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의 인턴생활 기록 ②
밤낮 없는 새끼 돌보기, '비둘기 아빠' 별명 얻어
짬짬이 해부학 공부 재미 쏠쏠…영어 배울 이유 분명해져
» 새끼 때부터 키워 나중에 야생에 돌려보낸 멧비둘기 한 마리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필자.
센터가 바빠지는 가장 큰 이유가 새끼동물 관리 때문이다. 새끼동물들은 스스로 먹이를 먹기 전까지는 직접 먹이를 줘야 하고 매시간마다 체중관리와 몸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주로 5월 말부터 6월 말 사이에 새끼들이 엄청나게 센터로 들어오는데, 이때가 가장 바쁘고 복잡하다. 새끼에게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굉장히 주의해야 하고 먹이도 이유식 등을 준비해 놓아야 한다.
내가 있는 동안은 담비, 멧비둘기, 황조롱이, 고라니, 너구리 등의 새끼가 많았고 그 중에서도 멧비둘기와 너구리 새끼들을 많이 돌보았다. 한번은 담비 새끼 1마리가 들어왔는데 새벽에도 교대로 이유식을 주고 했지만 결국 기도에 물이 차 폐렴으로 죽고 말았다. 모두 공들여 고생했는데 아쉽게도 죽어버려서 모두 안타까워했다.
멧비둘기는 3마리가 들어왔는데 2마리는 치료를 마치고 방생하였고 한 마리는 계류장에 남아 있었다. 내가 처음 대해보는 새끼여서 더욱 열심히 키웠는데 먹이도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주다가 몸 상태를 보고 야외 장으로 이동시켰다. 내가 비둘기를 잘 키웠는지 센터 분들이 나에게 ‘비둘기 아빠’라고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 너구리 새끼. 귀엽지만 돌보는 건 지치는 일이다.
너구리들은 5월 말에 6남매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밥도 안 먹고 고집을 피웠지만 강제로라도 먹이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3시간마다 분유를 주었다. 새벽에도 교대로 일어나 밥을 주었다. 나는 센터에서 머물었기 때문에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밥을 줘야 했다.
처음에는 그저 너구리들이 귀엽기만 했는데 며칠이 지나고 나니 무서울 정도로 지쳤다. 다행히 너구리들은 별 탈 없이 무사히 자라 스스로 먹이를 먹을 정도까지 되었다.
고라니는 내가 있는 마지막 주에 들어왔다. 고라니 새끼는 3마리가 들어왔는데 정말 조그맣고 귀여웠는데, 성격은 정말 포악하기 그지없었다. 그 조그마한 몸으로 먹기 싫다고 발버둥치는 고라니는 맹수 같았다. 하지만 고라니들은 너구리와 달리 잘 먹다가도 갑자기 이유없이 죽기도 해 키우기가 힘들다고 한다.
너구리는 센터에 있는 암컷 너구리가 보모 역할을 해주어 잘 크지만 고라니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혼자서 살아남아야 하고 워낙 예민해 키우기도 더 힘들다. 하지만 새끼부터 키워서 방생을 하면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하다.
» 고라니 새끼. 생긴 모습과는 달리 성격은 다루기 만만치 않다.
먹이 먹이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배변을 시킨다. 무게를 잰 뒤 우유를 먹인다. 무게가 일정 수준까지 늘 때까지 참고 또 참으면서 계속 먹인다. 무게를 체크하고 재운다.
위에 언급한 일들은 센터에서 중점적으로 하는 일들이고 그밖에 주로 시설관리와 골격차트를 정리하는 일을 했다. 김영준 선임수의관이 주로 밖에서 시설을 고치거나 무언가를 만드는데, 내가 목공을 배웠다고 하니까 굉장히 좋아하셨다. 그래서 센터에서 뭐를 만들거나 공구를 써야할 때면 언제나 나를 불러서 같이 했다.
