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500여종 개화시기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겨…기후변화 유력한 증거
150년 새 열흘 일찍 꽃 피어, 온도는 2.4도 상승
▲소로가 이년 동안 움막을 짓고 살던 월든 호수의 모습. 소로가 남긴 관찰기록은 기후변화의 유력한 증거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최초의 환경론자로 꼽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19세기 중반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 지은 단칸 나무 오두막에서 2년 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자연을 닮은 소박한 삶을 성찰한 이 경험은 그의 책 <월든>에 담겨 환경 윤리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소로가 남긴 알려지지 않은 환경 유산이 또 있다. 1852~1858년 사이 그는 콩코드 일대의 자연을 관찰해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리처드 프리마크 미국 보스턴 대 생물학 교수는 소로의 관찰기록에 ‘보물’이 숨어있을 것으로 직감하고 2003년부터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자연주의자였던 소로는 콩코드 지역의 야생화 500여 종이 언제 처음 꽃을 피웠는지 표까지 만들어 적어두었다. 프리마크 교수는 이 기록이 150년 동안의 온대지역 기후변화를 보여줄 중요한 자료라는 사실을 알았다.
▲월든 호숫 가에 복원한 오두막 앞에 서 있는 소로의 동상. 사진=리처드 프리마크, <바이오사이언스>.
그러나 작업은 쉽지 않았다. 소로는 유명한 악필이어서 그의 글을 해독할 전문가가 필요했고 당시의 식물 이름이 현재의 어떤 식물을 가리키는지 밝히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프리마크 교수팀은 국제학술지 <바이오사이언스> 2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 보고했다. 이 논문에서 155년 동안 콩코드 식물의 개화시기는 평균 열흘 일러졌고 기후변화와 도시 열섬효과 때문에 평균온도는 2.4도 상승했다고 밝혔다. 역사상 지구 평균온도가 가장 높았던 2010년에 야생화는 소로 시대보다 3주나 일찍 피었다.
놀랍게도 소로가 관찰했던 많은 식물 종이 사라지거나 희귀해졌다. 소로 시대의 식물 가운데 27%가 더는 볼 수 없게 됐으며 36%는 희귀해졌다.
▲지난 150년간 미국 보스턴에서 관측된 4월 평균 온도 변화. 그림=<바이오사이언스>.
논문은 “현재 콩코드 토지의 35%가 보호구역이고 나머지 27%가 개발되지 않고 있는데 비춰 이런 감소는 놀라운 일”이라며 “한 개체만 남아 있어 지역적인 멸종 위기 놓인 종도 있다”고 밝혔다.
그 사이 콩코드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대부분 농지였던 이 지역의 절반은 현재 숲으로 덮여있다. 그 바람에 양지를 좋아하던 식물은 자생지를 잃었다. 개발로 인해 식물 분포지가 줄었고 불어난 사슴이 야생화를 뜯어 먹기도 했다.
그러나 논문은 “들판, 숲, 습지 등 모든 자생지에서 식물종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을 볼 때 식물 종 감소를 이런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와 외래종을 주요한 이유로 들었다. 조사 결과 추운 해엔 늦게 피고 따뜻한 해엔 일찍 피는 등 개화시기에 융통성이 있는 종일수록 개체수가 늘어나거나 현상유지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후변화가 단지 개화시기만 바꾸는 게 아니라 식물집단의 풍부도와 조성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소로가 <월든>에 쓴 글의 한 대목이 월든 호숫가에 새겨져 있다. "내가 숲에 들어온 까닭은 성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이고 삶에 꼭 필요한 사실만을 겪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논문은 그 메커니즘은 아직 분명치 않지만 개화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종이 매개곤충 등의 활동에 맞춰 가루받이와 결실에 유리하며, 또 꽃이 일찍 피는 식물이 잎도 먼저 내 햇빛을 선점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개화기를 조절하는 능력은 외래종에게 탁월했다. 예컨대 외래종인 자주색 까치수염속 식물은 개화시기를 여러 주 앞당길 수도 있지만 자생 난초는 좀처럼 바꾸지 못한다.
콩코드 식물 가운데 자생종의 비율은 소로 시대에 79%에 이르렀지만 현재는 61%에 그친다.
프리마크 교수는 “소로는 예리한 자연 관찰자이자 뚝심 있는 언론인이기도 했다”며 “그가 콩코드에서 드러난 기후변화의 양상을 안다면 온실가스 감축 운동에 헌신했을 것”이라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원문 정보
Richard B. Primack and Abraham J. Miller-Rushing
Uncovering, Collecting, and Analyzing Records to Investigate the Ecological Impacts of Climate Change: A Template from Thoreau‘s Concord
BioScience , Vol. 62, No. 2 (February 2012), pp. 170-181 DOI: 10.1525/bio.2012.62.2.1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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