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9. 11
둥지서 떨어진 새끼는 버림받지 않았다…먹이 문 아빠 새는 연구실 밖에서 몇 시간째 기다렸나
나무에 오르다 떨어지고, 지친 새끼에게 용기 북돋아 준 부모 새의 안타까운 응원
» 땅에 떨어졌던 큰오색딱따구리 새끼가 나무위로 기어오르고 있다.
아무래도 큰오색딱따구리와는 인연이 깊은가 봅니다. 몇 해 전, 동고비와 함께 했던 80일이 지난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건강한 모습의 동고비 8남매가 꼬리를 물며 줄줄이 둥지를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가슴 벅참만큼이나 허탈함도 그만큼이어서 첫째부터 막내까지 둥지를 떠나던 사진만 반복해 보고 있을 때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 어린 새가 둥지에서 떨어져 날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점심식사를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다 정문 근처에서 발견하고 연락을 한 것이었습니다. 한 걸음에 달려 가보니 분명 큰오색딱따구리 어린 새였고, 머리 윗부분 전체가 붉은 것으로 보아 수컷이었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를 동료들에게 선물로 전한 것은 정말 잘했다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큰오색딱따구리 어린 새와 내가 이러한 상황으로 만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 내 품 속에 안긴 큰오색딱따구리
우선 어린 새를 발견하였다는 장소를 중심으로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며 둥지를 찾아 보았습니다. 번식을 위한 둥지를 지을 만한 은사시나무와 소나무는 여러 그루 있지만 큰오색딱따구리의 둥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많이 놀랐을 것이니 일단 연구실로 데려가 안정을 시키는 것이 좋을 듯 했습니다.
맨 손으로 달려간 터라 가만히 손으로 안아 가슴에 품고 연구실로 돌아오는 동안 잘 살펴보니 다행히 날개를 크게 다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으며 나의 손가락을 쥐는 힘도 꽤 강했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 어린 새를 품에 안아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연구실로 돌아와서는 종이상자 하나를 비워 어린 새를 놓고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게 한 다음 바로 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린 새를 위한 먹이를 구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 부모 새가 어린 새에게 무엇을 먹이는지는 익히 알고 있었기에 우선 썩어 쓰러져 있는 나무를 뒤졌습니다.
다행히 적당한 크기의 딱정벌레 애벌레도 몇 마리 찾을 수 있었고, 아주 작은 크기의 개미 애벌레가 많이 있는 나무는 그루터기째 메고 왔습니다. 먹이를 주고 30분 정도 밖에서 기다리다 들어와 보니 가장 좋아하는 먹이인 딱정벌레 애벌레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개미 애벌레도 먹은 것 같지 않았습니다.
먹이를 먹어만 준다면 먹이를 구하는 것이 힘든 일은 아니니 날개에 힘이 제대로 생겨 날 수 있을 때까지 키우다 보내려 했는데 먹지 않습니다. 30분을 더 기다려 보아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이미 늦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가능한 빨리 부모 새를 만나게 하는 것이 최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뜻밖에 나타난 아빠 새
어린 새가 가장 편하게 부모 새를 기다릴 곳으로 딱따구리 둥지보다 좋은 곳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린 새를 안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연구실이 있는 건물 앞뜰에는 딱따구리의 둥지를 품은 오동나무 두 그루가 서 있습니다. 하나는 건물에 바로 붙어 있고, 다른 하나는 숲에서 5m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으니 숲 쪽 오동나무로 가야 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둥지는 내가 까치발을 떼면 닿을 정도로 낮은 곳인데 낯선 둥지여서 그런지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무를 붙드는 힘은 있어 보여 손을 놓았더니 조금씩 나무를 타고 올라갑니다. 1m 정도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어린 새보다 머리의 붉은 털이 더 선명한 아빠 새가 온 것입니다.
