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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의 역습…호박벌이 박새 둥지 빼앗는다

자운영 추억 2013. 6. 6. 14:46

 

조홍섭 2013. 0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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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와 곤줄박이, '붕붕' 호박벌 날개 소리 들으면 둥지 버리고 혼비백산

서울대 연구진 현지 관찰과 실험으로 확인, 벌과 새의 둥지 경쟁 국내서 첫 확인

bee2.jpg » 박새 둥지 밑에 소형 스피커를 숨기고 죽은 뒤영벌만 보이게 한 실험장치. 붕붕 소리가 나자 알을 품던 박새가 혼비백산 달아났다. 사진=피오트르 야브원스키 외 <행동생태학과 사회생물학>


몸집은 작지만 특히 번식기에 왕성하게 곤충을 잡아먹는 박새에게 벌은 먹이일 뿐이다. 그러나 박새와 마찬가지로 번식을 위해 둥지가 필요한 뒤영벌과 호박벌이 박새의 둥지를 빼앗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피오트르 야브원스키 서울대 행동생태 및 진화연구실 교수 등 연구진은 2010~2011년 동안 서울대 관악산 캠퍼스에 설치한 인공 새둥지 각각 60개와 122개에 대한 현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국내에서 벌과 새가 둥지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bee.jpg » 연구진이 서울대 관악캠퍼스 주변 숲에 설치한 박새류를 위한 인공 새집 위치도.
 

좀뒤영벌과 호박벌은 나무구멍에 둥지를 트는데 단열을 위해 이끼 등을 채운다. 갓 지은 새 둥지는 벌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실제로 연구진은 첫해에 박새와 곤줄박이 둥지의 16%, 이듬해에 9%가 벌들에게 탈취되었음을 확인했다. 박새는 애써 지은 둥지뿐 아니라 알을 품다가도 집을 버리고 떠나기도 했다.
 

연구진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인공 둥지 바닥에 소형 스피커를 숨겨놓고 죽은 뒤영벌만 드러나게 한 실험을 했다. 스피커에서 ‘붕붕’ 소리가 나자 박새 11마리 가운데 9마리는 둥지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둥지 안에서 벌에서 먼 쪽으로 혼비백산 몸을 비키는 행동을 보였다. 새소리를 들려주었을 때와 대조적이었다.
 

또 호박벌을 경험하지 못한 길들인 박새들은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붕붕 소리에 놀라는 것은 자연 속에서 학습된 행동임이 드러났다. 좀뒤영벌과 호박벌은 선명한 무늬와 붕붕거리는 소리로 침이 있음을 경고한다.

tit2.jpg » 박새 둥지 속의 뒤영벌 모습. 이끼가 덮인 새집 속에 벌집이 보인다. 사진=피오트르 야브원스키 외 <행동생태학과 사회생물학>

Alpsdake_623px-Parus_varius_on_nest_box.jpg » 둥지 속 새끼에게 곤충을 나르고 있는 곤줄박이. 박새와 곤줄박이는 벌 등 곤충을 잡아먹지만 벌에게 둥지를 빼앗기기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알프스다케,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에 참여한 이상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호박벌이 붕붕거리는 소리는 사람도 놀랄 정도인데 좁은 둥지에선 더 위협적으로 들릴 것이다. 몸집이 작은 박새류에겐 알을 버리더라도 우선 피하는 게 최악의 선택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둥지 경쟁에서 일방적 우위를 보이는 벌도 일벌을 길러내는 데까지 성공한 것은 한 두건에 불과할 정도라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나무구멍을 놓고 새와 뒤영벌이 경쟁을 벌이는 사실은 이전에도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벌이 내는 소리를 들려주고 새들의 반응을 살펴 본 실험적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행동 생태학과 사회생물학> 최근호에 실렸다.

실험장치와 실험 장면 유튜브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