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6. 26
2000년께 부산 영도에서 화물과 함께 유입, 연간 10~20㎞ 북상 중
꿀벌이 주식, 도심에도 잘 적응해 사람에게도 피해…아열대산이지만 기후변화로 급속 확산
» 동남아에서 유입된 꿀벌 전문 포식자 등검은말벌의 둥지 모습. 사진=국립생물자원관
꿀과 꽃가루를 잔뜩 딴 꿀벌이 의기양양하게 돌아와 벌통에 내려앉는 순간 낯선 검은 말벌이 덤벼든다. 강력한 침을 맞고 즉사한 꿀벌을 들고 가까운 나뭇가지로 간 이 검은 말벌은 꿀벌의 날개와 배, 머리를 떼어낸 다음 가슴의 등판 껍질까지 제거한다. 남은 단백질이 풍부한 가슴살 덩이를 물고 말벌은 1200마리의 일벌이 돌보고 있는 굶주린 애벌레에게 날아간다.
현재 영남 지방 양봉가에서 매일처럼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최근 양봉업계에 비상이 걸리게 한 이 외래 침입종이 바로 등검은말벌이다.
등검은말벌은 중국 남부와 베트남, 인도 등 동남아의 아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길이 2~3㎝의 말벌이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다른 말벌과 달리 가슴등판 모두와 머리 뒷 가장자리가 검은빛이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 등검은말벌의 모습. 사진=디디에 데쿠앙 ,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말벌은 최문보 영남대 박사가 2003년 부산 영도에서 발견했다. 처음 부산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출몰하던 이 말벌은 2008년에는 마산, 경주, 청도, 함안, 경산 등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2011년엔 울진, 청송, 안동, 영주, 의성, 상주, 영양 등으로 번졌다. 2012년 현재 서쪽으론 지리산, 북쪽으로는 강원도 삼척까지 검은등말벌이 퍼져 있다.
이 말벌의 피해가 처음 나타난 곳은 양봉 농가였다. 정철의 안동대 교수가 <한국양봉학회지>에 지난해 발표한 논문을 보면, 양봉 꿀벌 10개 봉군이 등검은말벌의 공격을 받아 폐사하는 데는 1주일 정도 걸리며, 2~3주면 50개 봉군이 결딴난다. 정 교수 등은 2008년 새로운 꿀벌 해충으로 이 말벌의 이름을 지어 <한국양봉학회지>에 보고했다.
문제는 이 말벌로 인한 피해가 양봉 농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등검은말벌은 도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종이어서 이들의 개체수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도시 시민들에게도 피해가 미치고 있다. 2010년 부산 금정구에서 말벌 피해 신고를 받아 119구조대가 출동한 횟수의 41%가 등검은말벌 때문이었다.
이 말벌은 개별적으로 공격성은 높지 않지만, 일단 둥지가 위협받는다고 판단하면 떼지어 사람을 공격하며 끈질기게 추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주의하거나 의도하지 않게 벌통을 건드리다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 119구조대가 주택에 지은 등검은말벌 둥지를 파괴하고 있다. 사진=국립생물자원관
이 말벌은 특히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개체수가 늘어 들어온 지 7년 만에 경남 지역에서는 모든 말벌 가운데 가장 수가 많은 종이 됐다. 국내에는 9종의 토착 말벌이 서식하는데, 털보말벌 등 5종은 이로 인해 개체수가 줄어 생태적 교란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등검은말벌이 2000년대 초반 부산 영도 항구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입 경로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프랑스의 사례이다.
프랑스에는 2004년 중국에서 수입한 분재용 화분에서 월동하던 등검은말벌 여왕벌이 번식을 한 뒤 6년여 만에 프랑스 남부에서 파리까지 확산했고 2010년엔 이웃 스페인과 포르투갈로까지 번져나갔다. 프랑스에선 2009년 보르도에서만 꿀벌 벌통 수천개가 파괴되는 등 심각한 피해가 보고되고 있다.
