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3. 12
황선도 박사의 물고기 이야기 ② 숭어
모쟁이 모치 댕기리 훑어빼기 덴가리 눈부럽떼기…
높이뛰기 선수…펄 속에서 먹이 찾고 사랑 나누기도
[황선도 박사의 물고기 이야기]①아귀 http://ecotopia.hani.co.kr/44807
▲서울 강서구 개화동 한강 둔치에서 한 낚시꾼이 잡은 숭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김봉규
숭어와 가숭어, 어떤 게 진짜 숭어야?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숭어에는 ‘개숭어’라 홀대받는 숭어(Mugil cephalus)와, ‘참숭어’라 불리며 회로 이용되는 가숭어(Chelon haematocheila), 그리고 흔하지는 않지만 등줄숭어(Chelon affinis)가 하나 더 있다.
숭어는 전 연안에, 가숭어는 제주도를 제외한 주로 갯벌에, 등줄숭어는 제주도를 제외한 남해안에 사는데, 그 생김새와 생태적 특성이 조금씩 다르고, 우리가 즐겨 먹을 수 있는 시기도 다르다.
숭어의 몸은 가늘고 긴 측편형이나 머리는 다소 납작하다. 몸 빛깔은 등쪽이 회청색이며 배쪽은 은백색이고, 가슴지느러미 시작 부위에 청색 반점이 있다. 각 비늘의 가운데에 흑색 반점이 있어 몇 개의 세로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에는 기름눈까풀이 잘 발달되어 있고 꼬리지느러미 가랑이가 깊게 패여 있어 가숭어보다는 깊은 물에서 빠르게 헤엄치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다.
▲숭어. 개숭어라 불리며 주로 겨울에 산란한다.
숭어는 바다와 강 하구를 왔다 갔다 하는 왕복성 어류로 1년생 이하의 어린 새끼는 강의 민물까지 거슬러 올라가 살다가 크기가 25㎝ 정도로 자라면 바다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염분이 낮은 하구의 기수역에는 3년생까지도 들어와 사는데, 4~5년 성장해 크기가 45㎝ 정도의 어미가 되면 바다로 나가 산란을 한다. 산란기는 수온 차이에 따라 해역간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10~2월이다.
▲가숭어. 이름과 달리 참숭어로 불리며 횟감으로 널리 이용된다.
가숭어는 숭어와 달리 5~6월 봄에 산란하며 펄이 있는 하구역에 살고 성장이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숭어는 갯벌이 발달되어 있는 곳에 적응하여 꼬리지느러미 가랑이가 깊게 패이지 않았다.
강화의 어민들은 가숭어가 봄철이 되면서 먹이도 먹고 산란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봄철에는 개흙 냄새가 나서 잘 먹지 않고, 오히려 겨울철에 횟감으로 이용하는데 맛이 일품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갯벌이 발달한 강화도에서는 가숭어를 ‘참숭어’라 부르며 가격이 1㎏에 1만 2000원을 넘는다. 이런 생태적 특성 때문에 갯벌이 없는 제주도에는 출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숭어는 늦가을과 겨울에 맛이 들기 시작하여 정월과 이월에 제 맛이 나며, 수온이 올라갈수록 그 살에 수분이 많아지고 ‘쇠금내’라는 갯내까지 나면서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있으니 “여름 숭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기를 들어 “오 농어, 육 숭어, 사철 준치다”라며 6월에 숭어 맛이 그만이라는 얘기도 있으니 ‘잡히는 해역과 먹는 사람의 입맛 나름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숭어와 가숭어를 먹는 제철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던 데서 생긴 혼선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어류는 산란하기 위해 살이 찐 시기에 맛이 있는데, 숭어는 10~2월에 산란하니 여름~가을철에 맛있고, 가숭어는 보리가 피기 시작하여 팰 때까지 4~6월에 산란하니 겨울철~이른 봄에 맛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해마다 8~9월 시화호를 거쳐 안산천 상류 도심까지 몰려와 장관을 이루는 숭어 떼. 사진=상록구청.
생태어업 방식으로 숭어 잡기
1597년(선조 30년) 9월16일 52살의 이순신 장군은 시시각각 변하는 물살의 변화를 이용하여 일본 적함을 무찔렀다. 그 명량 해전이 벌어지던 자리에서 숭어 철이 되면 또 다른 해전이 환생을 한다.
