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오늘은 조선시대 제 10 대 임금 연산군의 궁녀들 대동하고 즐겼을 질펀했던 봄나들이 연회장소 세검정 뒤편 탕춘대~~들러봅니다..핑크빛 암반 물길 위 탕춘대 < 蕩春臺 >~~궁녀들의 춤과 풍악소리 연산군의 호탕한 웃음소리 다 사라져갔지만요..그래도 한시절 한때는 ~~겸재 정선님의 옛그림 세검정 왼편으로 정자 바로뒤편 삐죽이 솟은 바위가 봄을 즐긴다는 탕춘대터입니다..
세검정 물줄기 양편으로 사람 사는 민가 한채 없는 이렇게 한적한곳이었는데 ~~정자에 두사람 보여지고 타고온 두마리 말과 마부 한사람도 보여지구요..겸재님의 이시절이 너무나 그리워져 옵니다..자하문 밖 최고의 경치를 자랑했던 이곳 겸재님보다 훨씬 더 수백년전 연산임금 시절엔 더더욱 멋진 풍경 상상이 절로 가네요..
탕춘대터에는 이렇게 옛흔적만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탕춘대터..큰돌을 움푹 파서 만든 돌 욕조에서 궁녀들과 질펀하게 목욕을 즐기고 바위에 돌구멍을 내어 돌 주전자 만들어 술 가득 담아 두고서 봄날 한시절 술마시고 취하고 ..에고고~~~
햐~아~이렇게도 정겨운 옛풍경 탕춘대와 세검정 주변이란말인가 ?? 냇물에 빨래하는 여인들 빨래 방망이질 수다소리 들려오는듯하고
말고삐 부여잡고 선비를 태운 몇사람 일행은 이제 금방 곧 세검정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게 되겠네요..비밀스러운 극비 모종의 음모를 꾸밀
계략인지는 알수없지만요..왼편으로 세검정 정자 뒤편에 탕춘대 < 蕩春臺 > 글씨가 선명하고 오른편 뒤로 백악산 지금의 북악산과 성곽 뚜렷하며 아래로는 겨우 민가 한채 보여집니다..
탕춘대터라고 알리는 표지석이 있고 그 표지석 옆으로 넓은 자동차 달리는 큰길이 나 있지요..구기터널로 불광동 방면 북악터널 지나 정릉 방면으로 말이지요..세검정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세검정을 둘러싼 비봉 문수봉 보현봉 북악산 인왕산 맑은 물줄기가 모인 홍제천이 이루어 낸 빼어난 경치는 가히 무릉도원이라 할수 있네요..
조선왕조가 한양에 수도를 옮겨오고부터 세검정터는 풍류객들이 빈번히 오고가고 발길 끊어지지 않았답니다.. 연산군은 즉위 12년 1506년 이 일대를 놀이터로 만들었는데 이름하여 탕춘대터.. 세검정 물길 바로 위 탕춘대터에 이궁을 짓고 돌을 파서 만든 욕조에서 목욕을 예쁜 궁녀들과 함께 하였으니 음란한 연산군의 또다른 한부분을 보게 되네요..탕춘이라함은 봄을 즐긴다는것인데...에고고
오~~이런 이런 ~~어쩜 ~~이렇게~~놀라울수가~~1900 년경 불과 100 여년전만해도 이러하였거늘 ~~옛모습 옛풍경 많이도 사라져 가버렸네요..지금의 세검정 정자와는 많이 틀리는데요..복원이 아마도 잘못된듯 보여집니다..정자 뒤편으로 자동차 한대 지나지 않고 탕춘대터에는 삐죽이 크게 솟구쳐 보이는 집한채 없는 바위만이 자리하고 있구요..돌아갈수 없는 아련한 지난날이여~~아아~~옛님들이시여 ~~
바로위 옛사진과 자꾸만 비교해 보게되는데요 ~~ 2013 년 지금 우리 살아가는 이시대 풍경이랑요.. 시멘트 건조물 보여지고 고급 주택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많이 씁쓸해지는 마음이랍니다..옛날이 그리워 나 이렇게 찿아왔건마는 ~~
돌은 옛돌 그대로인데 물은 옛물이 아니라네..산도 옛산이 아니로되 물길만이 변함이없네~~ 흐르는 물이 왜이리 차가운지 한참을 서 있을수가 없었네요.....물 흘러가는 소리가 요란하여 옆에서 누가 뭐라해도 잘 못알아듣겠어요 ..