물론 아빠 새의 부리에는 어린 새에게 줄 딱정벌레 애벌레도 물려 있었습니다. 처음 어린 새를 만난 곳에서 300m는 옮겨 연구실로 왔고 시간만 해도 벌써 2시간이 지났는데 아빠 새는 나를 따라와 밖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어린 새에게 줄 먹이도 그 시간 내내 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부성에 슬쩍 현기증까지 났습니다. 어린 새는 지칠 대로 지친 모습입니다. 먹이를 보고도 제대로 입을 벌리지 못합니다. 아빠 새는 어린 새의 부리를 몇 번 두드려 입을 벌리게 한 후 먹이를 주고 숲으로 날아갑니다.
내가 펄쩍 뛰어 손을 뻗으면 닿을 높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해 만났던 큰오색딱따구리 아빠 새는 둥지에 있는 어린 새가 붉은배새매에게 노출되었을 때 맨몸으로 맞서 몰아내기도 했으니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어린 새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 것은 정말 잘 했다 싶었습니다.
어린 새는 조금 오르다 쉬고 또 조금 오르다 쉬는 몸짓을 반복하며 위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내가 나무 아래 있는 것이 아빠 새와 엄마 새가 어린 새를 돌보는데 방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물로 다시 들어가 오동나무가 잘 보이는 빈 강의실을 찾았습니다. 마침 적당한 강의실이 비어 있어 카메라도 설치하고 간단히 위장도 하였습니다.
» 어린 새가 가지 하나를 가까스로 부여잡고 매달려 있습니다.
먹이를 물고 곧 다시 올 줄 알았는데 아빠 새는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습니다. 어린 새는 처음 내가 손을 놓은 곳에서 3m 정도는 더 올라갔습니다. 조금만 더 오르면 편하게 쉴 줄기가 있는데 그도 오르지 못하고 간신히 가느다란 가지에 매달려 그대로 있습니다.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발톱에도 힘이 없어 보입니다.
» 다시 힘을 내 조금 편한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30분 정도 꼼짝도 하지 못하던 어린 새가 다시 위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위를 향해 올라가다 나무 끝에 이르러 방향을 정해 날아가는 것은 딱따구리 종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습성이기도 합니다.
이제 조금 편해 보이는 곳까지 올라가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아직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있지만 엄마나 아빠를 찾는 모양입니다. 벌써 아빠가 떠난 지 1시간이 지났지만 아빠도 엄마도 보이지 않고 그들이 내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 먹이를 먹은 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나 봅니다. 배설을 합니다.
잠시 후 몸을 돌리더니 꼬리를 들어 배설을 합니다. 둥지 안에 있는 큰오색딱따구리 어린 새 하나에게 어미 새들은 평균 20분 정도의 간격으로 먹이를 가져다 줍니다. 해가 뜨고 조금 지나 주변이 환할 때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대략 10시간에 걸쳐 먹이를 가져다 주니 어린 새는 하루에 30번 정도 먹이를 받아먹는 꼴이 됩니다.
학교 정문 근처에서 만나 흐른 4시간 동안 이 어린 새가 받아먹은 먹이는 고작 한 번인데 배설을 하는 것을 보니 나와 만나기 전에는 어미 새들이 열심히 먹이를 날랐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배설물이 얇은 막으로 싸여 바로 물처럼 흐르지 않습니다.
어린 새가 둥지에 있는 동안 배설물은 어미 새들이 부리로 물어 밖에다 버립니다. 액체 상태의 배설물이라면 그리 처리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므로 어린 새의 배설물은 막으로 둘러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둥지를 떠날 시간이 아직은 이른데 먹이를 받아먹다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둥지에서 떨어져서도 조금씩 날고 또 걷고 하여 꽤 먼 거리를 이동하다 나를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어린 새는 위를 향해 조금씩 안간힘을 쓰며 오르는데 먹이를 주고 떠난 아빠는 3시간이 지나도록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햇살도 서산에 막 막힐 때였습니다. “끼욧, 끼욧”하는 큰오색딱따구리의 소리가 숲에서 들리자 줄기에 한참을 그대로 기대어 있던 어린 새도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 부모 새의 소리가 들리자 어린 새도 함께 소리를 내며 자신의 위치를 알립니다.
