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야생화

지식채널e - 나무를 지키는 칩코의 여인들

자운영 추억 2011. 2. 3. 00:50

 

 

 

 

 


벌목꾼이여 내 말을 들어보시오.

아름답고 푸른 나무와 숲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오.

나무를 잘라 흉한 모습으로 만들지 마시오.

푸르고 싱그러운 나뭇잎들을 말라 시들어 죽게 하지 마시오.

벌목꾼이여 숲은 우리에게 물이요, 식량이요, 생명이라오.

인도에서 출발한 벌목 반대운동인 칩코 운동가들이 시위를 벌일 때 부르는 노래 가사입니다.

 

 

 

[칩코의 여인들 ]

 

 

아름답고 푸르른 나무와 숲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인도의 히말라야 깊은 산속 평원으로 일을 나간 남자들 대신

 

열매 산나물 약초 땔감…

 

숲에 의지하며 사는 여인들

 

그리고

 

지참금 없이 버림받은 딸

남편의 폭력을 피해 온 아내

창녀촌에서 도망나온 소녀

갈 곳 없는 이들을 품어주는 유일한 안식처

 

 

1973년 3월 23일 갑자기 들이닥친 한 무리의 남자들이 숲에 들어가

도끼로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차라리 내 등을 찍어요!”

 

여인들은 양팔을 벌려 나무를 껴안은 채 소리쳤다

 

“어리석은 여편네들 같으니! 숲의 가치를 도대체 알기나 해?

숲이 얼마짜린지 알기나 하느냐고?”

 

여인들은 대답했다

 

“숲이 품고 있는 땅, 물, 공기는 이 세상과 이 세상이 품고 있는 모든 것들을 보호해요.”

 

여인들은 그 어떤 회유와 협박에도 나무를 껴안은 두 손을 풀지 않았다

 

힌두어로 ‘나무를 껴안는다’는 뜻의 ‘칩코 안돌란’은 이후 벌목 반대 비폭력 운동의 이름이 되었고

 반다나 시바 등 여성 생태학자들이 속속 참여하여 인도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숲이 재생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임산물을 채취하라!”

 

 

1976년 칩코 안돌란의 메시지는 산림 36만 헥타르에 대해 10년간 벌채금지명령을 받아낸다

 

 

 

 

[ 희말라야의 산림파괴를 멈춘 인도의 '나무 껴안기 운동' ]

 

인도에서의 산사태와 범람은 1960년대부터 아라크난다 강 유역에서 대규모 벌목이 실시되면서

 

매년 여름 연례적으로 발생하였습니다

 

 

■ 영국지배시기부터 파괴되어온 산림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에서는 벌목허가의 남발로 무자비한 산림파괴가 자행되기 시작했다.

특히 1962년 중국과의 국경분쟁을 치르면서 해발 5천 미터 이상 산간지역까지 전략적 목적의 도로망이 건설되었다.

로망 구축으로 산사태나 토양유실이 더욱더 많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특히 벌목업자들이 이 도로망을 임도(林道)로 이용하면서

과거 접근이 불가능했던 지역까지 대대적인 벌목이 가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진정한 의미의 숲이 남아 있는 지역은 전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할 정도로 숲이 파괴되었다.

숲이 사라지면서 과거 인간의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에서 서식하던 수많은 사슴, 곰, 멧돼지, 표범, 식인 호랑이들도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 도로변에 가끔 나타나는 원숭이 정도만 남아있을 뿐 대부분 멸종되었거나 멸종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산간지방 사람들은 과거 출몰하던 식인 호랑이들을 무서워했지만 이제는 산사태라는 훨씬 더 큰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 나무 살리기 투쟁에 앞장선 여성들

 

남녀간의 역할이 뚜렷이 구분된 인도의 산간지방에서 여성들은 가사일 외에도 취사와 난방에 쓸 땔감을 구해와야 한다.

한때 나무들은 바로 집 앞이나 마을 주위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 인도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마을 인근에서 숲이 사라지면서 여성들이 나무하기 위해 걸어야 할 거리를 점점 멀어져

일부 마을의 여성들은 하루에 왕복 7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걸어 나무를 구해 오고 있다.

약 30킬로그램에 달하는 나무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3∼4시간을 걸어야 집으로 돌아오는 고역을 이기지 못한

일부 여성들은 자살하기까지 한다. 또한 여성들이 나무를 하거나 운반하는 과정에서 가파른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미끄러져 희생당하는 사고도 빈번히 발생한다.

 

 

 

공교롭게도 인도에서 나무를 살리기 위한 투쟁은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관심사였다.

인도의 통치자가 백성들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던 몇 백년 전 인도 서부 라자스탄 지방의 조드푸르 공국의 왕이

어느 마을 근처의 한 숲을 베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숲은 마을 사람들이 신성림(神聖林)으로 여기고 있던 숲이었다.

 

아미타 데비라고 불리는 여성의 인솔하에 마을 여성들은 숲으로 가 왕이 보낸 벌목꾼들에 대항해 팔로 나무들을 감싸 안았다.