이곳 세검정 핑크색 화강암 정자에서 물 흐르는 아래로 내려서서 그옛날 많은 시인 묵객들 그리고 장수들의 피묻은 칼을 씻었던 그 장소...삼국시대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꽃놀이 즐기며 시읊기 대회에 연산군처럼 질펀하게는 아니더라도 흐르는 냇물에 목욕하고~~
그옛날 아득히 먼 그옛날 이곳 탕춘대에서 연산군의 질펀한 연회 모습 상상 해 보시기 바랍니다..연산군의 즐거운 한때도 이제는 아주 먼 옛날의 저편에 사라지고 없지만 흔적은 아직 여기 남아있네요..
안동 하회마을 들녘을 빙 돌아 흐르는것처럼 여기도 탕춘대를 빙 돌아 흐르는데 다만 핑크색 암반 위를 빠른 속도로 요란한 물 흘러가는 소리가 정말 대단하다는것이 다른점이라 할수 있겠네요..물길 좌우로 시멘트 옹벽없다면 아마 집한채도 도로도 없이 물길에 모두 쓸려 떠내려 가고말았겠지요..
탕자라 소문난 그대 흔적 뒤쫓아 조용히 여기 들르니 // 수백명 궁녀 대동하고 세검정 핑크색 바위 물길위 탕춘대 // 나 잊지 못하네 그대 거기 있고 나 여기 있네 // 북한산 고봉들 병풍두른듯하고 북악과 인왕의 흰구름 낮게 깔리니 // 이름모를 들꽃 들풀 나무와 돌들 그대앞에 자리하네 // 그대 노래소리 풍악소리 원한 가득 그대의 독기 // 무심한 홍제천 물 흐르는 소리 그대 속마음 어이 알려오...
연산군의 흥겨웠던 그옛날 수없이 많이 베풀어졌을 궁녀들의 춤과 풍악소리 흩어져간곳~~핑크색 암반위로 동그란 자국들은 움푹 판 이동식 돌 욕조가 놓여졌을것이고 무지개 구름 다리가 곁에 만들어졌을테구요..여운이 묘해져 오는 이곳이네요..
탕춘대를 굽이 돌아 흘러 내려가는 물길 핑크빛 암반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서울에서 이런 물구경을 다하다니요..기껏 서울 사람들
물구경 그러면 한강의 놓여진 다리 위라든가 잠수교 한강 물줄기나 중랑천 양재천 청계천 등등 상상하겠지만요..그런 물줄기와는 차원이 확 다른 고차원 물구경 이곳이 아닐런지요 ??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의 느낌 그해 그 여름날 물구경 어디 한번 감상해 보실까요 ?? 강진 유배시절 전 30 대 젊은 청춘 정약용님의 물구경 읽어볼께요..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에 폭포를 볼 때뿐이다.. 그러나 막 비가 내릴 때는 사람들이 옷을 적셔 가며 말에 안장을 얹고 성문 밖으로 나서기를 내켜하지 않고 비가 개고 나면 산골 물도 금세 수그러들고 만다.. 이 때문에 정자가 저편 푸른 숲 사이에 있는데도 성중(城中)의 사대부 중에 능히 이 정자의 빼어난 풍광을 다 맛본 자가 드물다.. 신해년<1791 년 > 여름 일이다.. 나는 한혜보등 여러 사람과 함께 명례방 < 지금의 서울 명동 >집에서 조그만 모임을 가졌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무더위가 찌는 듯하였다.. 먹장구름이 갑자기 사방에서 일어나더니 빈 우레 소리가 은은히 울리는 것이었다..내가 술병을 걷어치우고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이건 폭우가 쏟아질 조짐일세.. 자네들 어찌 세검정에 가보지 않으려나? 만약 내켜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벌주 열 병을 한 차례 갖추어 내도록 하세.. 모두들 이렇게 말했다.. 여부가 있겠나 ~~마침내 말을 재촉하여 창의문을 나섰다.. 비가 벌써 몇 방울 떨어지는데 주먹만큼 컸다.. 서둘러 내달려 정자 아래 수문에 이르렀다.. 양편 산골짝 사이에서는 이미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듯하였다.. 옷자락이 얼룩덜룩했다.. 정자에 올라 자리를 벌여놓고 앉았다.. 난간 앞의 나무는 이미 뒤집힐 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상쾌한 기운이 뼈에 스미는 것만 같았다..
