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天地 山川草木】

[조용헌 살롱] [811] 登山, 入山, 遊山, 棲山

자운영 추억 2011. 11. 19. 11:07

입력 : 2011.11.13 23:30

 

스티브 잡스는 인생의 절정기에 병상에서 죽었고, 카다피는 반란군에게 붙잡혀 질질 끌려 다니다가 죽었고, 박영석은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죽었다.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마지막 가는 모습이라도 장엄했으면 좋겠다. 3인의 죽음을 보면서 잡스나 카다피보다도 설산에서 죽은 박영석의 최후가 훨씬 장엄하다.

박영석의 죽음을 계기로 인간과 산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니까, 4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등산득명(登山得名)'이다. 등산을 하면 이름을 얻는다. 이때의 등산은 만년설이 쌓인 설산을 오르는 것이다. 8천 미터급 설산 14봉우리를 오르면 세계적인 등산가로 이름을 얻는다. 인간 한계에 도전한 초인(超人)으로 사회적인 대접을 받고 명성을 얻는다.

둘째는 '입산수도(入山修道)'이다. 모세가 인생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나이 산으로 들어간 것이 입산(入山)에 해당한다. 이는 생사문제를 해결하는 도를 닦기 위함이다. 나는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아서 시나이 산을 가보지 못했지만, 사진으로 보면 2천 미터 이상 높이에다가 산 전체가 온통 바위산으로 되어 있어서 엄청난 영기(靈氣)를 품고 있는 산으로 보였다. 시나이 산에서 한 달만 살아 보았으면 좋겠다. 구한말 청년 강증산(姜甑山)이 동학혁명의 처참한 실패를 목격하고서, 김제 모악산(母岳山)으로 들어간 것도 입산이다.

셋째는 '유산풍류(遊山風流)'이다. 주말에 산악회 버스 타고 산에 가는 것은 유산(遊山)이고 풍류이다. 요즘 신문광고의 절반은 등산복, 등산화 광고 아닌가. 주말에 산에 가서 기운을 얻어오면 일주일은 버틸 수 있다. 한국은 유산풍류의 전통이 강한 나라이다. 이는 명산을 순례하였던 신라 화랑들의 풍류도와도 맥이 닿는다.

넷째는 '서산자족(棲山自足)'이다. '서(棲)'자는 새가 나무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가리킨다. 산 밑에 황토집 하나 지어놓고 텃밭 가꾸며 자족하는 삶이 '서산자족'이다. 한국 중년남자들의 로망이 바로 산 밑에 황토집 하나 지어놓고 사는 삶이다. 부귀영화도 필요 없다. 오직 몸 건강하게 가족, 친지와 오순도순 살면 되지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치료비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한 달 생활비는 100만원이면 충분하다. 기질과 취향에 따라 '등입유서(登入遊棲)'가 각기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