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남방긴수염고래 지난해 116마리 폐사 등 기록적 사망
갈매기가 고래 등 쪼아 피부와 지방 파먹어…사망 관련 여부 연구 중
» 해안을 나란히 헤엄치는 남방긴수염고래 어미와 새끼가 숨을 쉬로 바다 표면에 올라오자 갈매기가 등에 내려앉아 피부를 쪼아대고 있다. 사진=프랭크 슈펠트
여기저기 혹이 튀어나온 커다란 머리와 눈 위로 활처럼 길게 휘어진 입…, 긴수염고래는 아주 독특하게 생겼다. 게다가 이 고래를 비극적으로 만든 여러 특성을 지녔다.
긴수염고래는 연안을 아주 느리게 헤엄치는 고래다. 작살에 맞으면 바로 가라앉는 다른 고래와 달리 물에 떠오른다. 이런 특성 때문에 긴수염고래는 예로부터 가장 잡기 쉬운 고래로 여겨졌다. 긴수염고래의 영어 명칭인 ‘Right Whale’도 사냥 과정 중에 나온, ‘야, 고래다! The right whales to hunt에서 비롯된 말이다. 대왕고래 못지않은 큰 몸통도 지녀서 고래 한 마리에서 약 1만 6000ℓ의 기름과 길이 2.5m의 고래수염 680㎏이 나온다. 사냥 노력에 비해 산출 효과도 큰 것이다.”(<고래의 노래> 54~55쪽, 남종영 지음/궁리)
당연한 결과로 긴수염고래, 특히 북반구에 사는 북방긴수염고래는 18세기 중반 북반구에서 거의 멸종했다. 포경선들은 남반구로 몰려가 1937년 한 해 동안에만 8만 마리를 잡았다. 전 세계에 약 1만 마리가 남은 이 고래는 현재 멸종위기종으로 국제적 보호를 받고 있다.
» 감염에 의한 혹 등 독특한 모습을 한 긴수염고래. 포경의 첫 희생자였다. 사진=미카엘 카탄자리티, 위키미디어 코먼스
남아메리카 파타고니아의 대서양 쪽 바다에 위치한 발데스 반도는 남방긴수염고래가 새끼를 낳아 기르는 주요한 번식지 가운데 하나이다. 남극해에서 크릴 등을 배불리 먹어 지방층을 늘린 뒤 잔잔하고 외딴 이곳 바다에서 번식을 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곳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해마다 7%의 회복세를 보이던 남방긴수염고래의 사망률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2003년 이래 모두 605마리의 남방긴수염고래가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이 가운데 538마리는 그해 태어난 새끼였다. 지난해에는 113마리의 새끼를 포함해 116마리가 죽는 기록적 사망률을 보였다.
» 올해 태어난 새끼와 헤엄치고 있는 어미 긴수염고래. 새끼가 충분히 자라 남극해로 돌아갈 때까지 먹이를 먹지 못한다. 사진=G. 해리스, 야생동물 보전 협회
마리아노 시로니 아르헨티나 고래보전연구소 박사는 “지난해 태어난 새끼의 3분의 1 가까이 죽은 것이다. 긴수염고래는 평균 아홉 살이 돼야 첫 새끼를 낳는다. 이것은 앞으로 10년쯤 뒤에 새로 태어날 새끼가 급감할 것임을 가리킨다.”라고 국제 야생동물 보호단체인 ‘야생동물 보전 협회’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이 단체와 다른 해양·고래 보전 비정부기구들은 2003년 ‘남방긴수염고래 건강 모니터링 프로그램’에 착수해 남방긴수염고래의 사인규명에 부심하고 있다.
마르셀라 우하르트 프로그램 부대표는 “수백 개의 조직 샘플을 확보해 다양한 감염과 독성물질을 조사했지만 원인을 가려내지 못했다. 하지만 해마다 죽는 고래의 수 등이 예상을 깨뜨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변함없는 사실은 사망 개체의 대다수가 갓난 새끼라는 점이다.”라고 야생동물 보전 협회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과학자들은 영양 결핍, 감염, 생물독성이 유력한 원인일 것으로 보고 있다.
» 새끼와 헤엄치는 어미 고래를 공격하는 갈매기. 벌어진 상처 속에서 지방층을 파먹고 있다. 사진=어스 오션 동영상 캡처
그러나 이런 일반적 원인을 촉발하는 계기가 있을지 모른다. 아직 단정은 하지 못하지만 고래의 사망률 급증과 관련해 현장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현상이 있다. 이 지역에 널리 서식하는 켈프 갈매기가 고래를 공격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갈매기의 고래 공격이 처음 목격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처음엔 그저 갈매기가 고래 피부의 기생충을 떼어먹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갈매기는 고래의 등에 상처를 낸 뒤 피부 조각과 그 속의 지방층을 파먹는 것이었다.
