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필리핀해에서 태어났어, 본능적 감각으로 금강에 왔지, 둑을 오르긴 어찌나 힘들던지…
댐과 보, 수질오염, 기후변화…실뱀장어 1㎏이 중형차 한대값, 어쩌면 영영 못볼지도 몰라
내 이름은 풍천장어야. 민물장어 또는 그냥 뱀장어라고 부르지. 그런데 왜 ‘풍천’이냐고?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강, 그러니까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하구에 산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고창 선운사 근처만 풍천은 아니지. 그곳에 흐르는 강은 풍천이 아니라 인천강이야.
요즘 장어 구경하기 힘들지? 서울 장어구이 집에서 한 마리 먹으려면 3만원은 주어야 해. 실뱀장어 1㎏이 중형차 한 대 값이지. 어때, 이 정도 몸값이니 반말로 얘기해도 괜찮겠지?
▲요즘 한창인 금강 하구의 실뱀장어 잡이 모습. 사진=노한욱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원.
금강 하굿둑을 지나면서 요새 바다 쪽을 보면 배 양쪽에 기다란 팔을 펼친 채 그물을 드리우는 실뱀장어 배가 줄지어 선 것이 보일 거야. 우리들의 숙적이었지. 댐과 보, 수질오염, 그리고 기후변화까지 우리를 위협하기 전까지 말이지. 이제는 우리처럼 보기 힘들어질 사람들이야.
사실 뱀장어는 좀 도도하게 굴 만도 해. 수산어종 중 마지막 야생이라고 할까? 우리는 자연 상태에서 번식 모습을 한 번도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았어. 상업적 양식이 안 되는 유일한 물고기이기도 하지.
알 낳고 새끼가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준 일이 없으니 우린 옛날부터 신비로운 물고기였지. 유럽에 사는 우리 친척 뱀장어는 모조리 6000㎞나 떨어진 카리브해의 사르가소 해역에서 산란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게 20세기 초였고,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뱀장어의 산란 터가 필리핀해 근처라는 사실은 1991년에야 비로소 분명해졌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실뱀장어(오른쪽 위 투명한 개체). 물가의 이끼를 타고 이동한다. 사진=문화방송 촬영.
▲실뱀장어가 거슬러 오르기 쉽도록 플라스틱 수초를 설치한 프랑스의 어도.우리나라엔 이런 시설이 전혀 없다.
아이코, 밀물이네. 역류하는 바닷물을 따라 강으로 올라가야 해. 그런데 무슨 수로 하굿둑을 넘을까. 고깃길(어도)이라고 만들어 놓았지만 물살이 너무 세. 연어가 주로 올라가는 미국에서 공부한 양반이 설계했나 봐.
홍수를 틈타 용케 상류로 올라가면 작은 물고기나 곤충 등을 잡아먹으며 개울의 왕으로 군림하지. 6년쯤 낚시나 그물에 걸리지 않고 다 자라면 불쑥 고향이 그리워지는 거야. 연애도 하고 싶고. 9~10월이 되면 처음이자 마지막 귀향길을 떠나지. 이때 우리 몸은 등과 배에 노란빛을 띠어 황뱀장어라고 불러. 이른바 ‘자연산’의 빛깔이야. 실뱀장어 상태로 양식장에서만 자란 녀석은 등이 검고 배는 하얘.
하지만 바다로 가는 길 역시 만만치 않아. 무엇보다 댐이 가로막거든. 내가 아는 어느 뱀장어는 기회를 놓쳐 팔당댐을 여러 해 빠져나가지 못하다가 그만 정치망에 걸렸는데, 어부가 건져내다가 깜짝 놀라 놓쳤지. 굵기가 어른 허벅지 정도였으니 이무기인 줄 알았나 봐.
▲바다 회유 시기의 은뱀장어(위, silver eel)와 담수에 사는 황뱀장어의 비교. 사진=이태원 충남대 교수.
강을 벗어났다고 곧장 바다로 뛰어들면 소금물에 던져 넣은 배추 꼴이 되지. 강 하구에서 두세 달 머물며 바닷물 적응 훈련을 해야 해. 쉽게 말해 바닷고기로 변신하는 거야. 준비가 끝나면 피부는 은빛으로 바뀌고 깊은 바다의 장거리 항해에 맞도록 눈과 가슴지느러미가 커지지.
