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미 해군 7함대 소속 항공모함인 조지워싱턴함이 최신예 전폭기 등을 실은 채 해군 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 배를 대려 접근하는 모습. 배의 입·출항을 안내하는 한국인 도선사 2명이 항공모함에 타고 어떻게 움직일지를 지휘했다. 항공모함 옆에 있는 작은 배들은 도선사의 지시에 따라 항공모함을 끌고 가는 예인선이다. [송봉근 기자]
헬기를 타고 와 미군의 환대를 받은 이들은 부산항 도선사회 소속 박성기(66)·박경철(63) 도선사(導船士)다. 도선사는 항만에 드나드는 배에 올라 입·출항을 인도하는 직업. 두 사람은 이날 오전 4시에 집을 나서 해군 작전사령부에 도착한 뒤 헬기를 타고 항공모함으로 날아왔다. 조지워싱턴함 조타실은 미국 국방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지만 이들은 예외였다.
15분 뒤인 오전 7시.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은 함장으로부터 항공모함 조종지휘권을 넘겨받았다. 이 순간부터 조지워싱턴함은 한국인들의 손에 의해 움직였다. 축구장 3배 크기의 조지워싱턴함 갑판과 격납고에는 전폭기 수퍼호닛(F/A-18E/F), 조기경보기 E-2C(호크아이 2000), 전자전투기(EA-6B), 대잠수함 초계헬기 시호크(SH-60F) 등 첨단 항공기 70여 대가 탑재돼 있다. 어지간한 나라의 전체 해군·공군력과 맞먹는 ‘떠다니는 군사기지’이지만 부산 부두에 대기 위해 한국 도선사의 손에 맡겨진 것이다.
김인준(58)·양희준(54)·최상문(52) 도선사(왼쪽부터)가 출동하기 위해 도선에 올랐다. [송봉근 기자]
무사히 방파제를 통과하자 5노트로 감속시키고 후진 엔진을 돌려 항공모함을 정지시켰다. 이어 무전으로 예인선 선장과 통화하며 항공모함 왼쪽 앞뒤, 오른쪽 앞뒤에 예인선을 각 1척씩 모두 4척을 붙였다. 예인선은 항공모함 선미 쪽부터 거꾸로 밀어넣어 오른쪽 옆(우현)을 부두에 댔다. 일반 배는 좌·우현 구분이 없어 부두와 수평으로만 대면 되지만 조지워싱턴함은 우현으로만 접안할 수 있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두 도선사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기상과 조류, 풍향 등을 분석하며 조타실과 예인선에 지시를 내렸다. 항공모함은 아래 선체보다 몇 배 넓은 비행갑판이 얹혀 있어 조타실에서 갑판 아래쪽 선체가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에 배를 부두에 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예인선 2척은 밀고 2척은 당기도록 번갈아 지시하면서 항공모함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부두에 접안시킨 시각은 오전 8시20분. 1시간20분 만에 거대한 항공모함이 부두에 붙는 줄 모를 정도로 부드럽게 접안하자 조타실에서는 “엑설런트(Excellent·훌륭하다)!”라는 찬탄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인준(구명조끼 입은 사람) 도선사가 지난 10일 부산항에 들어오는 컨테이너선 와이엠이터니티호에서 선원들을 지휘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도선사들은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의 안내자다. 작은 화물선부터 크루즈선까지 낯선 항구의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 배들은 도선사의 도움 없이는 입·출항을 할 수 없다.
부산·인천·울산, 경기도 평택, 강원도 동해, 충남 대산, 전북 군산, 전남 목포·여수, 경북 포항, 경남 창원 등 국내 11개 항구에서 일하는 도선사들은 248명. 이 가운데 부산항에 가장 많은 49명이 있다.
부산항 도선사들의 실력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부산항을 오가는 배 1척의 평균 도선 시간은 1시간이다. 2시간인 동남아 항구에 비해 절반이고, 독일 함부르크항 같은 세계적인 항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시를 받은 예인선들이 와이엠이터니티호를 미는 모습. [송봉근 기자]
부산항 도선사들은 또 다양한 선박 도선 경험을 쌓고 있다. 작은 화물선에서부터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크루즈선·항공모함에 이르기까지 온갖 선박들을 안내한다.
