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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도 절로 깨닫는다 … 화려한 나방엔 독이 있다는 걸

자운영 추억 2013. 11. 2. 18:44

 

[중앙일보]입력 2013.10.29 00:55 / 수정 2013.10.29 00:59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⑨ 자연의 순리 -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새가 나는 걸 가르치는 광경 본 적 있나. ‘이렇게 날아라, 저렇게 날아라’는 잔소리도 없다. 어미는 그냥 ‘후르륵’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럼 새끼도 날아본다. 나무에서 떨어지고, 다시 기어올라가서 날아본다. 어미새는 계속 기다린다.”

 24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최재천(59·국립생태원장) 교수를 만났다. 그는 동물생태학의 권위자다. 10여 년간 정글을 누비며 동물생태학을 연구한 적도 있다. 동물의 세계를 공부하며 그가 터득한 지혜는 뭘까. 양쪽을 넘나드는 그에게 동물과 인간, 그리고 행복을 물었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 천장에는 기러기 모빌이 달려 있다. 줄을 당기자 날갯짓을 했다. 최 교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부 아프리카의 침팬지는 견과류를 돌로 깨 먹는다. 어미가 깨트리면, 새끼도 따라 한다. 실수 연발이다. 바닥의 돌이 평평하지 않아 견과류가 자꾸 굴러서 떨어진다. 그래도 어미는 말없이 지켜본다.

 최 교수는 “‘도대체 몇 번이나 가르쳐줘야 알겠니?’라고 짜증 내지 않더라. 무한한 인내심으로 지켜본다. 그럼 어느 순간 자식이 그걸 터득한다. 그때부터 새끼는 혼자 앉아서 깨 먹기 시작하더라”고 말했다.

 그런 시행착오가 새끼에게는 고통이자, 방황이다. “야생의 세계에서 그런 고통과 방황은 굉장히 중요하다. 새끼들은 그걸 통해서 성장한다. 인간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아름다운 방황’이 필요하다.”

 이 말 끝에 최 교수는 자신의 고통과 방황을 꺼냈다. 그는 재수 끝에 서울대 동물학과에 들어갔다. 의예과를 지망했지만 두 번이나 떨어졌다. 자존심 상한다며 빈 칸으로 남겨둔 2지망에 담임선생이 동물학과라고 써넣었다. 전공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대학 4년간 방학만 되면 만사를 제쳐 두고 강릉의 시골집으로 달려갔다. 하루 종일 개울과 바다에서 뛰어 놀았다. 그럴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늘 우울했다. 졸업 후 취업과 진로가 막막했기 때문이다.”

 1977년이었다. 아버지에게 미국 유학을 가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극도의 내핍 생활을 하면서 4형제를 키우는 형편이었다.”

 그는 1년치 학비만 대달라고 했다. 그 다음에는 손 벌리지 않겠다, 죽더라도 거기서 죽겠다는 말까지 했다. 며칠이나 졸랐다. “아버지께서 저를 똑바로 보면서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쌓아둔 돈이 없다. 장남이니까 잘 알지 않느냐. 만약 넷 중에서 누구 하나를 택해서 투자를 해야 한다면 그게 너는 아니라는 걸, 네가 알지 않느냐.”

 그 말은 그의 가슴에 박혔다. 재수에다 2지망에 붙은 그와 달리 동생들은 대학에 착착 합격했다. “아~, 지금도 그 말을,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너무나 아프게 제 가슴을 찔렀다.” 결국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뒀다. 퇴직금의 일부를 떼 그에게 줬다.

 그는 울었다. 출국하는 김포공항 안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배웅 나온 선후배들은 “유학길이 아니라 도살장에 끌려가는 표정이었다”고 했다. “나는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미국땅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죽어라고 공부했다. 돌아보면 그런 고통이 나를 성장케 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생태학 석사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생물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 왜 공부로 길을 정했나.

 “내가 정말 원하는 학과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한때는 꿈이 시인이었다. 대학 때는 사진동아리 ‘영상’을 만들어 초대 회장도 했다. 3학년 때 그런 직함이 무려 9개였다. 오지랖이 넓었다. 수업도 거의 안 들어갔다. 내겐 방황이었다. 4학년이 되니까 ‘그래도 전공이 뭔지는 알아야지’란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연구실에 들어갔다.”

 어느 날 낯선 미국인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타대 조지 에드먼즈 교수였다. 그와 엿새 동안 전국을 돌았다. 미국인 교수는 하루살이를 채집했다. 개울에 들어가 유충을 병에 담는 동안, 그의 아내는 나무그늘에서 책을 읽었다.

 “관광도 안 하고, 다른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더라. 하도 그래서 서울 올라가는 길에 용인민속촌 이야기를 꺼냈다. 볼만하다고. 아내에게 묻더니 가보자고 하더라. 그때는 민속촌 들어가는 길에 아름다운 개울이 있었다. 거기서 차를 세우더니 또 하루살이를 채집하더라. 결국 해가 떨어져 민속촌은 가지도 못했다.”