이제 우리는 약 3000㎞ 떨어진 산란장으로 가는 거야. 망망대해에 무슨 이정표가 있을 리 없고 오로지 감각과 본능을 내비게이션 삼아 헤엄치지. 전에는 우리가 심해 바닥을 따라가는 줄 알았나 봐. 그러다가 최근 우리 몸에 무선추적기를 달고 위성으로 추적하는 등 법석을 떨어 비밀이 드러났지. 낮에는 천적을 피해 수심 500~900m의 꽤 깊은 곳을 헤엄치다 해가 지면 수심 100~300m의 비교적 얕은 곳으로 이동해. 그렇지만 구체적인 이동 경로는 아무도 몰라.
이동하는 6개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 위와 장은 퇴화해 거의 보이지 않고 그 자리를 생식소가 채우지. 필리핀해 근처에 가면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필리핀 동쪽이자 괌 서쪽,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 북쪽에는 마리아나 해저산맥이 펼쳐져 있지.
해저산맥 때문에 교란된 지자기와 독특한 심해 바닷물의 냄새로 ‘그곳’에 도착했음을 직감하는 거야. 좀 둔해도 염분과 수온이 다른 해류가 장막처럼 앞을 가로막기 때문에 산란지를 놓치는 일은 없어.
▲동아시아 뱀장어의 산란지. 붉은 원은 성체 발견 장소, 무태장어 성체는 노란 원, 흰색은 성체를 채집하지 못한 장소. 사진=가츠미 츠카모토,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중국과 일본에서 온 뱀장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해. 암컷은 눈에 띄게 부푼 배를 하고 있고 이보다 조금 작은 수컷은 그 곁에 머물려고 안달을 하지. 하지만 때를 기다려야 해. 4월 그믐밤 수심 160m쯤 되는 곳에 우리들은 떼로 모여 삶의 마지막 향연을 벌이지. 수온은 25~27도로 따뜻하고, 달이 없어 캄캄한 아득한 밤이야.
이런 사랑의 향연은 8월까지 그믐밤마다 열려. 모든 것을 쏟아낸 우리는 커다란 눈과 꼬리만 남은 처량한 몰골이 되지. 암컷은 처음 바다를 떠날 때보다 몸무게가 5분의 1로 줄 정도야.그게 우리 삶의 마지막이야. 바다에 살다 강에 알을 낳고 최후를 맞는 연어와는 정반대지.
▲일본 실험실에서 기른 뱀장어 성체의 모습. 사진=가츠미 츠카모토, <어류 생물학>.
▲산란지에서 채집한 산란을 마친 동아시아 뱀장어(a, b, f)와 무태장어(c, d, g). 사진=가츠미 츠카모토, <어류 생물학>. 산란 뒤 몸은 형편없이 수척해지고 눈과 꼬리만 제 모습을 유지한다. 먹이를 먹지 않아 이도 퇴화한다.
우리가 왜 이런 삶을 살게 됐는지는 우리도 몰라. 애초 심해어였다가 하도 천적이 많아 육지로 피신해 살다가 알은 고향에 돌아와 낳고 죽는다는 설명이 유력하지.
알은 물위로 떠올라 다시 긴 여행을 떠나. 동에서 서로 흐르는 북적도해류를 타고 떠가다가 다시 북쪽으로 흐르는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동아시아로 가. 이때 자칫 해류를 잘못 타면 열대로 가기 때문에 살 수가 없지. 엘니뇨 같은 기상현상과 지구온난화로 바다 환경이 달라지면 우리가 동아시아로 돌아오는 숫자가 뚝 떨어지지.
▲댓잎뱀장어가 실뱀장어가 되는 과정(위에서 아래로). 과거엔 댓잎뱀장어를 뱀장어가 아닌 다른 생물로 알았다.
알에서 깨면 물에 뜨기 좋도록 댓잎처럼 넓적한 댓잎뱀장어이다가 대륙사면에 이르면 몸이 원통형으로 바뀐 투명한 실뱀장어가 되지. 해가 바뀌어 1월쯤엔 제주도, 2월엔 남해안, 3월엔 서해안에 도착해 다시 강을 거슬러 오르는 거야. 강 하구에서 먹이를 먹기 시작하면 몸이 검은빛으로 바뀌어 어엿한 뱀장어가 돼.