갈매기의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1990년대까지 이런 행동이 점차 퍼졌고 2000년대 이후에는 고래의 피해가 급속히 확대되었다. 갈매기는 주로 갓난 새끼를 데리고 있는 암컷 어미를 노렸다. 숨을 쉬러 물 표면에 올라온 어미나 새끼의 등에 내려앉아 수 ㎝ 깊이의 상처를 내는데, 어떤 때는 그 상처가 지름 50㎝ 크기로 커지기도 한다.
» 남방긴수염고래를 공격하는 습성이 퍼져나가고 있는 켈프 갈매기(라루스 도미니카누스). 사진=곤살로 바스케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몇 시간씩 계속되는 갈매기의 공격에 고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공격을 받으면 고래는 등을 웅크리고 황급히 잠수해 멀리 헤엄쳐 도망친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엔 공격을 회피하려는 새로운 자세가 고래 사이에 퍼지고 있다. 공격을 피하려고 등을 활처럼 휘어 머리와 꼬리만 물밖에 내놓는 이상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고래는 번식기에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새끼가 다 자라면 함께 먹이 터인 남극해로 향한다. 따라서 번식지에서 갈매기에 쫓겨 에너지를 낭비하는 건 매우 큰 타격일 수 있다.
실제로 이들 고래는 시간과 에너지의 3분의 1을 갈매기를 피하는 데 쓰고 있으며, 이에 따라 새끼를 돌보고 다른 고래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암컷 고래는 어른 암컷고래와 어울리면서 새끼를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새끼를 데리고 있는 암컷에 접근하다가는 갈매기의 집중 공격을 받기 때문에 이런 학습 기회를 놓치고 만다.
» 갈매기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는 남방긴수염고래 모자. 사진=존 아트킨슨, 오션 얼라이언스
시로니 박사 등의 현장연구에서 갈매기 공격의 81%가 암컷과 갓난 새끼의 짝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는 이들이 해안에 가까이 헤엄치는데다 느리고 더 자주 물 표면으로 올라오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게다가 새끼의 등은 약해 쉽게 찢어진다.
결국 갈매기의 공격이 직접 고래의 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감염과 돌봄 부족 등이 장기적으로 고래의 건강을 약화시켜 다른 치명적 감염이나 오염 등에 취약하게 만들게 된다.
켈프 갈매기는 원래 이곳 갯벌에서 무척추동물을 주로 먹고 산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도시의 쓰레기 매립장과 수산물 가공공장의 폐기물을 먹으면서 급격하게 개체수가 늘어났다.
이들이 고래를 공격하는 건 다른 먹이가 없어서가 아니다. 고래의 피부와 지방이 지닌 영양학적 가치에 눈 뜬 갈매기가 학습을 통해 늘어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시로니 박사의 연구에서 갈매기의 공격 대부분이 이미 벌어진 상처를 통해 피부보다는 지방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어린 새들도 이런 공격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갈매기의 공격으로 남방긴수염고래 새끼의 등에 잇달아 난 상처(흰 원). 피부를 뚫고 지방층을 파먹은 결과이다. 이 상처는 감염으로 이어지고 어미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진=오션 어스 동영상 캠처
긴수염고래는 이 지역의 고래관광의 주역이다. 해마다 11만여 명의 관광객이 새끼를 데리고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를 구경하러 와 지역 주민에게 4260만 달러의 소득을 안긴다. 갈매기의 끝없는 괴롭힘과 고래의 끔직한 고통을 보려고 온 것이 아니다.
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얻은 주요 결론은 우선 쓰레기를 덜 버리고 잘 관리해 갈매기 개체수를 줄이자는 것이다. 이어 고래를 공격하는 특별한 갈매기가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면 그들을 제거하는 방안도 나왔다. 이 지역 푸에르토 마드린 시는 지난해 실험적으로 갈매기를 사살하는 ‘100일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사람이 버린 쓰레기가 원인인데 애꿎은 갈매기만 죽인다’는 반대에 부닥치기도 했다.
대규모 포경이 끝난 뒤 회복 중인 남방긴수염고래 집단은 다시 위기에 직면했다. 처음엔 작살, 이번엔 쓰레기로.
■ 남방긴수염고래를 공격하는 케프 갈매기 유튜브 동영상(오션 어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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