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전통】

미륵리사지와 마의태자

자운영 추억 2013. 12. 26. 22:19

千年을 우두커니… 마의태자는 산 너머 누이를 마주하네

  • 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
  • 입력 : 2013.12.19 04:00

    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인 이 즈음, 중원(中原) 땅으로 간다. 월악산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한 충북 충주 일대다. 적당한 산행과 적당한 역사와 적당한 스토리를 적당한 시간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름 하여, 중원 문화여행.

    한 집안이 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 나라가 망하는 판이었다. 그래서 1000년 전 경주에 살던 특별한 부자(父子)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아들: “마땅히 죽을 각오로 지키다가 힘이 다한 뒤에야 그만둘지언정, 어찌 천 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경솔히 남에게 준단 말입니까?”
    아비: “죄 없는 백성으로 하여금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

    서기 935년이니 1000년 전 정확하게는 1079년 전 딱 이맘 때, 삼국사기에 따르면 특별한 아버지 경순왕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바로 항복 문서를 보냈고, 특별한 왕자는 ‘통곡하면서 왕에게 하직하고는 지름길로 개골산(皆骨山)에 들어가 바위를 의지하여 집으로 삼고 삼베옷을 입고 초식(草食)만 하면서 일생을 마쳤다(王子哭泣辭王 徑歸皆骨山 倚巖爲屋 麻衣草食 以終其身)’.

    금강산을 개골산이라 적었으니 겨울이었고, 실제로 삼국사기는 ‘겨울 10월’이라고 연대를 밝히고 있다. 경순왕은 신하였던 견훤이 천거해 왕이 된 사내였고, 세월이 흘러 신라가 이 지경에 빠진 원인이 바로 그 견훤이었으니 역사는 참 무상하고 무심타. 어찌되었건 나라는 고려에 넘어갔고 경순왕은 경주 일대를 다스리는 영주쯤으로 전락해 살았다. 왕의 아들은 팔도 방방곡곡에 많은 전설과 사연을 남기며 개골산에 칩거했다. 1000년 뒤 극작가 유치진은 ‘마의태자’라는 작품에서 왕과 왕자가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비극을 창조해 사람들을 가슴을 매료시켰다. 우리가 떠날 여행은 바로 이 마의태자가 남긴 흔적이 있는 곳이다.

    왕자, 마의태자가 금강산까지 걸어간 지름길(徑歸)은 하늘재다. 경북 문경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 미륵리로 이어지는 이 고개길은 서기 156년 신라 아달라왕이 개척한, 기록상 한반도 최초의 ‘계획도로’다. 훗날 문경새재가 개통될 때까지 하늘재는 한반도의 중추 교통로였다. 평강공주를 울리며 단양에서 전사한 장군 온달도 문경~충주~단양에 이르는 중원 땅을 지키던 장수였다. 하늘재의 남쪽 끝은 관음리, 북쪽 끝은 충주 미륵리다. 관음보살은 중생들 현세 생활에 자비를 베푸는 존재고 미륵불은 미래와 내세를 관장하는 존재이니, 마의태자는 현세와 내세를 가르는 갈림길에서 내세를 택했다. 지난 15일 산불 조심 기간이 끝나면서 관음리~미륵리 하늘재 구간은 눈꽃 피어난 트레킹 코스로 변했다.

    미륵리사지와 마의태자

    미륵리사지는 유난히 푸르스름했다. 떨어지는 햇살도 파리했고 맵싸한 겨울바람도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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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미륵리. 석불과 석탑 드문드문 서 있는 폐사지가 있다. 미륵리사지다. 공식적으로는 미륵대원사지라고 한다. 하늘재를 넘은 마의태자가 세운 절이라고 했다. 텅 빈 공간에 탑 몇 개와 멀리 보이는 돌부처가 전부. 그런데 이 땅에 있는 큰 폐사지들이 그러하듯, 묘한 분위기가 있다.

    맵쌀한 겨울바람 속에 거대한 석물(石物)들이 천년 세월을 머금고 서 있다. 폐사지 끝에는 10m가 넘는 미륵불이 서 있다. 경주 석굴암처럼 3면에 석벽이 서 있고 그 한복판에 미륵불이 우뚝하다. 벽면에는 크고 작은 부처들을 모시는 감실이 뚫려 있는데, 서쪽면에는 아직 희미하게 부처상이 남아 있다. 그 규모에 일단 압도되고, 거친 돌로 쌓아 만든 낯선 풍경에 마음이 설렌다. 현세를 등지고 내세로 넘어온 태자. 56억7000만년 뒤에 현세를 찾아온다는 미래불, 미륵불을 여기에 모셔놓았다. 그것도 석굴(石窟)에다가.

    미륵불을 둘러싼 석벽에 있는 부처상

    너른 절터 맨 끝에는 미륵불 입상이, 그 앞에는 석등이, 그 뒤 폐사지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석탑이 일렬로 서 있다. 왼편으로는 또 다른 석등이 있고 그 뒤로 고졸하되 큼직한 귀부(龜趺)가 앉아 있다.

    폐사지란 것이 원래 전쟁과 세월에 나무와 쇠는 불타고 녹아 석물만 남는 게 정석이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거돈사지 또한 그 먹먹한 분위기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더군다나 이 매서운 계절에 흙과 눈과 얼음과 석물만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으니 마치 흑백 리얼리즘 사진처럼 딴 생각 전혀 나지 않고 폐사지 그 자체에만 온 마음을 집중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미륵리사지는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석굴형 절집이기에 시각적으로도 기이하다.