진도대교 밑 울돌목에서 뜰채 하나 달랑 들고 빠른 바닷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숭어를 낚아채서 잡는 숭어 잡이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갯바위에 서서 거센 물살을 쳐다보다가 뜰채를 바닷물에 담그는가 싶더니 채가 허공으로 솟구치고, 이내 은빛으로 파닥거리는 숭어가 하늘을 난다.
▲울돌목의 빠른 물살을 이용해 뜰채로 숭어를 잡는 모습. 사진=블로그 '최근영의 투자 유치 상담 노트'.
이어 대처에서 입소문으로 이런 진풍경을 보러온 관광객들이 환호성을 터트린다. 울돌목에서는 매년 4~7월 사이에 이런 광경이 벌어진다. 특정한 시기에 숭어가 연안으로 몰려오는 것인데, 숭어의 산란철이 겨울이기 때문에 이는 산란회유는 아닌 것 같고 어떤 이유인지는 앞으로 밝혀 볼 일이다.
▲여섯 척의 무동력선이 그물로 숭어를 잡는 육수장망 어업 모습.
숭어 잡이는 남해안 동쪽에서도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어구가 기계화되고 노동집약적으로 되어가는 지금 시대에도 시간을 거스르는 어법이 낙동강 하구역 가덕도 앞바다에 남아 있다. 오랜 전통 방식으로 육수장망(陸水張網)이라는 숭어 잡이가 그것이다.
육수장망이란 어법은 여섯 척의 배들이 진을 치듯 타원형으로 그물을 물속에 깔아 놓고 기다리다가 숭어 떼가 그물 속으로 들어오면 어로장의 신호에 맞추어 순간적으로 일사불란하게 그물을 끌어올려 숭어를 잡는 방법이다. 이는 남해 죽방렴 멸치 어업처럼 숭어가 있는 곳을 찾아가지 않고, 숭어가 오기를 기다려 잡는 생태적 어법인 것이다.
이곳 숭어 잡이는 다른 지역보다 봄이 빨리 오기 때문에 3월부터 시작하여 5월까지 계속되는데, 해안가로 몰려드는 숭어는 눈에 콩깍지가 씌인 듯 반투명 기름 눈꺼풀이 덮여 수면 가까이 떠다닌다. 이런 숭어 떼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물빛이 불그스레해지는데 어로장은 해안가 산 위 망대에서 그 물빛을 보고 숭어 떼가 몰려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에 운반선에 의지하여 포구를 빠져나온 여섯 척의 엔진 없는 목선들이 어장에 도착해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연안 쪽으로 넓게 퍼져 진을 친다. 목선을 사용하는 것은 숭어가 기계소리에 예민하기 때문이고, 또 짧은 거리에서 기동성 있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목선이 알맞다고 한다.
▲가덕도에서 육수장망으로 가둔 숭어 떼를 잡아들이는 어선들.
어군을 탐지하는 어로장이 배가 아닌 해안선을 끼고 있는 산위로 올라간다. 저 멀리 햇빛에 반사된 표면과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의 색깔만으로 숭어 떼가 몰려오는 것을 알아채고 수신호로 작업을 지시한다는 것이다.
어로장의 눈빛은 더욱 빛난다. 숭어 떼가 보인다는 뜻이다. 밧줄에 힘이 들어가고 숭어와의 한판 승부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숭어는 힘이 세고 순간 이동이 빠르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그물질을 하지 못하면 그물 밖으로 뛰쳐나가게 된다.
넓게 퍼져있던 여섯척의 배들이 그물을 당기면 서로 닿을 정도로 간격이 점점 좁혀진다. 배들이 좁아지고 마침내 그물이 들어 올려진다. 그물에 포위된 숭어들이 수면 위로 퍼덕거리며 요동친다. 뱃전까지 뛰어드는 놈도 보인다.
숭어를 몰아 그물에 가두고 뱃전에 올려 접기까지 눈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다. 물론 어부들 사이에 손과 발이 맞을 경우이다. 가덕도의 숭어 잡이는 물고기의 생태와 기후,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는 전통적인 어로 방식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숭어 먹으면 새색시가 집 나간다?
▲서울 양천구 신정교 부근 안양천을 거슬러 오르는 숭어떼의 모습. 숭어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물고기이다. 사진=강재훈 기자.