어때, 뱀장어가 만만한 물고기가 아니란 걸 알겠지? 참, 유럽산 뱀장어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거 아시나? 상황은 마찬가지인데 여기선 아무도 관심이 없어. 이대로면 앞으로 영영 날 볼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럼 안녕.
(이 글은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박사, 이태원 충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의 도움말과 쓰카모토 가쓰미 일본 도쿄대 교수 등의 논문을 참고로 구성했습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유럽 뱀장어 멸종 위기… 동아시아 뱀장어도 위험하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 온대산 실뱀장어의 어획량 추이. 세로축은 실뱀장어 자원량 지수. 파란색이 동아시아산, 자주색은 유럽산, 초록색은 미국산 실뱀장어를 가리킨다. 1980년대부터 90% 이상 줄었다.
뱀장어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쓰카모토 가쓰미 도쿄대 교수는 지난달 27일 한국, 중국, 대만의 뱀장어 연구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해마다 가을에 열던 동아시아 뱀장어 자원 위원회(EASEC) 회의를 오는 19일 당겨 열자고 긴급 제안했다.
그는 “과학자들은 유럽뱀장어처럼 동아시아뱀장어도 멸종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며 “최근의 상황에 비춰 긴급회의를 열어 행동계획을 만들자”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던 동아시아 4국은 긴급회의에 동의했다.
뱀장어 양식은 전적으로 채집한 실뱀장어 공급에 의존한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실뱀장어 자원이 90% 이상 줄자 그 절반을 아시아에 수출하던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실뱀장어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세계 뱀장어의 절반을 소비하는 일본을 비롯해 중국, 한국 등은 자국 실뱀장어 감소에 더해 수입량이 줄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요를 대려면 실뱀장어는 연간 15t이 필요한데 지난해 잡힌 것은 2t에 불과했고 수입량도 6t에 그쳤다. 사 올 실뱀장어가 없는 것이다.
이태원 충남대 교수는 “올 들어 상황은 더 나빠져 수입의 대부분이 이뤄지는 현재까지 확보한 물량은 1~2t이 고작”이라며 말했다.
양식한 뱀장어의 생산지 가격은 지난해 ㎏당 3만원에서 올해는 5만7000원으로 올랐다. 마리당 1만원을 넘는 가격이다. 이 교수는 “문을 닫는 식당과 양식장이 속출하고 있어 뱀장어 산업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뱀장어는 2009년 우리나라 내수면 양식 총생산액의 58%, 생산량의 26%를 차지했다. 실뱀장어 가격도 폭등해 현재 ㎏당 3500만원에 이르러 마리당 7000원꼴이다. 실뱀장어 값은 1998년 처음으로 1000원을 돌파했다.
금강 하구에서 40년째 실뱀장어를 잡고 있는 서병안(65)씨는 “그 큰 그물에 한두 마리, 많으면 수십 마리가 걸린다”며 “하굿둑이 없던 1970년대엔 하루 만 마리까지도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강을 다 막아놓은데다 겨우 올라가도 수질오염이 심해져 뱀장어 씨가 말랐다”며 “어미가 없는데 어떻게 새끼가 올라오나”라고 덧붙였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뱀장어 완전 양식…이제 절반쯤 왔다, 일본은 양산 앞둬
김대중 국립수산과학원 전략연구단 박사는 아침마다 뱀장어 유생이 있는 수조에 가서 ‘문안 인사’를 한다. 9일로 알에서 깬 지 138일째, 댓잎 모양의 뱀장어 유생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뱀장어에 호르몬을 투여해 알과 정자를 얻은 뒤 이를 수정시켜 유생을 얻고, 다시 이를 길러 실뱀장어로 길러내는 것이 수산과학원 ‘뱀장어 완전 양식 연구팀’의 목표이다.
얼핏 쉬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일본은 수십년의 연구노력 끝에 2001년 인공 실뱀장어를 길러냈고 2010년엔 이 실뱀장어를 뱀장어로 길러 여기서 얻은 알을 다시 실뱀장어로 키우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실험실에서의 양식성공일 뿐 대량생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김 박사는 “실뱀장어까지는 이제 절반 왔을 뿐”이라며 “자연 서식지의 환경을 몰라 먹이 선택 등이 특히 어렵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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