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대통령 / 임보
수많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비상등을 번쩍이며 리무진으로 대로를 질주하는 대신 혼자서 조용히 자 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길을 즐겨 오르내리는
맑은 명주 두루마기를 받쳐입고 낭랑히 연두교서를 읽기도 하고, 고운 마고자 차림으로 외국의 국빈들 을 환하게 맞기도 하는
더러는 호텔이나 별장에 들었다가도 아무도 몰래 어느 소년 가장의 작은 골방을 찾아 하룻밤 묵어가기 도 하는
말많은 의회의 건물보다는 시민들의 문화관을 먼저 짓고, 우람한 경기장보다도 도서관을 더 크게 세우는
가난한 시인들의 시집도 즐겨 읽고, 가끔은 화랑에 나가 팔리지 않은 그림도 더러 사주는
발명으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좋은 상품으로 나라를 기름지게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서는 육자배기 한 가락쯤 신명나게 뽑아내기도 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는 양처럼 부드럽고 불의의 정상배들에겐 범처럼 무서운
야당의 무리들마저 당수보다 당신을 더 흠모하고, 모든 종파의 신앙인들도 그들의 교주보다 당신을 더 받드는
정상들이 모이는 국제회의장에서는 어려운 관계의 수뇌들까지도 서로 손을 맞잡게 하여 세계의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어느 날 청와대의 콘크리트 담장들이 헐리고 개나리가 심어지자 세상의 담장이란 담장들은 다 따라 무너져내리기도 하는
더더욱 재미있는 것은
당신이 수제비를 좋아하자, 농부들이 다투어 밀을 재배하는 바람에 글쎄,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밀 생산국이 되기도 하는
어떠한 중대 담화나 긴급 유시가 없어도 지혜로워진 백성들이 정직과 근면으로 당신을 따르는
다스리지 않음으로 다스리는
자연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리고 아, 동강난 이 땅의 비원을 사랑으로 성취할
그러한 우리들의 대통령
당신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가?
-『시 읽는 기쁨2』(작가정신,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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