워낙에 다양한 공구들도 많고 밖에서 할 일이 많아서 함께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센터에서는 동물 관련 일뿐 아니라 이처럼 토목과 공구 다르는 일, 시설 설비 관련 일이 많아 다른 데서는 배우지 못할 것들을 많이 배웠다. 수도설비, 학교에서는 써보지 못했던 공구들, 예초기 등등….
수의사들이 워낙 바쁘시니 밖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보수해야 할 것들은 내가 직접 고치는 정도까지 익숙해졌다. 다만 조심성이 없어서 잔소리를 많이 듣기는 했지만 언제나 물어보고 호기심을 가졌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목공으로는 새집과 너구리 집을 만들었고 그 외에도 수납장 등 다양한 것들을 같이 만들었다.
» 새의 뼈 구조. 영어 단어를 찾아가면서 하나씩 공부하는 맛이 쏠쏠했다.
그리고 센터에 있는 새들의 골격차트를 작성하는 일을 하였다. 센터에서 진료를 본 모든 동물은 ‘인투 와일드’라는 프로그램에 기록이 된다. 하지만 골절이 있었다고 기록만 되어 있어 그 기록들을 수정하여 그림차트에 등록을 시켜야 한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동물의 뼈 구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김영준 수의관이 하고 싶으면 직접 찾아서 공부하라고 하여 직접 인터넷을 통해 뼈 사진을 찾아서 번역해 공부를 하였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공부를 할수록 재미가 있고 나아지는 걸 느끼니까 더 재미가 있었다.
마지막에는 기본적인 뼈의 이름을 다 외울 정도가 되었고 골격차트도 2012년도와 2013년도 것은 완성시켰다. 어떻게 보면 내가 거기선 한 주요한 과제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하였다.
» 새의 엑스선 사진. 차트 정리도 큰 과제의 하나였다.
마지막으로 자원봉사자들이 센터에 오면 일하는 것을 도와드리고 센터를 소개했다. 김영준 선생이 말하길 자원봉사자가 자원봉사자를 가르치고 도와주는 게 센터의 이상 가운데 하나라고 하셨다. 나는 거기에 상주하다 보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보다 일 배우는 속도가 빨랐고 그 덕분에 다른 봉사자가 오면 직접 센터를 소개하고 이것저것 일을 주고 도와드렸다.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줘야 하니 배우는 걸 소홀히 할 수 없다.
특히 주말에는 자원봉사자가 많이 오는데 미리 할 일을 기억해 두었다가 일을 배분하고 웬만한 질문에는 다 대답을 해 주니까 아주 뿌듯했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배우는 것은 쉬워도 내가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가르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스스로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센터 내 사무실에 있는 당직실에서 먹고 잤다. 밥은 주로 직원들과 함께 먹었다. 저녁은 일이 워낙 늦게 끝나고 밥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서 직원들과 같이 먹었지만 직원들이 일찍 들어가실 때는 혼자서 고독하게 밥을 해먹었다.
나는 출퇴근이 아니라 센터 안에 살다 보니까 밤늦게도 다른 일들에 참여할 수 있었고 새끼들이 들어올 때는 내가 새벽에 일어나 밥을 주었다. 근무는 보통 5일을 했으며 간혹 집에 가야 할 때는 금요일에 일찍 가기도 하고 반대로 집에 가고 싶지 않을 때는 주말에도 근무를 하였다. 금요일 오전에는 야생 동물학 수업을 들었고 그 이외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사건 사고가 계속하여 벌어졌다.
기본적인 하루 일과는 아침 9시에 출근해 훈련 개체들을 밖으로 내보내 햇빛을 쏘이게 하고 전날 준 먹이 그릇을 모두 빼내면서 동물에게 어떤 이상은 없는지 체크한다. 그리고 청소와 바깥 일을 하다 보면 수의사들의 지원 요청이 온다. 그럼 그때부터는 한 가지 일에 매이지 않고 사방의 일을 다 하게 된다.