» 등검은말벌의 국내 분포도. 부산이 가장 높고 옅은 곳은 새로 확산해 나가는 지역을 가리킨다. 그림=국립생물자원관
정철의 교수는 등검은말벌의 위험을 평가한 <한국양봉학회지>의 다른 논문에서 프랑스 연구팀과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과 프랑스의 등검은말벌은 유전적으로 모두 중국 저장성의 개체와 가깝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저장성은 상하이를 통해 해외무역을 하는데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등검은말벌은 저장성에서 상하이를 거쳐 들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미 지역적으로 토착 말벌 세력을 넘어서고 있는 등검은말벌의 빠른 확산은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최근 이 말벌에 대한 연구사업을 한 결과 “처음 등검은말벌이 부산에서 발견됐을 때 우연히 유입된 것으로 국내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등검은말벌이 산림지역뿐 아니라 도심지역에서도 급격히 퍼지고 있어 이들의 유입과 확산의 원인이 기후변화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다.”라고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박사는 “내년부터 이 말벌의 방지대책을 위한 본격적인 연구를 해 필요하다면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해 관리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등검은말벌은 연간 10~20㎞의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고 이종욱 영남대 생물학과 교수 등은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곤충학 저널>에 실린 논문을 통해 밝혔다. 정철의 교수는 프랑스에서 이 말벌의 확산속도가 연평균 67㎞에 이른 것은 프랑스에 토착 말벌이 한 종밖에 없어 경쟁이 덜 치열한 것 등이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이 말벌은 하루에 30㎞까지 비행할 수 있고, 최근의 확산 정도에 비추어 “앞으로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등검은말벌의 확산으로 빨간불이 켜진 것은 양봉업계이다. 이 말벌은 꿀벌을 전문적으로 잡아먹는 포식자여서 먹이의 70% 이상이 꿀벌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당 17개의 서양꿀벌 벌통이 있는 등 세계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양봉국가여서 치명적 천적의 확대는 양봉산업에 큰 위험요인이다.
나아가 연간 6조원의 가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꿀벌에 의한 꽃가루받이와 생태계 교란으로 인한 간접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질 우려가 있다.
등검은말벌의 생활사
» 등검은말벌의 짝짓기 모습. 11월 땅위에서 벌어진다. 사진=이종욱 외, <아시아 태평양 곤충학 저널>
땅속이나 낙엽 등에서 겨울을 난 여왕벌은 4~5월 온도가 상승하면 둥지를 짓기 시작한다. 새로 만든 둥지에 8~16개의 알을 낳은 뒤 스스로 먹이를 구하고 알에서 깬 애벌레를 기른다. 새끼가 자라나면 여왕벌은 이런 수고를 일벌에게 넘기고 자신은 산란에만 전념한다. 일벌은 나무의 즙이나 꽃의 꿀을 주로 먹지만 애벌레는 성충이 사냥한 꿀벌을 비롯해 땅벌, 꽃등에, 파리, 호박벌 등 곤충이나 거미를 포식하며 자란다.
벌통은 서양배 비슷하게 생겼으며 높은 나뭇가지나 바위 밑, 도심의 건물 처마, 가로수, 화단 등에 짓는다. 집단은 1000~1200마리로 불어 우리나라 말벌 가운데 가장 큰 규모가 된다. 11~12월이 되면 일벌은 모두 죽고 여왕벌과 새로 자라난 여왕벌은 땅위에서 수컷과 짝짓기를 하고 월동에 들어간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정철의, 마키노 순이치
일본외래 침입해충인 등검은말벌, Vespa velutina nigrithorax Buysson (Hymenoptera: Vespidae)의 예비 위험평가
한국양봉학회지 제27권 제2호 (2012)
정철의
외래 침입 생물, 등검은말벌, Vespa velutina nigrithorax Buysson (Hymenoptera: Vespidae)의 분포지역 확대
한국양봉학회지 제27권 제2호 (2012)
정철의·김동원·이흥식·백 현
신규 꿀벌 해충으로서 Vespa velutina nigrithorax Buysson, 1905 (신칭: 등검은말벌)의 생물학적 특징
한국양봉학회지 제24권 제1호 (2008)
Moon Bo Choi a, Stephen J. Martin b, Jong Wook Lee
Distribution, spread, and impact of the invasive hornet Vespa velutina in South Korea
Journal of Asia-Pacific Entomology 15 (2012) 473?477
doi:10.1016/j.aspen.2011.11.00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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