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락극혜애정다(歡樂極兮哀情多).' '환락이 극에 달하고 나면 슬픈 정만 많이 남는다.' 예전에 소설가 이병주도 이 구절을 찬탄한 적이 있지만, 여러 번 씹어 볼수록 절창이 아닐 수 없다. 한(漢)제국의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한무제(漢武帝)가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강물에 배를 띄워놓고 신하들과 함께 흥겨운 잔치를 하다가 읊은 '추풍사(秋風辭)'의 한 대목이다. 황제가 누려본 환락의 극치는 무엇이었을까? 절대 권력의 쾌감이었을까? 아니면 궁궐 미인들과 누려본 성적(性的) 오르가슴이었을까? 슬픈 정(哀情)이 남지 않는 쾌감이 있다면 그것은 '마운틴 오르가슴'이 아닌가 싶다. 등산의 즐거움 말이다.
조선 후기 장동김씨(壯洞金氏)로서 최고의 명문가였지만, 권력보다는 제자 양성과 산수 유람으로 한세상을 보내고자 했던 김창협은 "산수를 보는 것은 마치 성현군자를 보는 것과 같다"고 고백하였다(以下 이종호,'권력과 은둔'에서 인용). 금강산(金剛山)을 갖다가 모든 산 가운데 최고의 성인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근래에 중국 황산(黃山)과 금강산을 비교하곤 하는데, 두 산을 모두 올라가 보니 금강산이 한 수 위다. 왜냐하면 금강산에는 동해바다의 수기(水氣)가 밀려와 바위산의 화기(火氣)를 달래주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운무에 싸인 황산의 경치는 대단하지만 수기가 부족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김창협의 동생 김창흡은 한발 더 나갔다. "산천은 나에게 진실로 좋은 벗이며 또한 훌륭한 의원이다(誠一好友也 亦一良醫也)." 등산이야말로 병을 치료해 주는 의사라고까지 생각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유봉(1672~1744)은 "유산은 독서와 같다(遊山如讀書)"고 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보는 것만 독서가 아니고 명산을 노니는 것도 또한 독서와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위에 오르고, 노을을 감상하고, 소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독서라면 독서이다. 이런 지점에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 안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민서(1633~1688)는 "등산은 술 마시는 것과 같다(遊山如飮酒)"고 했다. 등산할 때 너무 많은 일행이 함께 가면 시끄럽고 서너 명이 가면 단출하면서 분위기가 집중되어 좋다는 뜻이리라. 등산의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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