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4. 29
애벌레 껍질 째고 나오는데 3시간 반, 몸 말리고 단단하게 만드는데 또 반시간
물속 애벌레 생활 10개월 물고기 잡아먹는 포식자, 성체 되고도 연못 생태계 지배
» 왕잠자리가 부부가 짝짓기를 하며 수초에 앉아 있다. 앞쪽이 수컷이고, 뒤에 있는 암컷이 알을 낳고 있다.
어린 시절 연못 위를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몸집이 크고 초록빛인 왕잠자리는 선망의 대상이다. 쉽게 곁을 허용하는 고추좀잠자리와는 달리 잡기는커녕 앉아있는 모습을 보기도 힘들다.
하지만 동네 형들은 왕잠자리를 잡는 법을 알았다. 먼저 거미줄 묻힌 잠자리채로 수컷을 한 마리 잡는다. 그리고 호박꽃에서 수술을 떼어내 왕잠자리의 옆구리에 묻히면 꽃가루가 얼룩무늬를 이뤄 암컷 왕잠자리처럼 보인다.
이제 암컷처럼 장식한 수컷 왕잠자리의 다리에 명주실을 묶어 머리 위로 빙빙 돌리기만 하면 된다. 사랑에 눈먼 다른 수컷이 짝짓기를 하려고 꼭 끌어안을 때 잡아들이는 것이다(박병상 지음, <동물 인문학> 참조).
지난 4월16일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청룡사지 길 청룡사지 절터를 찾았다. 왕잠자리를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고려 말 청계산 중턱에 작은 암자가 있던 것을 이 태조의 사부 보각국사가 은거하므로, 태조가 대사찰을 세우도록 했다 한다. 지금은 폐허가 되고 부근에는 보각국사의 부도탑인 정혜원융탑과 석등, 정혜원융탑비 등이 남아 있다. 이곳 공터에 조성된 지 몇 해 지나지 않은 인공연못이 있다.
» 청룡사지 주변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연못.
» 몸단장을 하는 원앙 부부.
이른 아침 연못에 가니 원앙 부부가 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곤충이 날아오른다.
운 좋게도 왕잠자리 유충이 10개월간의 수중생활을 마치고 뭍으로 올라와 탈피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일부러 찾아보기도 힘든 광경이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살려 왕잠자리 탈피과정을 촬영하기로 맘먹었다. 탈피에는 3시간30분 정도 걸렸다. 날개를 완벽하게 말리고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는 30분 이상 시간이 더 필요하니 모두 4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날씨나 환경에 따라 탈피 시간이 달라지지만, 분명한 건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탈피의 과정을 사진으로 따라가 보자.
» 오전8시50분 마른 풀 가지 위에 왕잠자리 유충이 매달려 있다. 물기가 마른 유충상태인 것으로 봐 그전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 왕잠자리 유충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꼬리가 길어진다.
» 왕잠자리의 탈피가 시작되었다.
» 왕잠자리 등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머리 부분의 탈피각도 갈라진다.
» 오전 9시15분 왕잠자리는 지속적으로 꼬리를 꿈틀거리며 탈피 각에서 윗몸이 빠져나온다.
» 9시20분 왕잠자리가 몸을 뒤로 젖힌다.
» 9시20분 왕잠자리가 몸을 마음껏 뒤로 젖힌다.
» 9시47분 왕잠자리가 껍질 위로 올라서서 몸부림치며 빠져나온다.
» 9시52분 탈피각에서 빠져나온 왕잠자리의 날개가 제법 길어졌다.
» 얼굴 윤곽과 무늬가 선명하게 왕잠자리 형태로 변해간다.
» 왕잠자리가 구부렸던 꼬리도 편다.
» 10시38분 날개가 완벽하게 형태를 갖추었다. 다리도 검게 변했다. 미동도 하지 않고 날개를 말린다. 통통했던 꼬리도 길어진다. 꼬리가 길어질 때마다 배냇물을 꼬리 끝 배설기관으로 버린다.
» 여린 왕잠자리 날개.
» 다른 곳에서도 왕잠자리 탈피가 한창이다.
» 11시26분 왕잠자리 날개가 펼쳐졌다. 첫 번째 날개짓이다.
» 11시30분 왕잠자리가 날개를 파르르 떨면서 물기를 말리고 비행을 시작할 준비를 한다.
» 왕잠자리가 방향을 이리저리 바꾼다 날기 위해 자리를 잡는 듯하다.
» 12시3분 왕잠자리는 탈피 각만 남겨두고 날아간다.
탈피는 물속 동물이 공중에서 주로 생활하는 땅위 동물로 변신하는 큰 작업이다. 게다가 탈피할 때는 무방비 상태여서 쉽사리 새들의 먹이가 될 수 있다.
■ 왕잠자리의 한살이
» 연잎 뒤에 숨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왕잠자리 암컷.
4월부터 10월까지 볼 수 있는 대형 잠자리다. 교미가 끝나면 암수가 서로 떨어지지 않고 연못이나 저수지, 늪 등을 날아다니다가 수생식물의 조직 속에 산란관을 꽂고 산란한다. 알에서 깬 유충은 처음에는 물벼룩을 주로 잡아먹지만 점점 자라면서 송사리·올챙이·실지렁이 등을 잡아먹기도 한다. 유충기는 10개월이다.
잠자리는 날면서 사냥을 하는데, 긴 다리에는 날카로운 가시처럼 생긴 털이 나 있어서 하루살이 같은 먹이를 공중에서 움켜잡을 수 있다. 긴 다리를 모두 모으면 길쭉한 대바구니 같은 모양이 되어 어렵지 않게 사냥을 할 수가 있다.
» 수컷은 암컷이 알을 낳을 때까지 곁을 지킨다. 다른 수컷이 암컷을 채가지 못하도록 머리 뒷부분을 꽉 붙든다(이때 암컷 머리를 붙드는 수컷의 꼬리에 달린 집게 모양을 ‘교미부속기’라고 한다.
수컷은 사냥도 하지만 암컷을 찾아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영역도 지키며 암컷을 보면 쏜살같이 달려들어 짝짓기를 한다. 먹이를 보면 급히 입술을 뻗어 그 끝의 갈고리로 먹이를 잡아먹는데, 직장에 기관아가미가 있어 이것으로 호흡한다. 한국·타이완·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잠자리는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잠자리의 조상은 약 3억 년 전인 고생대 석탄기에 이미 존재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잠자리들은 약 2억 년 전쯤에 모두 멸종되어 화석의 형태로만 발견된다. 오늘날의 잠자리들은 약 1억 5000만 년 전에 진화한 잠자리의 후손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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