숭어는 쉽게 놀라 수면 위로 뛰어 오르는 습성이 있어 강 하구나 연안에서 숭어가 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약력이 뛰어나 수면 위 높이까지 뛰어오르는데, 꼬리로 수면을 치면 거의 수직으로 솟구쳐 오르고 내려올 때는 몸을 한 번 돌려 머리를 아래로 하고 떨어지는 게 마치 높이뛰기의 선수인 연어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숭어의 습성을 빗대어 제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저보다 나은 사람을 하릴없이 흉내 내려고 애쓸 때 “숭어가 뛰니까 망둥어도 뛴다”고 한다. 낚시꾼의 이야기를 그린 슈베르트의 명 가곡 ‘Die Forelle’를 우리나라에선 예전에 ‘숭어’로 제목을 붙였으나 사실은 송어(trout)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상식이 되었다.
일본 관동지방에서는 숭어를 먹으면 새색시가 집을 나가게 된다고 해서 금기시하는 물고기이기도 하다. 물고기 하나를 두고 이렇듯 이야기 거리가 많음은 우리 생활과 각별한 사이였음을 시사한다.
▲서민의 사랑을 받는 숭어 회. 사진=<한겨레> 데이터베이스.
숭어는 값이 싸고 맛있는 회감으로 최고이다. 십여년전 필자가 군산에 있는 수산연구소에 근무할 때이다. 아직 물고기가 연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겨울철에 서울에서 친구들이 생선회 한 접시 생각나서 찾아오면 딱히 내세울 것이 없었다.
명색이 물고기 박사로 수산연구소에서 일하는 터라 육고기를 대접한다는 게 체면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금강 하구둑를 건너 장항으로 넘어가니, 금강 하구를 바라보고 여러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한 한쪽에 ‘장원수산’이라는 횟집이 있었다.
그 집 주인은 직접 배를 부려 물고기를 잡는 선장으로 겨울철 숭어를 자연산 그대로 정말 싼 값에 제공해 주었고, 잘 익은 김장김치에 싸서 먹는 맛은 신선함 자체였다.
덕분에 찾아온 손님들에게서 점수 좀 땄다. 그런데, 십년이 지나고 다시 찾은 그곳에는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장사를 하지 않았다. 하굿둑이 막히고 연안 개발에 서식지를 잃은 금강 하구는 점점 어업이 줄어들고 급기야 우리가 먹을 수산물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환경이 지키는 일이 우리의 먹을거리를 보전하는 일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겨울철의 숭어는 피로를 회복시켜 준다고 한다. 기름진 숭어의 몸에는 비타민 에이가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선의 비타민 에이는 그대로 몸에 흡수되므로 효율이 좋다.
또 숭어의 껍질에는 나이아신이라는 물질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이 나이아신은 비타민 비군의 일종으로 세포를 만들어 내는 데 관여하며 이것이 결핍되면 피부나 점막에 장해가 일어나며 그 장애로 인해서 소화기능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숭어는 만성 피로, 피부 미용 및 위장병 등의 치료와 예방에 좋다고 한다. 숭어는 겨우내 영양결핍을 보충하기에 맞춤인 제철 수산물인 것이다.
숭어 '배꼽'의 진실
▲보에서 숭어를 낚아챈 왜가리. 사진=<한겨레> 데이터베이스.
숭어의 몸은 머리가 작고 위 아래로 납작하며 허리가 절구통 같아서 스타일은 보잘것 없고 우수꽝스럽기까지 하다. 머리가 납작하고 주둥이가 아래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펄 흙에 있는 먹잇감을 주워먹기 위해서이다.
고등어와 같이 물속을 헤엄쳐다니는 청어목 어류는 빠르게 유영하면서 입을 벌려 수중에 있는 플랑크톤을 걸러먹기 쉽도록 입이 앞에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물고기도 어디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사용하는 기관이 발달하고 모양새로 그런 쪽으로 알맞게 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생긴대로 숭어는 갯벌을 좋아한다. 숭어가 사랑을 나누는 잠자리는 또한 진흙 속이란다. 방해자가 없는 진흙 속에서 둘만이 그야말로 진탕하게 사랑을 즐긴다.
암컷은 호의를 가진 수컷에게 입맞춤을 당하면 몹시 기뻐한다. 그리하여 산란할 장소를 찾아서 그곳을 청소하고 수컷이 오기를 기다린다. 암컷, 수컷 모두가 단식을 하면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랑의 한때를 보낸다.