2008년 8월에는 해저터널 중간 부분을 옮기는 데 도선사가 함께했다. 부산 가덕도∼경남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 중간의 터널 일부분이었다.
도선사들의 평균 나이는 50대다. 보통 항해사로 10 년, 선장으로 10년씩 오랫동안 오대양을 누비며 배를 몰다가 도선사가 된다. 항공모함을 안내한 박성기 도선사는 한국해양대 부설 해기사(항해사·기관사) 양성과정인 전수과를 졸업한 뒤 1975년부터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걸쳐 있는 5대호에서 화물선 항해사로 일했다. 미시간·슈피리어·휴런·온타리오·이리 등 5대호를 오가는 화물선 항해사로 10년 근무한 뒤 85년 선장이 됐다. 선장으로 10년 경력을 더 쌓고 95년 도선사가 됐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컨테이너선 ‘매키니 몰러’호도 안내했다. 올 7월 16일 부산신항만에 들어온 배였다. 16만5000t으로 6m짜리 컨테이너 1만8000개를 실을 수 있는 이 배는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했다. 길이 399m, 너비 59m, 높이 73m로 축구장 4개를 합친 크기와 비슷하다.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보다 더 큰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 14만t 이상인 배는 14척뿐. 16만t짜리 배를 처음 맞는 부산항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전에 도선사회와 부산항만공사, 그리고 매키니 몰러호 운항사 관계자들이 여러 차례 회의를 했을 정도다.
부주의로 사고 낸 경우 민사상 책임
김 도선사(왼쪽)가 브리지 밖에 나와 선장과 함께 접안을 마무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도선 중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까. 현행 도선법은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사고는 도선사에게 민사상 책임을 묻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도선사의 부주의가 명백한 경우는 책임을 져야 한다. 최태권(56) 도선사는 아찔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8월 1000t급 러시아 화물선을 부산 감천항으로 입항시킬 때였다. 방파제 사이 항로를 지나가는 순간 갑자기 배를 조종하는 키가 고장 났다. 비상 조타키도 듣지 않았다. 방파제와는 불과 400m 거리를 둔 상태였다. 최 도선사는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했다. 전속력으로 후진시키고 급히 닻을 내리도록 했다. 밀려가던 배는 방파제 40m 앞에서 겨우 멈췄다.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던 러시아 선장은 최 도선사를 껴안고 “생큐(Thank you)”를 연발했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 큰 배를 인도하는 도선사들은 더욱 긴장한다. 강풍이 몰아치면 배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사고가 날 수 있어서다. 실제로 2009년 1월 5일 오후 11시쯤 부산 북항 신선대 부두에 접안하려던 컨테이너선 ‘MSC로마호’가 컨테이너 하역 크레인 4기를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부산해양경찰서는 이 배의 독일인 선장과 도선사를 불구속 입건했다. 해경은 돌풍이 강하게 부는데도 사고 예방조치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배를 대다 사고를 낸 것으로 판단했다.
사고가 나면 큰일이다. 배를 만드는 데 수천억원이 드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파손되면 감당하기 어렵다. 게다가 도선사들은 사고에 대비한 보험에도 들어 있지 않다. 거액의 보험에 들면 도선료를 높여 받아야 하고, 그러면 항구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배를 가진 선사들은 대부분 보험에 가입돼 있어 사고가 나도 보상을 받는다. 이때 보험료를 지급한 보험사가 사고를 낸 도선사에게 “돈을 물어내라”고 구상권을 청구하는 사례가 있다.
김인준(58) 도선사는 “도선사들은 사실상 사고 후 배상·보상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과 같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도선사들은 항상 사고가 나지 않을까 긴장한다. 부산항만공사는 사고를 막기 위해 입항은 홀수 시간대에, 출항은 짝수 시간대에 하도록 하고 있다.