    미륵불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북쪽인 사실도 기이하다. 국내에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부처님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그 연유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석불과 석등과 석탑을 잇는 일직선을 북쪽으로 연장하면 산 너머에 또 다른 부처님을 만나게 되니, 상상 속에서나마 의문은 풀린다. 직선거리 5km, 시간으로는 10분 거리다. 덕주사 마애불이다.

    북두칠성 아래 부처님

    미륵리사지에서 나와 송계계곡을 따라 북상한다. 10분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덕주사 이정표가 나온다. 마의태자의 누나인 덕주 공주가 세웠다는 절이다. 옛 절은 6·25 때 불탔고 지금 절은 새로 지은 것이다. 옛 절은 지금 절에서 1.5km 산길 위에 있었다. 절은 간 곳 없지만 거기에 거대한 불상이 하나 있어 미륵리사지 돌부처를 바라보고 있다. 이름하여 덕주사 마애불이다. 사람들은 바로 덕주 공주 본인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산 너머로 미륵리사지 석불을 바라보고 있는 덕주사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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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댈 데라고는 남동생뿐이었던 공주와, 세상을 등진 동생이 시간대를 초월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두 불상은 서로를 바라보며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천년 동안 서 있다. 한날한시에 두 오누이 꿈에 현신한 부처님이 내린 ‘북두칠성 아래에 절을 지으라’는 계시에 두 사람이 동시에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요즘 같은 겨울이면 초저녁부터 그 하늘 위로 북두칠성이 또렷하게 반짝인다. 그래서 덕주사 마애불 뒤로 솟는 북두칠성을 찍기 위해 야간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지인 미륵리사지와 달리 덕주사 마애불은 산 중턱에 있다. 첫 이정표 이후 도무지 마애불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렵다. 산길 1.5km는 못해도 30~40분을 잡아야 한다. 마음 산란해질 때쯤 석축 위로 바위가 보이고, 바위에서 부처님이 세상을 바라본다. 한눈에 봐도 높은 신분을 모델로 삼았을 법하게 귀티가 난다. 태자 남매의 현세 인연을 내세에서도 이어주고 있는 돌부처들 앞에 서면 그 기분, 단순한 관광이나 등산과는 조금 다르다. 짧은 산행 내내 흰눈 덕분에 눈은 호강하지만 길은 미끄럽기 짝이 없고 오후 3시 정도면 어둑어둑해지니 서둘러야 한다.

    세상을 경계하는 눈초리

    사자빈신사지 구층석탑 탑신 한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절 주차장 약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계곡으로 나온다. 오른쪽은 충주호반 드라이브코스, 왼쪽은 수안보 온천 방향이다. 어디를 택하든, 왼쪽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사자빈신사지 구층석탑(보물94호)은 꼭 한번 보도록 한다. 탑신 한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이 사자 네 마리 호위를 받으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광명의 부처다. 미혹에 빠진 자들에겐 보이지 않고, 오로지 맑은 마음에게만 밝게 빛나는 부처다.

    탑신에는 ‘대평2년(1022년·고려 현종 13년) (음력) 4월’이라는 정확한 건립 연대가 새겨져 있으니, 때는 거란족 3차 침입이 지난 뒤다. 거란족 침입 이후 적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았다는 건립 목적 그대로, 세상을 경계하는 부처님 눈초리가 매섭다. 시간대를 초월해 중원 땅 한쪽에 중첩돼 있는 망국의 한(恨)과 나라를 잃지 않겠다는 서원을 눈앞에서 확인한다. 주택가 밭 한가운데 있는 자그마한 탑이지만, 외형적인 아름다움과 의미만으로도 일견할 가치가 충분하다.

    여행은 이쯤에서 끝난다. 외형은 예전만 못하나 물만은 여전히 좋은 수안보로 가서 온천욕을 즐기든 충주호로 가서 드라이브를 즐기는 자유다. 어디든 하룻나들이로 가능한 짧고 진한 여행이다.

     

    여행수첩

    가는 길 (서울 기준)
    1.미륵리사지: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IC에서 괴산, 수안보 방면→괴산교차로에서 충주, 수안보 방향 좌회전→이후 외길 따라 가다가 오른쪽에 미륵리 이정표. 하늘재는 주차장에 차를 댄 뒤 미륵리사지로 들어가다가 왼쪽 길에 이정표.
    2.사자빈신사지구층석탑: 미륵리에서 나와서 우회전, 5분 정도 송계계곡쪽으로 가면 왼쪽 절골 마을 소로로 500m.
    3.덕주사:구층석탑에서 나와서 좌회전해 5분 거리. 절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른쪽 개울 건너 산행 40분. 중간에 이정표 없음. * 미륵리사지 내비게이션은 ‘수안보면 미륵리 58번지’.

    숙박
    충주 관광포털 홈페이지에 각 숙박시설 및 주변 관광지 안내.

    맛집
    수안보 향나무집식당(043-846-2813). 향나무 정식 1만3000원.
    청국장, 비지, 더덕무침, 굴비, 잡채 등 찬거리가 한상 가득 나온다.

    월악산국립공원 worak.knps.or.kr, 충주시 문화관광과:(043)850-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