 이웃을 만나기도 어려웠고 살아갈 터전이 좁아지면서 삶은 힘들고 어려워졌다.
 먹이를 얻기 힘든 겨울철이면 어린 산양들이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곤 했다.
 겨우 남아 있는 산양들조차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숨죽여 살아가고 있다.


re_산양.jpg » 선한 눈망울의 산양

 

■ 전국에 700~800마리 남아 
 
첫눈에도 소가 떠오를 만큼 닮았고 소처럼 커다랗고 순한 눈을 가지고 있는 산양은 학술적으로도 소과에 속한다. 세계적으로는 파키스탄과 인도 히말라야 지역에서부터 동남아 일부 지역과 중국의 흑룡강성 북부의 대흥안령 산맥과 러시아 극동 지방에 걸쳐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두대간을 따라 강원도 북부의 비무장 지대와 향로봉, 매봉, 설악산, 오대산, 두타산, 삼척의 가곡지역, 경북 울진 지역에 걸쳐서 살고 있으며 700~800마리쯤이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설악산에는 200여 마리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 생물보전의 핵심지역인 설악산은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1982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보호 가치가 높은 곳이다. 설악산을 중심으로 산양의 과거 기록을 들춰보면, 년 간 수백 마리를 포획했을 만큼 많았지만 1960년대 말의 대폭설로 인한 자연적인 수난과 밀렵 등의 인간 간섭 때문에 현재는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산양은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제 217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의 부속서 1에 올라 있는 멸종위기종이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올라 있는 세계적인 희귀종이다.
 
바위절벽으로 달아나야만 하는 산양

re_6-산양쉼터2.JPG » 양지바른 암벽지대에 있는 산양 쉼터.

 
설악산에서 호랑이와 표범 같은 천적이 사라졌는데도 더 넓은 곳에서 산양을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양의 삶을 위협하는 요인은 크게 서식지 파괴, 밀렵, 임산물 채취, 종에 미치는 환경오염과 자연재해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인간의 간섭에 따른 수많은 개발사업으로 인한 서식지가 줄어들었다. 또 보호지역을 마구 드나들고 있는 불법 등산객들과 약초꾼들에 의해 산양들의 삶은 위협받고 있다.


그런 산양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방법이 바위 절벽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산양이 사는 곳에는 꼭 바위 능선이나 절벽이 있다. 산양의 발굽은 바위에 미끄러지지 않아 바위를 능숙하게 타고 옮겨다니거나 천적을 피할 수 있다. 산양이 몸 붙여 살고 있는 바위능선에서도 암릉 등반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산양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re_9-산양을+만나다.JPG » 가파른 산 비탈에 가야 산양을 만날 수 있다.

 

산양은 10년 안팎의 삶을 사는데, 가을에 짝짓기를 하고 약 7개월(230일간)의 임신기간을 거쳐 이듬해 봄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를 밴 채 혹독한 설악산의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힘든 삶을 살고 있다.
 
더욱이 짝짓기 철인 10~11월과 출산시기인 5~6월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등산객은 산양의 삶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지역민들의 약초 채취, 송이 채취도 산양의 서식지와 같은 곳에서 이뤄지는데다 짝짓기와 새끼 낳는 때와도 겹쳐 문제다. 시기별로 출입에 대한 통제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대청봉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발걸음
 
re_2-오색등산로 무박산행.JPG » 이른 새벽 오색 등산로를 가득 메운 무박산행 등산객들.

 

설악산에서의 등산은 대부분 정상을 향한다. 대청봉에 이르는 등산로의 훼손은 오래전부터 커다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등산로 훼손뿐 아니라 등산객들로 인한 서식지 파괴는 산양의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넘치는 등산객들로 인한 서식지 파괴는 넓은 삶터를 필요로 하는 산양을 구석으로 몰아넣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고 이웃 산양 무리와 오고 가는 것을 막음으로써 다양성을 떨어뜨리고 끝내는 멸종으로 이끌게 된다.
 
산양의 서식지를 지나는 등산로를 폐쇄하여 산양 서식지를 안정적으로 지키고, 자연 휴식년제와 계절별 입산예약제를 통해 설악산의 생태계를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산양을 지키기는 자연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
 
re_10-산양똥+조사.JPG » 산양 똥을 조사하고 있는 필자.

 

설악산은 산양들의 집이었고 야생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갖춘 산양이 숲을 누비고 다닐 때 숲은 살아서 춤추었다. 산양의 크고 순한 눈동자에는 푸른 하늘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이 있고 마음 놓고 살아가고 싶은 간절한 바램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푸른 숲이 비춰졌을 눈망울에 눈물이 고이고 서식지 파괴로 살 곳을 빼앗긴 산양은 힘들고 지쳐 탈진한 모습으로 자주 눈에 띈다.
 
한낮의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쉬었을 어미와 새끼 산양들을 떠올리며 언제쯤 설악산에서 마음 놓고 살 수 있을지 가늠해 본다. 수많은 사람의 발길에 몸을 숨기며 살아야 하는 산양, 바람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불안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렸을 산양, 이런 날들 속에서 산양은 사라져갔고 이제 산양을 찾아 산속을 헤매고 다녀도 어쩌다 마주칠 뿐이다.
 
쫓기는 삶을 살아가는 산양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양을 우리가 어떻게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직 하나 산양이 사는 곳에 가지 않음으로써 산양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며 산양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re_4003.JPG » 신록이 가득한 설악산의 숲. 산양이 마음껏 다닐 수 있는 날은 올까.

 

어느 날엔가 산양이 우리 곁으로 다가와 야생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때까지 자연에 대한 예의와 염치를 갖추고 생명에 대한 존엄을 지켜가야 한다. 모든 생명이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야만 하는 까닭은 생명의 어울림 속에서 서로의 삶이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바람이 나무들을 흔들며 휘몰아 내린다. 목덜미를 파고드는 찬바람에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며 햇볕을 찾아 양지쪽으로 나선다,
 
커다란 바위를 등지고 오후의 엷은 햇빛 속에 앉아 질펀하게 누운 흰 산을 바라본다. 골골이 생명의 소리 가득했고 산양이 지천으로 살았던 잃어버린 풍경을 그리워하며 그때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지금의 설악산이 슬프다. 산양이 뛰어노는 설악산은 그냥 꿈일 뿐인가.
 
글·사진 박그림/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설악녹색연합 대표
  
산양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이곳을 참고하세요
 
 -설악산과 산양 http://goral.tistory.com
 
 -EBS 하나뿐인 지구 -박그림, 설악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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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진 산양 구조활동 보기
 http://www.greenkorea.org/?p=37696
 
 -산양과 모차르트, 유튜브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