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와 바다 생태계 연결 팔미라 환초 만타가오리 연구로 드러나
숲에 모여든 새 배설물이 결국 어류 불러…어부섬의 비밀 밝혀져
▲남해 물건리 방조 어부림 전경(오른쪽 활처럼 휜 숲). 사진=남해군청.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바닷가에는 바다를 끌어안고 있는 초승달 모양의 멋진 숲이 있다. ‘물건리 방조 어부림’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전통 마을숲이다. 2002년 태풍 루사가 방파제를 넘어섰지만 이 숲에 가로막혀 마을의 피해를 줄여준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370년 동안 바닷바람과 파도를 막아준 방풍림이다. 그런데 왜 ‘물고기를 주는 숲’이란 뜻의 ‘어부림’(魚付林)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남해안에는 완도 갈문리 어부림, 여수 장수리 어부림 등 10여개의 어부림이 있고 이곳에서 풍어제를 지내는 등 어촌 마을의 생태경관을 이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숲이 물고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어부림은 물고기가 서식하고 산란하기 적당하도록 수온 등 환경을 조성하는 숲을 가리킨다. 일본에서는 정어리가 산란하러 오는 홋카이도 강 하구의 숲에 이런 이름을 붙인다. 물건리에서도 주민들은 과거 바다에 그늘을 드리울 만큼 숲이 울창했을 때는 물고기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물 반 고기 반’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숲은 고기를 부를까.
▲물건리 포구의 낙조. 방조제가 막히지 않고 숲이 더 울창했을 땐 `물반 고기반'이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미국 캘리포니아대 과학자들이 육지와 바다 생태계가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정교하게 밝힌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연구 대상지는 열대 태평양의 팔미라 환초였다.
애초 연구자들의 관심사는 열대 바다에 사는 거대한 만타가오리였다. 길이 7m, 무게 3t에 이르는 이 가오리는 고래상어처럼 플랑크톤을 먹이로 삼는 수수께끼의 생물이다. 무선추적기를 단 만타가오리의 신호를 따라가던 해양생물학자는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가오리가 천연림이 있는 섬의 특정 해안에만 출몰하고 사람이 코코넛야자를 재배하는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대한 만타가오리. 사진=미국립해양대기국(NOAA), 위키미디어 코먼스.
▲열대 바다에 사는 만타가오리는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연골 어류로 바다 환경변화에 민감하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조사 결과 천연림과 인공림의 가장 큰 차이는 새들이 깃들기 좋은가였다. 붉은발부비 등 바닷새들은 해안 숲에서 번식하는데 단순하고 불안정한 인공 야자숲보다는 복잡하고 흔들리지 않는 천연림을 선호했다. 새의 밀도는 천연림이 야자 재배지보다 4.8배 높았다.
새들이 깃든다는 건 새들의 배설물이 숲에 쌓인다는 걸 뜻한다. 배설물 속의 질소 성분은 먼바다에서는 귀한 영양물질이다. 천연림 토양의 질소는 야자숲보다 5.1배 많았고 당연히 이곳의 낙엽 속에도 질소 성분이 많이 들어 있었다. 또 천연림을 흐르는 개울 속의 질소는 야자 재배지에서보다 26.5배 농도가 높았다.
바다로 흘러들어간 영양물질은 식물플랑크톤을 번창하게 하였고 이는 다시 동물플랑크톤의 증가로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새 배설물 속 질소 동위원소를 추적해 같은 영양물질이 육지에서 바다로 이동했음을 확인했다. 이로써 플랑크톤을 먹는 만타가오리가 왜 천연림이 있는 해안 근처를 좋아하는지가 분명해졌다. 실제로 이 가오리 세마리에 무선발신기를 달아 추적한 결과 야자를 심은 해안에는 전혀 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타가오리의 먹이그물을 연구한 태평양 팔미라 환초의 모습. 사진=키드 폴록, <예일 e-360>.
▲팔미라 환조의 자생림(A)과 야자 재배림(B)은 새의 서식 여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사진=더글러스 맥컬리 등, <사이언티픽 리포츠>.
▲자연림에 깃든 새가 만타가오리의 서식으로 이어지는 생태계 먹이사슬의 모형. 그림=더글러스 맥컬리 등, <사이언티픽 리포츠>.
그렇다면 우리의 어부림도 한때 새들을 끌어들여 그 영양물질이 물고기를 불렀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연구가 없을뿐더러 요즘엔 비료 등 인위적 영양물질이 이미 과잉이어서 새의 배설물은 물고기를 유인하기는커녕 적조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맹자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을 비유해 ‘연목구어’(緣木求魚)라 했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연이 살아 있을 때 나무는 실제로 물고기를 부른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의 원문 정보
Douglas J. McCauley,Paul A. DeSalles,Hillary S. Young, Robert B. Dunbar,Rodolfo Dirzo,Matthew M. Mills & Fiorenza Micheli
From wing to wing: the persistence of long ecological interaction chains in less-disturbed ecosystems
Scientific Reports Volume:2, Article number:409
doi:10.1038/srep00409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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