 이튿날 조선호텔로 갔다. 에드먼즈 교수가 맥주를 한 잔 샀다. 서툰 영어로 물었다. “할아버지는 뭐 미쳤다고 이 나라까지 와서 관광도 안 하고, 개울물에서 그 짓만 하다가 가세요?” 몇 번 만에 질문 의도를 알아챈 에드먼즈 교수가 답했다. “네가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한국은 내게 102번째 채집국이다. 나는 솔트레이크 시티의 산중턱에 산다.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학교에 간다. 플로리다에 별장이 있고, 너도 봤지만 아리따운 금발의 아내도 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무릎을 꿇었다. “정확하게 선생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저는 그게 불가능한 줄 알았습니다. 어떡하면 됩니까?” 에드먼즈 교수는 종이를 꺼내 미국 대학 목록 9개와 교수 이름을 썼다. 1순위가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 교수였다.

 -왜 무릎을 꿇었나.

 “나는 자연 속에 잠길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걸로 밥 먹고 살기는 불가능한 줄 알았다. 그래서 취업과 미래만 생각하면 우울해졌다. 그런데 정확하게 그렇게 사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내겐 ‘길’이었다. 그 길로 가고 싶었다.”

 -자연 속에 잠길 때가 왜 행복한가.

 “중3 때부터 안경을 꼈다. 내겐 조금 신경질적으로 렌즈를 닦는 버릇이 있다. 얼룩이 지면 못 참는다. 그래서 비 맞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런데 열대에 가면 다르다. 비를 맞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안경에 얼룩이 져도, 속옷까지 흠뻑 젖어도 상관없다. 그냥 너무 행복하다. 공항에서 문 열고 나올 때 ‘후~욱’하고 몰아치는 후텁지근한 열대의 공기가 좋다. 정글에 가면 더 행복하다. 뱀 지나가지, 개미핥기 나오지, 개구리도 튀지, 나비도 날고. 정신이 없다. ”

 최 교수는 종종 산골학교에 가서 강연을 한다. 청소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방황을 해라. 그걸 통해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악착같이 찾아라. 그게 아름다운 방황이다. 이건 방탕과 다른 거다. 눈만 뜨면 이 일을 하고 싶다. 그런 일을 무지 열심히 하면서 굶어 죽은 사람은 없다. 그러다 보면 오솔길이 아니라 거대한 신작로가 눈 앞에 뻥 뚫리는 순간이 온다. 그럼 좌우 보지 말고 뛰어라. 그 길로 곧장 가라. 거기에 행복이 있다.” 그는 자신도 ‘누군가의 에드먼즈 교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아름다운 방황에는 ‘따뜻한 방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식이 작은 상처라도 입을까, 전전긍긍하는 요즘 부모를 향한 일침이기도 했다. “화려한 나방은 독소가 있다. 새들도 안다. 그런데 갓 어른이 된 새는 모른다. 일단 먹어보고, 다시 게워낸다. 그 후에는 독소가 없는 호랑나비도 안 건드린다. 아이들은 아픔과 게워내는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방황할 때 막지 말고, 따뜻하게 방목해 달라.”

 마지막으로 그는 자식교육을 통닭에 비유했다. “그렇고 그런 통닭 만들려면 닭장에서 사육해 납품하면 된다. 그런데 정말 맛있는 놈 한번 만들어 보려면 풀어서 키워야 한다. 물론 호랑이한테 잡아 먹히면 안 되니까 최후의 줄은 잡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따뜻한 방목이다. 쫄깃쫄깃하고, 살코기에 온갖 짜릿한 맛들이 다 들어 있는 놈. 방목해야 그렇게 큰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재천 교수=1954년 강원 강릉 출생. 서울대 동물학과 졸업,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생태학 석사와 하버드대 생물학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하버드대 전임강사, 미시건대 조교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를 거쳐 현재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17일 초대 국립생태원장에 임명됐다. 『인간과 동물』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등을 냈다.

최재천 교수의 추천서

최재천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며 7년간 기숙사 사감생활을 했다. 하버드대에선 공부는 물론, 봉사활동과 클럽활동까지 훌륭하게 소화해야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일정이다.

 “이건 정말 맨입으로 알려줄 수 없는 건데”라며 운을 뗀 그는 “뛰어난 학생들을 유심히 봤더니 노하우가 있더라. 모든 스케줄을 10일 앞당겨서 하더라. 그게 그들이 하버드에서 살아남는 비결이더라”고 말했다.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장대익 지음, 바다출판사)=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통섭형 인재를 키우고 있는 장대익 교수는 인간을 우주에 내보내는 것도 과학이지만, 인간의 존재 이유와 유래를 알려주는 것도 과학이기 때문에 “인문학은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오래된 연장통(전중환 지음, 사이언스북스)=우리나라 최초의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교수는 이 책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여 음악·문화·종교·도덕은 물론 섹스와 음식에 이르기까지 인간 본성의 진화를 맛깔 나게 설명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은 그 옛날 우리 조상의 삶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진화한 것임을 이해하면 가지런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폴 블룸 지음, 문희경 옮김, 살림)=행복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설명에 무언가 미흡함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왜 우리가 집착하고 몰입하는지를 철학과 심리학은 물론 행동경제학 이론까지 동원하여 포괄적으로 분석한다. 식탁·침대·가게 등 다양한 사례를 들며 욕망하는 인간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천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