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할미꽃과의 설레인 첫 만남, 무릎은 다 까져도 기쁨은 가득
척박하고 거친 환경 이긴 꿋꿋한 아름다움 감동
동강할미꽃이란?
동강할미꽃은 강원도 영월과 정선 지역의 동강 유역 산 바위틈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으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동강(영월) 댐 건설을 앞둔 생태조사에서 발견됐으며, 이 식물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희귀 동식물의 분포가 댐 건설을 중단한 한 가지 이유가 됐다.
다른 할미꽃이 땅을 굽어보는 것과 달리 이 할미꽃은 하늘을 향해 피며 나중에 꽃자루가 길어지면서 옆을 향한다. 석회질이 많은 바위틈에서 자라며 키는 약 15㎝ 잎은 7~8장의 작은 잎으로 되어 있고, 잎 윗면은 광채가 있고 아랫면은 진한 녹색이다.
꽃 갈래 조각은 6개로 긴 타원형이며, 길이 3.5㎝, 넓이 1.2㎝이다. 꽃은 연분홍, 붉은 자주, 자주색, 청보라, 노란색, 흰색 등 생육환경에 따라 다양하며 4월에 핀다.
열매는 6~7월께 맺히고 가늘고 흰 털이 많이 달린다. 애초 할미꽃이란 열매의 덩어리가 할머니의 흰 머리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
▲석회암 지대 암벽에 흰꽃이 핀 돌단풍과 함께 자리잡은 보라색 동강할미꽃.
강원도 영월군에 살고 있는 사진작가 정순만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궂은 날씨로 동강할미꽃 빛깔이 좋지 않고 작년보다 늦게 피었노라면서도 하지만 귀하고 귀한 흰 동강할미꽃을 촬영할 수 있다고 했다.
설렘이 앞선다. 지난 4월14일 처음 보게 되는 동강할미꽃을 마음에 담고 영월로 향했다.
▲동강할미꽃 자생지.
급한 마음에 서둘러 약속 장소인 영월 군청으로 달려가니 정순만 씨가 반갑게 맞는다. 꾸벅 인사를 드렸더니, 정순만씨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한다. "어제 흰 동강할미꽃을 누군가 잘라갔어."
그 동안 애지중지 지키던 꽃이 하필이면 촬영시기에 맞추어 사라졌으니 실망이 크지만 어쩌랴.
정순만 씨는 사진인들의 양식을 아쉬워했다. 자기만 찍고 잘라 버리는 못된 습관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고. 디지털카메라가 일반화하면서 취미와 여가 생활의 하나로 인터넷을 통한 사진동호회가 활발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앞다투어 자신의 사진을 올리려는 욕심이 전쟁을 방불케 한다. 자연에서 사심을 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키우니 안타까울 뿐이다.
사진동호회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200~300명씩 단체로 몰려 다니며 가는 곳마다 자연 경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것은 다시 생각할 일이다. 자연 훼손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오후 5시 할미꽃을 촬영하기엔 시간이 늦어 영월 농촌기술센터로 향했다. 동강할미꽃을 증식시키고 있는 곳이다.
이튿날인 4월15일 아침 8시 영월을 떠나 정선군 신동읍 동강할미꽃 자생지로 향했다. 1시간쯤 달리니 백운산이 나왔다. 백운산 계곡은 칼로 자른듯한 급경사의 절벽이 강물에 내려박히는 곳이다.
옥색 빛 물길 계곡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하류로 1㎞쯤 내려가다 보니 가파른 절벽 바위 틈새에 앉아 있는 동강할미꽃이 보였다.
▲ 백운산 정상
▲ 동강할미꽃 자생지로 향하는 일행.
처음 보는 동강할미꽃은 소박하면서도 친숙한 아름다운 빛을 띠고 있었다. 바위 틈에서 모진 풍파를 이겨내는 끈질긴 생명력에서 아름다움이 우러나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척박하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얼어붙는 바위 틈은 식물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하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처럼 동강할미꽃은 거친 환경을 이기고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어 가슴이 뭉클했다.
절벽을 오르며 촬영하는 일을 쉽지 않았다. 무릎과 정강이 몇 군데가 까지는 것은 감수해야 했다. 동강할미꽃 촬영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예쁜 자태의 동강할미꽃은 인간이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험준한 절벽 틈에서 도도하게 피어 있는지도 모른다.
300여 그루의 동강할미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절정기보다 사흘쯤 늦었지만 아주 만족스러웠다. 점심도 거른 채 6시간을 탐색하며 촬영하였다.
우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영월로 향했다. 우선 허기를 달래야 했다. 식사를 마친 뒤 남은 시간을 이용해 영월군 남면 광천리의 남한강 상류에 있는 청령포를 찾았다.
▲청령포
▲ 청령포 소나무 숲
▲단종 유배지 가옥
▲단종이 앉아서 쉬었던 소나무 관음송으로 수령이 700살이다.
이곳은 비운의 역사가 서려있는 단종의 유배지이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물이 맑아 예로부터 영월팔경으로 손꼽히는 명소이다. 저녁 무렵 동강할미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우연히 그 지역 사람이 지나가며 백운산 등산로 주변에 동강할미꽃이 있다고 해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4월16일 아침 백운산 인근에 사는 마을 주민에게 동강할미꽃 자생지를 자세히 물었다.
친절히 안내해 주신다. 백운산 정상을 향해 600m쯤 올라가자 등산로 주변에 산자락을 끼고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을 품은 동강할미꽃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만난 동강할미꽃을 마음껏 가슴에 담아 온 인상 깊은 여행이었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