» 너구리 새끼 우유 먹이기. 새끼들은 24시간 돌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고 다시 밥을 내보내고 보통 진료를 다 보고 훈련 개체들 먹이를 주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새끼 동물들이 있을 때는 일이 끝나도 밥을 먹여야 하지만 보통은 이렇게 하루 일과가 끝난다. 간혹 구조 요청이 일이 끝난 뒤 들어오기도 한다.
매주 수요일에는 전체 동물들의 무게를 재고 대신 금식을 한다. 먹이 준비를 위해 야채를 다지거나 물고기를 분류하고 센터 주변에서 벤 신선한 풀을 지급한다. 먹이로 쓰는 병아리가 다 떨어지면 산 병아리를 1만 마리 구입해 안락사시킨 뒤 냉동해 보관한다.
이게 내가 센터에서 했던 기본적인 일들이다. 전반적으로 청소와 허드렛일을 주로 하였지만 처음에는 시키는 일 위주로 하였고 2달째가 되면서는 스스로 일을 찾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문제점들이 보이면 여쭤보고 먼저 치우고 고치려 노력하고 특히 청소와 위생, 청결 문제에 대해서 많이 일을 한 것 같다.
원래 성격도 그렇기는 했지만 수의사 인력도 부족하고 바쁘다 보니 청소 등을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점에서 정말 열심히 한 것 같다. 교육 홍보 쪽으로도 많이 도와드렸고 자원 봉사자에게 바쁜 수의사 대신 일을 시키고 얘기해 주었다. 손님이 오시거나 견학을 오면 옆에서 사진을 찍고 일을 도와드리면서 보조를 했다.
» 자원봉사자들이 우리 수선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수술을 직접 하지는 못했지만 사진을 찍거나 옆에서 간단히 도와드렸고 가끔 새의 심박수를 재기도 하였다. 꿈이 수의사이다 보니 수술이 잡혀 있으면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내고 수술을 보려고 많이 노력했고 실제로 피도 뽑아보고 옆에 붙어있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 그곳을 가기 전에는 무척 떨렸다. 여태껏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러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처음 한 일은 청소 등 잡다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살아있는 동물을 다루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지루하고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센터에 대한 지식이 늘고 스스로 발전하는 것을 보면서 매우 뿌듯하고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다. 중간 중간 가는 출장도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가서 배우는 것도 좋았지만 궁금해 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같이 얘기를 나누고 아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고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을 들으면서 형들과 같이 새벽 3~4시까지 같이 공부하고 시험을 보기도 하고 일이 끝나면 밤마다 책을 읽거나 센터에 있는 새들에 관해서 공부를 했다. 배움의 즐거움을 알고 스스로 발전하고 변화하는 모습이 인턴십 동안 또렷하게 보였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인턴을 하면서 우리 학교의 철학, 대안적인 삶 등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해보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 것을 느낄 환경이나 시간이 없었고, 센터에서 하는 일은 대안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아직 제대로 못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개들을 키우면서 유기견 보호소를 보고 매일 봉사하면서 세상에는 개가 전부이고 유기견들만이 불쌍하다고 느끼며 살아왔다. 그렇게 고정되고 제한된 시선 속에서 생각하고 바라보기만 하였다. 하지만 인턴 생활을 하면서 다시금 나를 되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었고 나아가 내 꿈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수의사가 되어 당연히 동물병원이나 뜻이 있다면 동물 보호소 같은 곳에서 일하겠지만, 이곳 생활에서 동물을 좋아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수의사라고 해도 가축이나 소동물이 아닌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아직도 고민하고 있고 내가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와닿고 이렇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경험은 학창 생활 6년 동안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졸업하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이번 인턴 생활이 해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은 바르게 고쳐주었다. 일단 해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읽고 싶은 자료와 책들이 넘쳐났지만 수의학 관련 책은 90% 이상이 영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수의사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영어라고 했다.
이루고 싶은 꿈을 이번 인턴을 통해 한번 더 다지게 되었고, 그 꿈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내가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남에게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인턴으로 보낸 석 달은 정말 행복했다.
▶관련기사 : 수의사 지망생의 인턴기, "죽음을 너무 봤어요"
정지훈/ 제천간디학교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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