이때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 산골 물이 사납게 들이닥치더니 순식간에 골짜기를 메워버렸다.. 물결은 사납게 출렁이며 세차게 흘러갔다.. 모래가 일어나고 돌멩이가 구르면서 콸콸 쏟아져 렸다.. 물줄기가 정자의 주춧돌을 할퀴는데 기세가 웅장하고 소리는 사납기 그지 없었다.. 난간이 온통 진동하니 겁이 나서 안심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말했다.. 자 ~~어떤가 ~~모두들 말했다 ~~여부가 있나 ~~
술과 안주를 내 오라 명하여 돌아가며 웃고 떠들었다.. 잠시 후 비는 그치고 구름이 걷혔다.. 산골 물도 잦아들었다.. 석양이 나무 사이에 비치자 물상들이 온통 자줏빛과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서로 더불어 베개 베고 기대 시를 읊조리며 누웠다.. 조금 있으려니까 심화오가 이 소식을 듣고 뒤쫓아 정자에 이르렀는데 물은 이미 잔잔해져버렸다.. 처음에 화오는 청했는데도 오지 않았던 터였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골리며 조롱하다가 더불어 한 순배 더 마시고 돌아왔다.. 같이 갔던 친구들은 홍약여와 이휘조 윤무구등이다..
햐~아 ~~옛님들하고의 소통 ~~아아 ~~이 느낌 이 감정 이렇게 마음 깊숙이 다가올줄이야 ~~이왕이면 서울에
집중호우 막 쏟아질적에 언젠가 다시한번 정말 많은 비 내려 물 수량 엄청날적에 세검정 아스팔트 도로와 홍지문이 폭우로 갑자기 늘어나 잠길쯤 다시와서 사진 담아 보려합니다..좀더 큰 감흥이 있을테지요 ..
평창동과 구기동을 흘러 내려온 두 물줄기가 하나로 만나 이렇게 흘러 내려가고 있네요..사진 우측이 탕춘대가 있는 산이었으며
왼편이 지금의 종로구 신영동으로 저기 물줄기 뒤편 붉은색 벽돌로 잘 지어진 고급 주택 저곳에 그옛날 연산군이 수각을 세웠고 석경루라는
아주 예쁜 정자도 있었었는데 지금은 모두다 사라지고 없네요..
탕춘대에서 내려오는 무지개 다리 물길 건너 석경루에서 또한차례 거나한 2 차 3 차 술잔치 ~~꿈이요 헛것이요 다 부질없는 가버린 한시절 옛풍경 느낌으로만 남아있네요..
탕춘대를 한바퀴 돌아봅니다..왼편으로 바위벽이 탕춘대 절벽 바위이고 우측으로 넓은 아스팔트 도로 북악터널과 구기터널로 가는 도로입니다..
탕춘대를 거닐면서 문득 이런생각이 듭니다..역사를 배워오면서 연산군은 정말 폭군이며 탕아이며 파렴치하고 살인광이었을까 ?
다소 과장되었거나 부풀려지진 않았을까 ?? 처음에는 성군 스타일이었다가 점차 카리스마 미쳐 날뛰는 대체 그의 속마음 그때 그 한시절~~
좀더 알아봐야겠어요 .. 그가 남겨둔 시가 그렇게도 많이 불태워젔슴에도 용케도 130 여편의 시가 남아있고 시를 읽어보면 술꾼 폭군 살인마와는 거리가 먼 너무나 어울리지 않기때문이지요..