도선사들은 돈을 많이 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국내 759개 대표 직업의 연봉을 조사한 결과 도선사 연봉이 셋째로 많았다. 기업체 고위 임원(평균 1억988만원)과 국회의원(1억652만원) 다음이 도선사(1억539만원)였다.
소득은 선박으로부터 받는 도선료에서 나온다. 배 1척 도선료는 27만원부터 시작한다. 도선법이 정한, ‘반드시 도선을 해야 하는 선박’ 가운데 가장 작은 500t짜리 배를 안내했을 때 27만원을 받는다. 배의 총톤수에 따라 도선료는 올라간다. 14만t 컨테이너선을 안내하면 250만원쯤 받는다. 항공모함 도선료는 150만원 정도다. 부산항 도선사의 경우 한 명이 연간 800∼900척을 안내한다. 도선료는 선사에서 도선사회로 들어와 공평하게 나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도선사들끼리 서로 도선료가 비싼 배를 안내하려고 경쟁이 붙기 때문이다. 도선사들은 순서를 정해놓고 배가 들어오는 대로 주·야간 당번을 정해 24시간 안내하고 있다.
절·고시원 들어가 10년씩 공부하기도
도선사들에게는 ‘민간 외교관’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선장과 선원들이 처음 얼굴을 대하는 게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강을규(58) 도선사는 입항을 맡은 외국 배가 결정되면 예정 시간보다 30여 분 빨리 오른다. 조타실 근무 선원과 가족, 애완견 이름까지 모두 묻고는 한글로 적어준다. 한글이 쓰인 종이를 건네주며 “코리안 알파벳”이라고 설명한다. 세종대왕이 창제했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그러면 외국 선원들은 “나뭇가지 꺾어놓은 것 같다” “액자로 만들어 걸어두겠다”며 신기해한다고 한다. 강 도선사는 “외국 선원들에게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심어주는 게 바로 우리 도선사”라고 말했다.
세계 도선의 역사는 기원전 1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레바논 부근인 고대 페니키아 다니아항에서 도선 서비스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1275년 마르코 폴로가 첫 항해로 인도양을 건널 때는 아랍인 도선사가 함께 있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도 산타마리아호에는 지안 데 라 코사라는 도선사가 타고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588년 당시 세계 최강의 함대였던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한 것은 스페인 함대에 도선사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리나라 도선의 역사는 일본 기록에 나타난다. 9세기 일본인 승려 엔닌(圓仁·794∼864)이 남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당나라로 가는 일본 배가 우리나라 남해안을 지날 때 항로 안내자를 배에 태웠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에는 지방에서 거둔 대동미(大同米)를 중앙으로 운송하던 선박에 수로 안내인을 두세 명씩 태웠다는 대목이 있다. 수로 안내인은 요즈음 도선사로 볼 수 있다.
도선사는 높은 연봉 때문에 ‘꿈의 직업’으로 불리지만 자격조건이 까다롭다. 6000t을 넘는 배에서 5년 이상 선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어야 자격시험을 볼 수 있다. 필기(영어·선박운용술·해사법규)와 실기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실기는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실제 배를 항구에 대는 것과 똑같은 작업을 해보는 것이다. 자격시험을 공부하느라 고시원이나 절에 들어가 10여년씩 공부하기는 예사다.
지난해 합격한 황호성(55) 도선사는 세 번 도전 끝에 성공했다. 선장 14년 경력을 가진 그는 항해 중에 틈만 나면 영어공부를 하고, 배에서 내려 다음 항해를 기다릴 동안에는 고시원에서 시험 준비를 했다고 한다.
올해는 지난 6월 10명을 뽑았다. 108명이 지원해 약 11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합격자 평균 연령은 52세. 항해사와 선장을 거쳐 자격조건을 갖추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정년은 65세. 2007년 이전 합격자는 정년이 68세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기피하는 풍조 때문에 항해사들이 계속 줄고 있어 나중에는 도선사 응시자가 감소할 전망이다. 정태완 부산항 도선사회 회장은 “해양 물류는 늘어나는데 도선사가 줄어든다면 수출입에 비상이 걸릴지도 모른다”며 “도선사 정년을 연장하거나 도선사 학교를 세워 인력을 키우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