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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번식지, 아득한 절벽 위 3m 둥지

자운영 추억 2016. 5. 2. 17:19

김진수 2016. 0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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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의 제왕’ 검독수리 번식지 알타이를 찾아 ④ 차간 우즌강 독수리 둥지
풀 한포기 없는 아득한 절벽 위에 해마다 둥지 재활용
산 먹이도 무서워하는 순둥이 어린 독수리 바닥에 납작

1-1 .jpg » 가파른 능선 끄트머리에 둥지를 튼 독수리 암컷이 새끼를 돌보며 둥지에 앉아 있다.
 
30년도 더 된 러시아제 미니버스(UAZ-2206)가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가파른 민둥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30여분. 하늘에 닿을 듯 끝없이 펼쳐진 민둥산의 정상부 고원을 달리던 차가 멈춰 섰다. 험지 알타이를 거뜬히 누빈 강력한 4륜 구동을 장착했지만 차로 더는 갈 수 없다. 

1-2.jpg » 민둥산 위 고원. 만년설이 쌓인 알타이의 고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1-3.jpg » 4륜 구동을 장착한 차량이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산을 오르고 있다.
 
지피에스를 들여다 보며 시베리아 에코 센터 엘비라 대표와 러시아 조류 연구가 레나 슈나이더가 앞장섰다. 비탈길은 발을 디딜 때마다 흙이 흘러 내리고, 칼처럼 날카로운 능선은 좁고 아슬아슬했다. 둥지로 접근하자 비탈은 경사가 급해졌고, 산 능선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좁아진다. 

1-4.jpg » 칼처럼 일어선 바위 위로 좁고 날카롭게 이어진 능선 끝에 독수리 둥지가 있다

1-5.jpg » 러시아 조류 전문가가 둥지로 접근하고 있다. 둥지 너머로 차간 우즌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어미 새가 둥지에 앉아 있었다. 가락지를 채우려고 더 접근하자 곧 날아갔지만, 둥지에 있는 어미와 어린 새를 함께 찍었다. 운이 좋았다.
 
멸종을 피해 오지로 숨어든 최후의 안식처처럼 둥지는 바위 언덕이 성벽처럼 둘러막고 있다. 둥지 지름은 긴 쪽이 1.5m 정도. 
 
2-1.jpg » 매년 고쳐가며 다시 쓰는 둥지는 높이가 3m나 된다.

2-2.jpg » 둥지 위 어린 새와 주변 풍경.

2-3.jpg » 둥지 위 새가 가만히 엎드려 있다.

아슬아슬 절벽에 걸쳐 있는 둥지는 허공에 매달려 알타이의 차고 거센 바람을 그대로 견디고 있었다. 둥지 밑으로 펼쳐진 아득한 절벽 아래 짙푸른 강물이 차간 우즌 계곡을 험준하게 파헤치며 요란스럽게 흐르고 있다.
 
독수리는 매해 둥지를 고쳐가며 다시 사용한다. 웬만한 풀은 자라기 어려운 불모의 땅 알타이에서 물어 온 나뭇가지를 절벽에 겹겹이 포갠 높이가 3m에 이른다. 메마른 바람이 부려놓은 척박한 흙과 돌에 오랜 세월을 함께 버무려 포개 올린 멸종위기종의 최후의 보루다.

3-5.jpg » 둥지 바로 옆에선 알타이 아르갈(야생 양)의 배설물도 발견되었다.
 
둥지로 이어진 능선엔 좀체 눈에 띄지 않는 알타이 아르갈(야생 양의 일종)의 배설물도 즐비했다. 억센 풀만 겨우 듬성듬성 자라는 불모의 흙으로 된 민둥산과 바위 절벽 끝까지 몰린 야생동물에는 마지막 안식처인 셈이다.
 
살아있는 먹이는 무서워 피할 만큼 겁이 많은 독수리는 사람이 접근하자 둥지에 머리를 박고 순한 아이처럼 엎드렸다. 좁은 둥지 위에서 러시아 연구자들은 빠르게 가락지를 달았다. 
 
오렌지와 은색이 섞인 러시아 맹금류 보호 연구센터의 가락지는 왼쪽에, 모스크바 가락지 센터의 은색 가락지는 반대 편에 달았다. 짧은 시간에도 변화무쌍한 알타이의 여름 해가 구름에 가렸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3-1.jpg » 좁은 둥지 위에서 가락지를 달고 있다.

3-2.jpg » 왼쪽 다리 먼저.
 
3-3.jpg » 가락지는 누가 다는지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 오렌지와 은색이 섞인 알루미늄 링은 러시아 맹금류 보호 연구센터가, 은색만 있는 알루미늄 링은 모스크바 가락지 센터에서 조사를 위해 부착하고 있다. 알파벳 B는 링의 크기를 나타낸다. A가 가장 큰 크기이고 B는 그보다 작은 크기이다. 숫자 125는 고유번호.

4-1.jpg » 작업을 마치고 현장을 빠져 나오고 있다.

가락지를 달고 둥지 조사를 마친 레나가 어린 독수리 눈을 가리고 있던 모자를 들어 다시 썼다. 길게 땋아 늘인 금발엔 방금 둥지서 주워 온 검정색 깃을 달고 있었다. 

4-2.jpg »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차량 안에서 레나의 길게 땋은 금발 머리에 매단 독수리 깃이 흔들리고 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알타이공화국이지만 남부의 중심 도시 코쉬-아가츠 주변은 여름엔 볕이 좋은 초원지대다. 독수리 둥지를 찾아 코쉬-아가츠 시내를 벗어나 차간 우즌 강 유역으로 40㎞쯤 달렸다. 
 
비포장 도로 너머로 민둥산이 나타나면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풍광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황무지처럼 풀이 거의 자라지 않고 자갈과 흙이 뒤덮인 땅이 이어지고 있었다. 민둥산 정상부의 고원은 사막 기분이 나기도 하고 하늘 위 구름과 맞닿아 끝없이 펼쳐졌다. 

5-1.jpg » 초원 지형을 조금 벗어나자 민둥산이 나타나면서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5-2.jpg » 러시아 시민들이 민둥산 주변에서 캠핑을 즐긴다.
 
야영을 겸해 강 옆에 텐트를 쳐 베이스캠프를 마련한 뒤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시베리아 남부와 알타이 지역의 맹금류 연구를 진행해 온 시베리아 에코 센터에서 지난해부터 가락지 작업을 하던 독수리 둥지가 주 목표였다. 
 
펼친 날개 길이가 2.5~3.1m나 되는 독수리는 우리나라를 찾는 수리과 새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크다. 사냥을 하지 않는 대신 커다란 날개를 펴고 높은 곳에서 활강을 하며 동물의 사체를 찾아다닌다. 
 
둥지는 천적의 접근이 힘든 절벽 같은 외딴곳에 튼다. 전 세계 1만여 마리 정도 남아 있는데 2013년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1600마리가 월동했다. 
 
알타이(러시아)/ 글·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