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30
매복 사냥의 대가 참매의 생태를 지켜본 '매복 카메라'
날카롭지만 예민하고, 사람의 간섭에 덧없이 약한 최상위 포식자
» 어린 참매인 보라매가 사냥한 오리를 먹다 사람이 접근하자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다.
천년의 기다림, 참매 순간을 날다
글·사진 박웅/지성사·3만원
2006년 5월, 충청도 야산에서 참매가 둥지를 틀고 번식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겨울철새로 알려진 참매가 한국에서도 서식해온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이다.
그 자리에 지은이도 있었다. 그날 이후 지금껏 참매의 생태를 담으려 카메라를 매고 산과 들로 쏘다녔다. 천직으로 여긴 건축사 일도 접었다.
» '숲속의 제왕'인 참매는 1m가 넘는 커다란 둥지를 지어 새끼를 기른다. 지은이는 2006년 5월 처음 참매의 둥지를 보고 세 번 놀랐다고 말한다. 둥지의 크기와, 참매가 직접 짓는다는 사실과 그리고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날카로운 경계 소리에 놀랐다는 것이다.
참매가 뭐냐고?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의 그 보라매가 참매다. 털갈이를 하지 않아 보라빛을 띠는 어린 참매를 보라매라 한다. 한국 공군의 상징이다.
» 지은이가 참매의 사냥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잠복했던 천수만 해미천의 전경. 참매가 잠복하는 버드나무를 포함해 모두 눈에 덮힌 습지에 고니와 오리가 평화롭게 아침을 맞고 있다.
참매는 사냥감을 찾아 잔망스럽게 쏘다니지 않는다. 사냥감이 다가올 때까지 몇시간씩 움직이지 않고 매복하다 순식간에 해치운다. 찰나의 사냥이다.
2012년 2월, 마침내 그 찰나가 카메라에 잡혔다. 참매가 버드나무를 날아올라 쇠오리를 낚아채, 그걸 안전하게 먹으려 갈대밭에 내려앉을 때까지 8초.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8초다. 옳고 그름을 따질 틈을 주지 않는, 아뜩한 현기증을 일으키는 생명의 경이다. 347쪽 책에 생명의 숨결 가득한 사진과 글이 넘쳐난다.
» 마침내 촬영한 참매의 쇠오리 사냥 장면. 참매는 수많은 감시의 눈초리가 있는 오리떼 속으로 무작정 뛰어들지 않는다. 지겹도록 오랜 시간 뜸을 들이며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린다. 1. 참매는 무리에서 떨어진 쇠오리를 뒤쫓자 급한 나머지 물속으로 뛰어든다. 물수리가 물고기 잡듯 참매도 따라 물속으로 들어가 쇠오리를 낚아챈다. 2. 쇠오리의 날갯죽지를 움켜쥐어 꼼짝 못하게 한다. 3~5. 간섭 받지 않고 오리를 먹을 갈대숲으로 향한다. 오리는 아직 살아있다. 참매가 잠복지인 버드나무에서 날아올라 오리를 잡은 뒤 갈대밭에 앉기까지 8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은이가 참매를 찾아나선 지 8년, 본격적인 잠복에 들어간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천연기념물 323-1호. 참매는 사람을 빼면 이렇다 할 천적이 없다. 한반도 생태계 먹이사슬의 조화로운 다양성을 유지·조절하는 최상위 포식자다. 참매가 사라지면, 한반도 생태계도 그만큼 취약해진다.
» 참매의 매복지이던 버드나무가 베어진 천수만 해미천 둑에는 오늘도 수많은 오리들이 몰려들었다.
그 참매가 둥지를 트는 삶의 터전인 소나무와 낙엽송 고목들이 산림 가꾸기 따위를 이유로 하루가 다르게 솎아 베어지고 있다.
글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사진 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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