숲 쪽을 둘러보니 오동나무를 마주보고 있는 소나무 가지 사이로 엄마와 아빠가 함께 나타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천적을 의식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마치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카메라가 닿지 않는 곳인 것이 아쉽지만 엄마와 아빠가 함께 어린 새를 바라보며 점점 더 큰 소리를 내 주고 있습니다. 이리 오라는 신호인 것입니다.
엄마나 아빠 새가 먹이를 더 가져다 주지 않은 것도 어쩌면 어린 새에 대한 더 진한 사랑일지 모릅니다. 어린 새는 지금 머물러 있어서는 아니 될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새는 새 힘을 내서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갑니다. 하지만 아직 엄마와 아빠가 있는 숲 쪽으로는 얼굴을 돌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방향도 바꿔 엄마와 아빠가 있는 숲 쪽을 향해 돌아서서 올라갑니다. 엄마와 아빠 새는 더 큰 소리로 어린 새를 부릅니다. 어린 새가 마침내 타고 올라 간 줄기의 끝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합니다.
» 부모 새의 소리에 힘을 얻어 어린 새가 쑥쑥 위로 올라갑니다. 나무 끝에 거의 올랐으며, 이제 부모 새가 보이는 쪽으로 방향도 바꾸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춰 서서 소나무에 앉아 있는 아빠와 엄마를 바라보던 어린 새가 드디어 엄마와 아빠의 간절한 외침을 따라 날개를 펴봅니다. 아… 날개가 제대로 펴지지 않습니다. 오동나무도 다 벗어나지 못한 채 추락을 하며 엄마와 아빠의 외침이 거의 비명소리로 바뀌는 사이 다행히 어린 새가 가지 하나를 간신히 붙들고 매달립니다.
» 날개에 힘이 없습니다. 부모 새 곁으로 날아가지를 못하고 간신히 가지에 매달려 있다다 그만 떨어지고 맙니다.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엄마와 아빠를 보며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내보지만 엄마와 아빠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래 견디지 못하고 가지에서 떨어진 어린 새가 그냥 바닥으로 추락하지는 않고 다시 날개를 펴봅니다.
힘없고 서툰 날갯짓이지만 그래도 조금 날아 오동나무 옆에 서 있는 느티나무의 무성한 잎 사이로 불시착하더니 잠시 후 결국 바닥으로 뚝 떨어지고 맙니다. 땅에 풀이 무성한 것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몸까지 흔들며 더 목을 놓아 어린 새에게 힘을 줄 때 풀섶에서 움직임이 있습니다. 어린 새입니다. 어린 새가 엄마와 아빠가 있는 곳을 향해 머리를 곧추 세우고 이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스팔트 도로를 하나 넘어 숲으로 들어가는 동안 잠시도 내리지 않고 머리를 들어 엄마와 아빠를 봅니다. 가시덤불마저 지나 엄마와 아빠가 있는 나무로 오르기 시작합니다.
땅으로 뚝 떨어진 충격도 잊은 듯 늠름하게 나무로 오릅니다. 세상에…. 어느 정도 나무에 오르자 엄마와 아빠는 더 높은 윗가지로 이동하여 어린 새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제야 먹이를 줍니다. 어두움이 짙어져 보이지 않아 돌아서야 할 때까지 아빠와 엄마는 교대로 어린 새에게 먹이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소나무는 비어 있었습니다. 날개가 완전히 상한 것이 아니라면 둥지에서 떨어진 새에게조차 내가 할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섣부른 간섭을 계속 했다면 어린 새의 날개는 나에 의해 영원히 꺾였을지도 모릅니다.
글·사진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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