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전통】

해학과 넉살 넘치는 충청도 말, 들어보실래요

자운영 추억 2013. 11. 21. 20:50

  • 김윤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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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11.18 03:02

    6년에 걸쳐 '예산말 사전 1·2권' 편찬한 충청도 토박이 이명재 시인

    
	향토시인 이명재씨는 “숨어 있는 방언은 문화창달의 귀중한 자산”이라며 “충청도 방언을 집대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향토시인 이명재씨는 “숨어 있는 방언은 문화창달의 귀중한 자산”이라며 “충청도 방언을 집대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명재 시인 제공
    '시상이 이 버덤 좋은 것이 오딨간? 옛말이두 있잖어. 먼디 사춘버더 이 이 더 가차운 거라구', '떡본 짐이 지사 지낸다구, 친구 만난 질이 손 점 빌려서니 밀린 일 다 을러방쳤유', '애덜 대학을 갈칠라니께 지둥뿌리기가 남어나질 않여.'

    이 구수하고 맛깔난 문장들은 '예산말 사전'(신원)에 담겨 있다. 충청말, 그중에서도 본류로 불리는 예산·홍성 방언을 집대성한 '예산말 사전 1·2'권은 충남 예산 토박이 이명재(51) 시인이 6년 작업 끝에 본 결실이다. 어휘만 8000여개. 어휘마다 일상에서 여전히 활용하는 문장들을 예문으로 실었다. "차령산맥을 기준으로 충청도 말이 갈라집니다. '아버지 돌 굴러가유~'처럼 느리고 능청스러운 충청도 말이 예산, 서산, 당진, 태안 쪽 방언이지요."

    사전 작업은, 충청도 방언이 다른 지역에 비해 소외돼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경상도, 전라도 말에 비해 연구가 가장 안 돼 있어요. 서울, 경기와 가깝다 보니 '중부방언'으로 두루뭉술 묶여서 그 가치를 크게 두지 않은 거죠. 제주말 사전 덕에 제주 방언이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되는 걸 보면서 사투리 연구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그는 충청도 사람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는 충청말의 특징은 '비유'가 많은 것이라고 했다. "서울 사람이 '바쁘니 좀 비켜라' 하면 충청도 사람은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시지 왜 인저 오셨어유?' 합니다. 잔칫집에 먹을 게 별로 없으면 '허연 멀국에 헤엄치겠더구먼' 하고, 누가 세상을 떠났으면 '어젯밤 그 양반이 숟가락을 놓으셨디야' 하고요. 대놓고 욕하지 않는 충청 사람들의 처세를 엿볼 수 있죠."

    이씨는 대전에서 대학 다닐 때만 빼고 반평생을 예산에서만 살았다. "젊어서 지역문화예술운동 한다고 뛰어다녔는데 어른들이 도통 협조를 안 해줘요. 그때 결심했죠. 나는 후배들에게 꼭 필요한 어른이 돼야겠다. 그러다 덜컥 마흔이 넘은 겁니다. 문학 하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방언 정리를 해두고 싶었지요. 방언을 발굴하고 사전으로 만드는 작업은 힘만 들지 돈이 안 되니 대학에서도 인기가 없거든요. 구석진 곳에 방치된 언어 유산을 햇빛 보게 하는 일이 내 할 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명재 시인은 "지역말을 살리는 것은 한국 문화의 줏대를 세우는 일"이라고 믿는다. "지금의 표준어라는 게 한강 이북의 서울말입니다. 한자말 포함해봐야 30만개가 안 돼요. 우리말 국어대사전에 기록된 단어가 70만개인데 그중 60%가 방언입니다. 서울말의 자원이 워낙 적으니 방언 발굴이 중요한 겁니다.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말들을 죄다 찾아낸다면 우리말이 훨씬 폭넓어지고 깊어질 거라 확신합니다."

    사전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5권 정도 내면 충청도 말의 전반적인 윤곽이 잡힐 것 같아요. 앞으로 10년은 더 밤샘해야죠(웃음). 일반 책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게 문제인데, 다행히 예산군에서 보조금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이씨는 시단에서 이정록의 시집 '어머니 학교'를 감수한 걸로도 유명하다. "옆동네(홍성) 살고, 나이도 비슷해서 벌써 20년지기 친구지요. 촌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 구술을 받아 시로 엮었는데 홍성 사투리를 제대로 쓴 것인지 살펴봐달라고 하데요."

    20대 시인으로 등단했는데 정작 자기 시집은 내지 못했다. "시는 많이 써놨는데 이 사전 작업 때문에…. 후년쯤 첫 시집 발표하려고요. 구수한 예산말 듬뿍 담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