진흙 속에 머리를 처박아 꼬리를 격렬하게 흔들면서 사랑 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모습에서 진지함이 넘친다. 그러나 좋아하는 수컷이 아니면 사랑은 성사되지 않는다고 하니 성에 헤픈 것만은 아닌 듯싶다. 직접 사랑을 나누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으나 상상만으로도 충분이 가능한 장면 같다.
물고기는 보통 배꼽이 없다. 포유류가 교미기를 이용하여 체내수정을 하고, 태어나기 전까지 어미로부터 직접적인 영양을 공급을 받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경골어류는 부화된 뒤에는 난황에서 스스로 영양을 섭취하기 때문에 모체와 연결하는 배꼽에 해당하는 부분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숭어는 배꼽이 있다. 그렇지만 진짜 배꼽은 아니고 외견상 주판 알만한 크기로 둥글게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배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같은 숭어 배꼽은 유문(幽門)이라는 위(胃)에서 소장으로 나가는 출구가 발달된 것으로 마치 닭의 모이주머니와 같다.
이러한 배꼽과 비슷한 것이 생겨난 이유는 숭어가 곤죽 같이 된 진흙을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숭어는 펄 흙을 먹어 위 속에 저장하여 유기물질이나 미생물을 영양원으로 흡수하고 불필요한 것은 체외로 배출하는데, 이 배출기관으로 발달한 것이 배꼽 모양의 유문이다.
숭어는 해저바닥의 유기물이나 해조류를 먹기 때문에 이빨이 퇴화되었는데, 대신 먹이를 부수기 위하여 위벽이 단단한 주판알과 같이 되어 있어 숭어를 회로 먹을 때는 이것이 또한 진미이다.
숭어는 생선회 외에도 매운탕이나 미역을 함께 넣은 국으로도 먹으며, 겨울에 맛이 제격이다. 남북교류가 활발할 때 대동강 숭어국이 유명하다고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는데, 대동강 숭어국은 맛이 각별하고 영양가가 매우 높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대동강가에서 대동강 숭어국을 맛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숭어가 바다와 강을 왕래하는 어류로 힘차게 장벽을 허물고 소통을 하는 상징적인 물고기로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
100가지 숭어의 이름
우리나라에서는 숭어를 숭어(崇魚), 수어(水魚), 수어(首魚) 또는 수어(秀魚)라고 기록하고, 중국에서는 스님이 입는 검게 물들인 옷(鯔依)에 암회색의 반문이 있는 바 여기서 유래된 치어(鯔魚), 검은 까마귀 고기를 속칭하는 데서 오어(烏魚), 조어(鳥魚), 조두어(鳥頭魚) 등으로 통한다.
일본에서는 보라(ボラ, 鯔)라고 부르고 영어권에서는 Gray mullet, Striped mullet 또는 Jumping mullet이라고 부른다. 물고기 중 방언이 제일 많은 어종도 숭어로, 평안북도로부터 경상남도에 이르기까지 대충 100개가 넘는다.
평북지방에서는 3월초 꽃샘추위 때문에 무리에서 이탈되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잡힌 놈을 ‘굴목숭어’, 늙은 숭어를 ‘나머렉이’라고 부른다. 한강 하류 사람들은 7월 숭어를 ‘게걸숭어’라고 하는데, 이는 산란 직후 펄 밭에서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강화도에서는 숭어를 크기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는데 손가락 크기만 했을 때 모쟁이, 몸길이가 20㎝ 정도 자라면 접푸리, 성어가 되면 비로소 숭어라 부른다. 전라도의 영산강변에서는 성장과정에 따라 모쟁이→모치→무글모치→댕기리→목시락→숭어라 하고, 강진에서는 모치→동어→모쟁이→준거리→숭어라고 부른다. 대개는 숭어가 커감에 따라 붙여진 것으로 ‘출세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전남 무안군의 도리포에서는 모치→훑어빼기→참동어→덴가리→중바리→무거리→눈부럽떼기→숭어로 구분 짓는다. ‘눈부럽떼기’는 “너는 숭어도 아니다”고 하자 눈을 크게 부릅떴다고 해서 나온 말이란다. 이름의 뜻을 알면 참 재미있다. 숭어는 주로 연안에 서식하나 강 하구나 민물에도 들어가며, 성장과정에 따라 하구와 연안을 왔다 갔다 하는 왕복성 어류이다. 이러한 다양한 서식처 때문에 성장 단계에 따라 여러 이름이 생긴 것은 아닌가 싶다.
