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山과 寺

경허선사 왜 `은둔' 했나

자운영 추억 2012. 11. 16. 22:12

조현 201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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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선사 진영  사진 <한겨레> 자료



 경허 스님(1849-1912)은 조선의 억불숭유로 선(禪)의 맥이 끊겼던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해 선을 회복시킨 선불교의 중흥조다. 중국의 고승들에게 법맥을 갖다붙이기에 급급한 옛 고승들보다 오히려 평지돌출한 경허는 원효 이후 최고의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생전에 주색잡기 소문 등으로 ‘원효’ 못지않은 일화를 많이 남겼던 그는 말년에 머리를 기른 채 이름을 ‘박난주’로 바꿔 6년간 함경도 삼수갑산에 은둔해 서당 훈장 노릇을 하다가 입적했다. 올해는 그가 입적한 지 100년을 맞는 해다. 그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세미나가 오는 21일 오전 10시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경허 논쟁’은 열반 10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계속돼 학술세미나마저 우여곡절을 겪었다. 불교 계간 <불교평론> 가을호엔 ‘경허가 음주식육과 여색 등으로 승가로부터 비난을 받고 행실을 후회해 일종의 도피성 은둔을 했다’는 내용의 윤창화 <민족사> 대표의 기고문이 실렸다. 이에 대해 경허 문중인 ‘덕숭총림(충남 예산 수덕사)’이 발끈했고, <불교평론>이 폐간되기에 이르렀다. 학술적 논쟁마저 위축시킨다며 반발한 불교계 학자들의 참가 거부로 연기된 세미나가 이번에 드디어 열리게 된 것이다. 덕숭총림의 대응에 대해선 틀을 벗어난 ‘경허’나 ‘선가의 도리’와는 어울리지 않은 시비로 불교계의 유일한 평론지마저 폐간되게 했다는 비판론이 제기됐다. 


 이번 세미나 발표자로 나선 박재현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리 배포한 자료에서 “불교 등 종교계의 추문과 타락상과 세속화에 대해 몰지각한 일부의 현상일 뿐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종교는 세상에 물들지 않은 뭔가 고결하고 숭고한 것이라는 선입견을 전제로 한 것으로 이것이 종교현상을 보는 올바른 시각을 마비시킨다”고 서두를 꺼냈다.


 박 교수는 경허의 말년 ‘은둔’에 대해 “경허는 욕망과 권력에 경도되지 않는 수행자의 자유로운 의식을 통해 수행자의 윤리성 확보를 중시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문(遺文)을 보면 그는 어떤 수행자보다 엄격하고 방정한 모습이다. 염치가 상실된 시대를 강렬한 역사의식과 수행의식을 통해 돌파해내려던 그는 정치사회적 안목과 세계사적 식견이 필요한 시기에 자신의 역량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꺼이 자리를 비워준 것이다”고 주장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