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식 KAIST 교수· 뇌과학
입력 : 2013.09.17 03:03
김대식 KAIST 교수· 뇌과학
차가 많이 다니는 길에선 일명 '포트홀(pothole)'이라 불리는 깊은 구멍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온도 차이 그리고 자동차들의 무게 때문에 길에 깔린 아스팔트가 금 가고 갈라지는 현상이다. 특히 겨울과 봄 사이 온도 차이가 심한 미국 중부에선 매년 봄마다 거대한 포트홀들이 생겨 자동차가 빠지기까지 하곤 한다.
포트홀은 위험하므로 신속하게 보수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 갈라진 길을 수리하는 게 좋을까? 물론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 낮보다 한적한 밤에 공사하는 게 더 안전할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자주 사용되는 것은 망가지기 마련이고, 그대로 뒀다간 문제가 점점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사용되고 있는 무언가를 고친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보수와 수리는 가능한 사용량이 줄어드는 밤에 진행하는 게 좋다.
최근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뇌도 비슷한 방법으로 망가진 세포들을 수리한다는 결과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뇌는 신경세포 10¹¹개와 10¹� 정도의 연결성들을 통해 정보를 처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때 정보는 신경세포의 '꼬리' 부분에 있는 축색돌기(axon)를 타고 전달된다. 축색돌기는 뇌의 전선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다. 전선에 절연 장치가 필요하듯, 뇌 안에서는 올리고덴드로사이트(oligodendrocyte)라고 부르는 특성 세포들이 축색돌기를 돌돌 감아 절연시켜준다. 쉴 새 없이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축색돌기는 손상되기에, 새로운 올리고덴드로사이트들을 통해 보수해야 한다.
위스콘신 대학의 시렐리(Chiara Cirelli) 교수팀은 최근 생쥐 실험을 통해 새로운 올리고덴드로사이트들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들이 잠자는 동안 더욱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거꾸로 오래 잠을 못 잔 쥐의 뇌에서는 신경세포들의 스트레스 현상과 죽음과 연관된 유전자들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신경세포의 축색돌기를 말고 있는 올리고덴드로 사이트.
물론 아직 많은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시렐리 교수팀의 결과는 우리가 꼭 자야 하는 이유를 아는 데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다. 천문학적인 양의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뇌는 손상될 확률이 높다. 손상된 신경세포들을 재빨리 수리하지 않으면 정보가 왜곡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하루 이틀만 제대로 안 자도 기억력이 떨어지고, 1주일 이상 자지 못하면 정신분열증과 비슷한 환각상태에 빠질 수 있다. 세포들 간 망가진 축색돌기를 수리하기 위해선 새로운 올리고덴드로사이트들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신경세포들이 쉴 새 없이 사용되는 낮보다는 밤에 망가진 세포들을 수리하는 게 더 안전하다.
아니, 거꾸로 이런 가설을 해볼 수 있겠다. 망가진 세포들을 수리하기 위해선 뇌를 잠시 '꺼놓아야'하기에 잠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고. 결국 뇌는 자는 동안에 수리된다기보다, 뇌를 수리하기 위해 수면이라는 그 자체가 만들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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