숭어 어란 안주로 내야 손 큰 양반
▲전남 영암의 어란 제조 명인 김광자씨. 사진=이병학 기자.
우리나라의 어란은 영암의 숭어 어란을 으뜸으로 치는데, 기름진 펄과 미생물을 흠뻑 먹으면서 알이 통통하게 들어찬 참숭어가 올라오는 영산강이 인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영암어란은 옛날 명주보자기로 싸서 돌상자에 넣어 임금님께 진상했다고 하는 귀한 식품이었다.
어란은 숭어알을 염장, 건조, 압축, 재건조의 여러 공정을 거쳐 만든 건어물로서 음식이 귀하고 고급스러워 궁중에 진상되고 주로 대가 댁에서 술안주로 이용되어 일반인에게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우리 전통 음식중 하나이다.
전남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사는 김광자 할머니(1926년생)가 1999년 12월 해양수산부 지정 수산음식분야의 어란제조 첫 명인으로 지정되었다.
어란을 만드는 첫 단계는 알이 잘 밴 숭어를 고르는 일이다. 그리고 숭어알을 끄집어낼 때, 알집이 터지지 않도록 꼬리 쪽부터 알끈을 잡아 조심스럽게 기울여 꺼내야 한다. 채취한 어란은 농도 3%의 소금물에 5~6시간을 담궈 놓는다. 알에 붙은 핏물을 빼기 위해서이다. 이때 핏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으면 어란이 만들어진 후 이물질들이 표면에 붙어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미관상 좋지 않을 뿐더러 상품의 가치도 떨어진다.
이물질이 제거된 알은 재래간장을 희석한 액에 24시간 정도 담궈 빛깔과 맛을 내는데 알의 크기와 빛깔 내기에 따라 담그는 시간과 간장의 희석정도가 달라진다. 염장된 어란은 비스듬히 세운 건조판에 올려놓고 간장기를 뺀 다음 그 위에 다시 목판을 얹어 적당한 무게의 넓적하고 타원 형태의 돌 인 기압추로 10분간씩 눌렀다가 떼며 손질하기를 3일 동안 수 십여 차례 반복한다.
이 과정은 어란의 압축된 건어물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돌로 누르는 압력이 너무 세면 넓게 퍼져 버리거나 터져버린다. 반대로 압력이 너무 약하면 뭉툭해져 제 모양이 잘 나지 않는다. 김 할머니는 이 과정은 순전히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자신의 힘을 잘 분배하는 경험이 어란을 좋은 모양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형태를 갖춘 어란은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건조시키는데 하루에 두 번씩 뒤집어가며 참기름을 바르면 기름기가 배어나면서 다갈색으로 윤기가 흐르고 20일 정도가 지나면 딱딱해진다. 그리고 굳은 어란을 뜨거운 물에 2분간 담그는데 이는 알집에 붙은 효소로 인해 부패를 막고 바깥 표면의 단백질을 고정시켜 곰팡이가 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까지의 과정이 대략 한 달 정도 걸린다. 이 과정까지 끝나면 숭어알은 어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어란은 만들기만 까다로운 게 아니라 먹는 방법도 만만치 않다. 날이 제대로 선 칼을 불에 달구어 그 열에 기름이 약간씩 녹아나도록 하면서 최대한 얇게 썰어야 한다. 그렇게 얇게 썬 어란을 앞니 사이에 끼고 혀와 이로 자근자근 누르듯 씹으면 입안 가득 향과 단맛이 돈다. 쌈박하고 감칠맛은 없어도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면서 구수한 것이 혀끝에 서서히 아려오는 맛이 거의 환상적인 별미다.
요즘도 힘깨나 쓰는 양반들의 선사품이고 보니 자린고비처럼 천장에나 매달아야 할 생산품이다. 그래서 남도의 돈 좀 있는 집에 가면 고급 술안주로 어란을 내놓고 한 칼씩 발라내는데, 얼마나 썰어내는가 하는 정도에 따라서 주인의 아량을 가늠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귀족의 입맛에서 호사를 누리는 음식이라고나 할까.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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