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야생화

지리산의 찬란한 봄, 그래서 더 미안하다

자운영 추억 2012. 5. 22. 21:54

 

윤주옥 2012. 0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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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도 기준도 상식도 뛰어넘은 지자체의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욕구

환경부는 6월 시범사업지 선정 예정


지난 3월 26일 지리산국립공원 성삼재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백지화 공동행동’(이하 지리산 공동 행동) 발족식을 열었다. 반야봉이 푸른빛을 띠고,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엔 눈이 쌓여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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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여있던 3월 26일, 지리산공동행동 발족식 날부터 지리산 케이블카 백지화 산상시위가 시작됐다.

 

이날부터 매일, 지리산 공동행동은 노고단 대피소 앞에서 산상시위를 해 왔다. 어떤 날은 눈이 내렸고, 어떤 날이 가득한 안개로 한치 앞이 안보였다. 어떤 날은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또 어떤 날은 바람이 심하여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열흘이 가고, 한 달이 가고, 곧 두 달이 된다. 그 사이 지리산은 눈이 녹고, 햇살이 따뜻해지더니 히어리와 진달래가 피고, 새들의 지저귐이 빨라졌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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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지리산국립공원 노고단 정상부가 만개한 진달래로 물들었다.


우리는 안다. 산은 마주 보고 천천히 걸으며, 다람쥐와 휘바람새의 소리를 온몸으로 들을 때 편안해지고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케이블카는 빠르게, 힘 안 들이고 산에 오르게 하니 편리한 시설이지만, 인간에게 편한 케이블카 때문에 산 정상부는 유원지가 되고, 케이블카 주변은 야생동물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는 것을. 케이블카는 그 어떤 말로 포장하여도 자연 경관을 망가뜨리는 대표적인 시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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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가 건설되기 전 설악산국립공원 권금성의 모습. 사진=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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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로 민둥산이 된 설악산국립공원 권금성 부근. 사진=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그런데 환경부는 뒷산도 도시 근린공원도 아닌,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허용하겠다고 한다. 케이블카가 국립공원을 보호하는 시설이라며 환경부는 국립공원 제도 도입 이후 최초로, 박정희 정권에서도 하지 않았던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에 더 길고, 더 거대한 시설이 가능하도록 자연공원법을 개정했다. 

 

자연공원법을 개정한 후 환경부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검토기준을 만들어 각 지자체에 배포했다. 환경부가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에 적극 나서자 지리산 4곳(남원, 함양, 산청, 구례), 설악산 1곳(양양), 월출산 1곳(영암)은 발빠르게 움직여 환경부에 ‘국립공원 변경계획(안)’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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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권 4개 지자체가 계획하고 있는 지리산 케이블카.

 

6곳의 ‘국립공원 변경계획(안)’을 받은 환경부는 3월 26일부터 시작된 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 사업지 선정 작업을 6월 중에 마무리하겠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논의되었던 국립공원 케이블카 논란을 단 3개월 만에 끝내겠다는 것이다.

 

국립공원 케이블카에 대한 찬반을 떠나, 3개월은 6개 사업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를 하기엔 불가능한 기간이다. 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지인 산 정상부엔 이제야 초록 잎이 나기 시작하는데, 환경부는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야생동식물 조사결과에 대한 검증조차 하지 않고 국립공원 케이블카를 허가하겠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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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지리산 케이블카를 건설하겠다는 남원시의 계획도.

 

양양, 영암, 남원, 함양, 산청은 법에 따라 자연보존지구에는 설치할 수 없는 광장을 조성하겠다고 하며, 구례는 법에는 허용된다고 하나 1400m 고지에 100t 규모의 오수처리시설을 설치하여 5ppm 이하로 방류하겠다고 한다. 양양의 환경영향평가서는 초안과 계획서가 일치하지 않으며, 함양은 탐방로 바로 옆에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과 지주를 세우겠다고 한다. 케이블카 설치 욕심이 법도 상식도 뛰어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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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동에서 장터목대피소로 오르는 탐방로에 상부 정류장과 지주를 계획하고 있는 함양군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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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은 자연공원법에서 허용하지 않는 시설(광장)을 상부 정류장 예정지에 계획하고 있다.

 

남원, 함양,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 4개 지자체 모두는 환경부가 정류장 및 지주, 선로 등이 회피해야 할 지점으로 명시한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에 상부 정류장과 지주를 계획하고 있다. 시작부터 모두 불합격인데 환경부는 은근히 최소 1곳은 선정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고, 지자체들은 자기네가 최적지라고 열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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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반달가슴곰 특별보호구에 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지주를 계획하고 있는 구례군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도.

 

환경부는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고, 지자체는 법에서 정하지 않은 시설을 놓겠다고 한다. 환경부가 정한 검토기준을 적용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케이블카는 꼭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환경부가, 국립공원위원회가 법과 기준을 뛰어넘은 6개 지자체의 국립공원계획변경(안)을 어찌 처리하는지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한다.

 

지리산을 생각하면 애잔하고, 케이블카를 생각하면 복잡해지는 마음, 그런데 참 이상하다. 산상시위를 하러 노고단으로 오르다 보면 비비 꼬여있던 마음도, 서운하고 속상했던 마음도 모두 사라진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초록빛에 감탄하고, 말없이 피어있는 철쭉꽃에 감사하고, 곧 피어날 함박꽃나무 꽃을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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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지리산은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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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국립공원 정상부에 피어나고 있는 철쭉.

 

수수한 노란빛의 우리 민들레를 보며 배시시 웃고, 고개 숙인 할미꽃을 마냥 바라보게 된다. 꽃과 나무, 그들 사이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바람, 어느 곳에서 만나도 반갑고 감사한 존재들이지만 지리산이니까, 국립공원이니까 더 반갑고, 더 감사하게 된다.

 

산상시위를 하러 가는 길조차 행복하게 하는 지리산, 아낌없이 다 보여주는 지리산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그냥 바라보는 일뿐이다. 그래서 정말, 더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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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맑고 투명하게 피어있는 토종 민들레.

 

글·사진 윤주옥/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국립공원을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