왕이 중단시키기 전까지 데비와 3백62명의 마을 여성들이 벌목꾼들의 도끼질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 역사상 나무를 살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유일한 사건일 것이다.

 

 

 

그로부터 2백50년이 지난 1973년 3월 23일 갠지스 평야지방에 위치한 테니스 라켓 제조회사인 사이몬 사(社)에서

호도나무와 물푸레나무를 벌채하기 위해 산간마을 고페쉬왈로 벌목인부들을 보냈다.

이들이 베려한 나무들은 산림청에 의해 이 회상에 배정되어 산림관들이 고페쉬왈 마을 사람들에게 손도 못 대게 하던 나무들이었다.

가난한 산간지방 마을인 고페쉬왈 마을에서 남자들은 모두 평원지방으로 일하러 나갔기 때문에 여성들이 주동이 되어

벌목대상으로 표시가 된 나무들을 감싸안고 "나무를 베려면 나의 등에 도끼질을 하라"고 소리치며 시위를 벌여 벌목을 저지시켰다.

 

 

 

 

이 사건이 있은 이듬해인 74년 고페쉬왈 인근의 레니마을에서 한 회사가

전나무 2,451그루에 대한 벌목권을 획득하면서 문제는 더욱더 심각해졌다.

 

이 마을의 50대 여성 칩코 운동가 가우라 데비는 27명의 여성과 어린이들을 동원하여

벌목될 나무들 앞에 버티고 서서 시위를 벌였다.

 

가우라 데비는 벌목 작업원들에게 “형제들이여! 이 숲은 우리들의 생명과 마찬가지요.

만일 당신들이 이 숲을 파괴한다면 산이 무너져 우리 마을을 덮칠 것이요.

그녀는 총을 들고 서있는 벌목작업원 중 한 사람 앞에 다가서서 말을 계속하였다.

 

이 숲은 우리를 먹여 살리는 어머니와 같소. 이 나무에 도끼질을 하려거든 나를 먼저 쏘시오.”

결국 벌목 작업원들은 그들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철수하고 말았다.

 

 

캐나다

 

 

캐나다에서 일어난 많은 환경분쟁도 여성들이 주도하고 지역사회내의 숲을 벌목하는 것을 반대한 점에서 인도의 칩코 운동과 맥을 같이한다.

 

93년 캐나다 최대의 벌목회사 맥밀란 브로델사가 밴쿠버 섬 서해안의 클레오쿠앗만 지역에서 원시림을 벌채하려고 했을 때

시위대들은 산판도로의 진입로를 막고 시위를 벌였다.

 

캐나다 사법사상 최대의 환경분쟁으로 기록된 이 시위는 여름 내내 계속되었으며 수만명의 남녀노소가 참가했다.

이 환경분쟁은 1,000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투옥되면서 막을 내렸다.

많은 여성들이 참여한 이 시위를 주동한 인물 중의 하나는 클레오쿠앗 지역 환경단체 출신의 발레리 랭거였다.

그녀는 시위대와 함께 지방산림청을 찾아가 산림청 관리 앞에서 다음과 같이 절묘한 비유를 들며 원시림 벌목의 잘못을 지적했다.

 

“캐나다 정부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원시림을 베기로 한 것은 마치 이탈리아에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미켈란젤로의 천장벽화가 그려진 시스티나성당을 부수기로 결정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결정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1,000년이나 2,000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세계적 문화유산이지만

클레오쿠앗의 온대우림은 만들어지는 데 1만5천년이나 걸린 지구상의 희귀한 자연유산입니다.”

 

인도의 칩코 운동가들은 숲은 우리에게 물이요, 식량이요, 생명이라고 외쳤다.

캐나다의 벌목반대 시위대들은 숲이 사라지면 바다에서 연어가 사라지고 연어가 사라지면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외쳤다.

이들은 숲을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며 지켜야 할 만큼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인도 산림의 미래를 꿈꾸게 한 칩코운동

 

칩코운동은 1973년 탄생이래 급속한 속도로 확산되어 산간지방 곳곳에 칩코 환경캠프장이 설치되어

산간마을 주민들 뿐만 아니라 외부의 학생, 학자, 마을 지도자들을 위한 회합장소 및 교육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칩코운동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결국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칩코운동이 지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거나,

1976년엔 36만헥타르에 해당하는 산림에 대해 10년간 벌채금지명령이 내려지게 만드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칩코운동은 또한 백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으며 인도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조림사업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단체가 되었다.

칩코운동은 외지의 기업이 아닌 마을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조림단지를 조성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였다.

예를 들어 송진을 생산하는 외부기업인들을 위한 소나무가 아니라 활엽수를 심어 산간마을 주민들이 사료로 쓸 수 있도록 요구하였다.

칩코운동은 산림황폐화의 거센 물결을 막고 그로 인한 많은 피해를 줄이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델리에서 산간지방으로 가는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목재 야적장들이 이 나라의 번영과 발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같은 도로변에 세워진 커다란 입간판에는 "자라나는 나무는 인도의 발전을 나타냅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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