연산군~~연산 임금에서 군으로 강등되고 귀양 가고 사약 받아 죽고 부인과 아들 딸 모두 불귀의 객이 되고 ~~그가 남긴 시는 이렇게도
감성적이건마는 ~~시를 감상하면서 걸어가고 서성이며 이러고 있는 나 참 알수없네요..
동산에 가득한 봄빛은 햇빛이 찬란한데 // 꽃바람이 새로 단장한 옷자락을 나부끼고 //
짙은 녹색 연분홍 화려하기도 하네 // 그 누가 청광을 위해 이슬향기 가져왔나
대궐 안에서 꽃과 달의 시구를 누가 가르쳤던가 // 두고 읊으매 생각이 간절하여 정분만 더하네 //
다시 보매 밝은 햇살이 도리를 감쌌구나 // 내가 바로 삼한 제일의 호걸임을 문득 알았네
국가에 소홀하고 군왕을 속인 죄를 어찌 용서할까 // 몸을 아끼고 명예를 구함은 간흉들의 짓이로다 //
누가 능히 단심의 정성을 가져다 바쳐 // 큰 은혜 갚으며 태평세월 즐기게 하려는가
고요한 밤 대궐 뜰 오동잎에 비소리만 싸늘한데 // 귀뚜라미 귀뚤귀뚤 이내 수심 일으키네 //
한가로이 거문고에 새 곡조를 올려보니 // 한없는 가을 시름 흥과 함께 굴러가네
주름진 얼굴 구부러진 허리에 쑥대머리를 홑뜨리고 // 찬마루에 구부려 자며 옛날 놀던 일 생각하네 //
남들이 비웃으며 주렴 제치고 보는 줄 알지 못하고 // 누가 짐의 호기 당하리 웃음 치며 과시하네
푸른 이슬은 밤에 맺혀 비단치마 적시고 // 가을바람은 소슬하여 앳된 간장을 녹이누나 //
난간에 기대 기러기 소리 들으니 달빛은 차갑고 // 눈물 가득한 눈시울엔 슬픈 마음 메어지네
태평한 때 가을 관광 꺼리지 마오 // 국화 떨기 금빛 품고 향기 아직 안 토했네 //
푸른 술 향기로워 궁온에 띄우니 // 서리 내린 후 온 가지가 누렇다 할 것 없네 //
조야가 편안하여 태평한 이때 // 잔치를 허했으니 취할 만하오 //
언제나 용렬한 짐 덕이 없어 부끄러운데 // 오늘은 인재들 많아 되레 즐거워라 //
큰 은혜 깊이 느껴 즐기기를 꺼려 마소 // 낮닭이 한창 조니 해가 어찌 기우랴 //
대궐 술 다시 받기 사양치 마오 // 호방한 임금 나라 편케 하도록 힘쓰면 되네
연산군의 남겨진 시 상상하면서 탕춘대가 있었던 지금의 월드케슬 주택으로 올라가봅니다..조금이나마 그의 느낌 좀더 가까이 음미해보려구요..몇편의 시 좀 더 감상해 보실까요 ?
