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7
호랑거미 수컷, 그물 흔들며 접근하면 암컷 공격성 둔해져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자, 실험으로 입증…다른 호랑거미에도 나타나
» 암컷의 공격성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거미줄을 흔드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밝혀진 호랑거미의 일종. 사진=매커리 대
짝짓기를 하기 위해 암컷에게 접근하는 것이 수컷 거미에게는 심각한 고민거리다. 거미줄을 치고 먹이를 잡는 거미들은 진동에는 아주 예민하지만 시력은 둔하기 짝이 없어 자칫 덩치가 작은 자신을 먹이로 착각해 잡아먹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짝짓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도 수컷은 종종 잡아먹히지만, 이미 후손을 남기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수컷 거미는 어떻게 암컷이 자신을 먹이로 착각하지 않도록 할까.
호랑거미 수컷은 짝짓기 때 몸을 흔들어 거미줄을 진동시키는 특유의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진동이 암컷의 포식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오스트레일리아 매커리 대 연구진이 조사했다.
연구진은 귀뚜라미를 거미줄에 걸리게 한 뒤 짝짓기 진동을 추가했을 때 암컷의 반응이 어떤지를 실험했다. 그 결과 수컷이 내는 진동을 가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에 견줘 암컷이 먹이에 더 느리게 반응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실험에 사용한 것과 같은 종의 호랑거미. 다른 호랑거미도 거미줄 흔드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스튜 필립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수컷은 암컷에게 접근할 때 몸의 앞과 뒤를 빠르게 흔드는 동작을 하는데, 짝짓기를 하는 도중에도 자주 몸을 흔들어 댄다. 암컷도 강력하게 오래 몸을 흔드는 수컷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짝짓기 도중 시원찮게 몸을 흔든 수컷일수록 사랑을 나눈 뒤 잡아먹히는 확률도 높았다.
그러나 연구진은 흔들기가 암컷의 공격성을 누그러뜨리는 행동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실험 결과 흔들기가 암컷의 공격 성향을 누그러뜨리는 것은 분명하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수컷은 암컷의 공격을 억제하여 접근한 뒤에는 다른 신호로 자신을 알리는 듯하다. 흔드는 동작도 암컷이 자리 잡은 거미줄 중앙에 도달했을 때보다 그 직전에 최고조에 이른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수컷의 이런 흔들기 행동은 수컷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실수로 수컷을 모조리 잡아먹으면 암컷도 자손을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호랑거미의 다른 종에서도 이런 흔들기 행동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런 신호가 진화적으로 선택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연구결과는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신호에 실렸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Wignall, A.E. & Herberstein,M.E. Male courtship vibrations delay predatory behaviour in female spiders. Sci. Rep. 3, 3557; DOI:10.1038/srep03557 (201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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