풍속이 바뀌고 고쳐져 참으로 밝은 때로세 // 봄빛이 화창해 감싼 경치가 기이하구나 //
이로부터 태평세월 조야가 엄숙하니 // 술 옆에 차고 꽃가지 꺾음이 제일 좋으리
비단 소매엔 향기가 없고 거울엔 먼지 끼니 // 한 가지의 꽂이 여위어 봄 모양이 아니네 //
십 년 동안 군왕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니 // 비로소 아름다움으로 잘못 살았음을 알겠노라
들국화 시들었는데 집국화는 난만하고 // 붉은 매화 떨어지자 흰 매화 한창이네 //
사물을 감상하며 하늘 이치 안다지만 // 임금의 도는 우선 화목한 정치에 있네
어제 효사묘로 나아가 어머님을 뵙고 // 술잔 올리며 눈물로 자리를 흠뻑 적셨네 //
간절한 정회는 그 끝이 없건만 // 영령도 응당 이 정성을 돌보시리
비 개고 구름 걷혀 밤 기운이 맑으니 // 달 밝은 윤각에 꿈 이루기 어렵구나 //
해마다 좋은 때를 구경할 수 없으니 // 어옹의 한 평생 지남만도 못 하네
대궐 안 찌는 듯 더워 흐르는 땀 장물 같고 // 불같은 해 타는 구름에 낮이 더욱 지겹구나 //
향기로운 한잔 술 마실 수가 있으니 // 오히려 더운 곳이 서늘해지네
서울에 봄바람 부니 때는 삼짇날 // 새 날고 고기 노니 온갖 꽃 향기롭네 //
난정놀이를 뉘라서 좋다 하는가 // 은대에서 어사주로 취함만 못 하리
이슬에 젖은 붉은 꽃이 푸른 잎 속에 짙고 // 누각에 향기 풍겨 훈풍에 취하네 //
구경만 하라고 은대에 내리는 것이 아니라 // 적적할 때 보고 천지조화를 생각하라는 뜻이지
어진 정승들이여 길은 멀고 땅은 미끄러워 다니기 어려운데 //
충성심 가시지 않아 대궐에 나왔구려 비노니 어진 정승들이여 //
나의 잘못을 살펴주고 복령과 대춘처럼 오래오래 사시오
동산에 옮겨 심은 복숭아나무 만나지 못한 한 얼마더냐 // 남몰래 고운 얼굴 아끼며 부질없이 정 보내네 //
이 몸 죽어 예쁜 나비 되고자 하나 구중 궁궐 앉을 가지 없을까 의아하네
아름다운 나무가 꽃을 토하니 붉은 것이 비를 겪고 // 주렴에 버들개지 날아드니 흰 꽃이 바람에 놀래네 //
누른 빛에 새벽 빛이 겹쳐 푸른 빛 버들에 퍼지는데 // 분이 청천에서 떨어져 눈이 소나무에 덮였네
여러 나무 골라 심어 맑은 향기 가득하이 // 동군의 힘 빌었더니 한결 수월하구나 //
부지런히 가꾸니 이슬이 꽃술에 맺히고 // 자주 돌보매 바람이 연한 가지에 부누나 //
나비가 꽃 피기를 재촉하니 향기가 무르녹고 // 벌이 예쁨을 희롱하니 아리따움이 깔려 있네 //
태평을 이미 얻은 순연한 지역이니 // 화창함에 길이 기대 현훈을 잔치하리
남겨진 시가 어쩌면 이리도 아름답고 따스하며 다정하고 고우며 인정미 훈훈한~~ 폭군 연산이라고는 너무나 생소하고 어울리지 않는데~~어쩌다가 그만 그지경으로 나락에 굴러 떨어져 망해갔는지 ~~에고고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하느님 아버지시여 ~~에고고 ~~
탕춘대 언덕이 있었던곳 월드케슬 주택에서 내려다 본 물줄기는 오늘도 말없이 흘러가고만 있었습니다..
무심하여라 ~~
물가에 내려가 손과 발을 담가봅니다..그옛날 옛님들께서 그랬던것처럼요..
흘러가는 한조각 뜬구름 ~~권력무상 모든게 헛되고 헛된것을~~
이 피 묻은 한삼 치마 저고리가 저의 어머니 피란 말씀이지요 ?? 외할머니~~흑흑흑~~이놈들 어디~~네 이놈들을 요절 내고 말테다~~ 친어머니의 피 묻은 저고리를 본 연산군은 눈이 뒤집혀 버리는듯~~흥분할데로 흥분해서 결국 일을 내고 말았으니~~
탕춘대를 빙 돌아 오늘도 무심히 흘러 내려가는 핑크빛 암반 물결 물길은 앞으로도 영원히 흘러갈테지요..
연산 임금과 궁녀들이 물장구 치며 놀았던 탕춘대 아래 핑크색 암반 물길도 영원할듯 보여졌습니다 ~~들녘에서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